북극에서 돌아 와서

<작가 유금호의 특별기고>

2006-09-04     동북아신문 기자

적응의 문제

4도에서 12, 3도..
거기에 바람이 거세어지면 겨울옷, 목 깃을 높이 세우고도 체감 온도는 더 떨어지고..
그래도 뜨거운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차가운 바다바람 속에 서 있으면서 느끼던 흐뭇함의 기억들.
선장 초청 파티 참석 때문에 세상에 나와 처음 차려 입은 나비넥타이의 정장
그러다가 갑자기 30도를 오르내리는 기후대의 아침과 낮과 저녁.
급격한 기온 변화에 사고력까지 흐려지는 것처럼 적응이 힘들다.
특별히 금년 여름이 더 더운지, 워낙 더위를 못 견디는 내 체질 때문인지 북극에서 돌아 온 뒤 며칠 간 무척 힘이 든다.
몇 달 동안 밤이 없고, 또 몇 달은 해를 볼 수 없는 지역에서도 사람이 적응되어 살아가는걸 생각하면 온갖 목숨 있는 것들의 적응력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T.V속의 북극곰이 한국 동물원에서 여름날 얼음덩어리를 껴안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줄줄 땀을 흘리면서, 잠깐씩 앞을 가로막고 있던 엄청난 크기의 빙하의 벽과 부서져 떠내려오던 얼음 덩어리의 꿈을 꾼다.

보여지는 것과 실제와

일본계 미국인 바이런리스트 Juliett OKA 상 .
바이얼런 하나로 극장을 메운 관객들을 한 시간 이상 휘어잡아 꿈꾸게 하고, 웃음으로 몰아가기도 한 그 세련된 무대 위의 여자.
무대화장과 조명, 밤바다의 기묘한 열기, 그런 것들이 같이 했겠지만 몇 백 명, 세계 곳곳에서 모인 관객을 완전히 조정해 가던 그 여자 바이런 연주가를 햇볕 속에서 만났다,

세련된 미소말고는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던 표정, 얼굴이 화상을 입었을까, 가까이 바라 본 그 여자와 지난 밤 무대 위의 그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고 믿어지지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모든 화려함 뒤에 숨은 실체의 쓸쓸함.

런던 거리, 그리고 박물관

올림픽 개최지로 지정되었다고 온 국민이 환호성을 지르더니 지하철 폭파사건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런던. 조용하게 흐르고 있는 템즈강.
뒤숭숭한 런던 거리의 가로수로 심어진 마로니에들은 한창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세계동성애자들의 축제가 있었고, 관광객이 넘쳐나던 때 그 폭파사건과 희생자들..그러나 가로수들은 제 계절을 따라 무심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여러 해만에 잠깐 들린 '대영박물관'.
습관적으로 나는 또 '이집트 관'을 향하고 있었다.
미라들, 뜨거운 태양과 모래 속에서 안식을 해야 할 그 몇 천년 전의 이집트인의 시체들이 왜 안개 많은 도시에 와서 누워 있어야할까, 몇 해전과 똑같은 생각을 다시 하고 있었다.

한때 귀족들 집에 장식용으로 미라들을 한구 씩은 응접실에 보관했다는 그 괴기 취미.
스핑크스의 수염만 잘라 온 영국인들의 문명의식(?)

그리고 새로 독립된 '한국관' 표시가 반가워 뛰어 들었다가 잠시 당혹감에 빠진다.
입구 정면 벽에 걸린 그림 한 점- 백두산 풍경의 그림 속 '정일봉'이라는 글씨가 강하게 와 닿는다. 그 건너편 벽에 서예 작품으로 인식하고 걸어 두었을까, '민족 자존을 해치는 자들을 응징하겠다.'라는 섬뜩한 내용의 북한 글씨 한 점,
박물관 측에서야 우리의 南괴 北이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몇 점 안 되는 초라한 도자기들과 북한 그림과 글씨가 박물관의 KOREA관을 대표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었다. 외교 담당 공무원들은 워낙 바쁜 일(?)이 많으셔서 그 한국관에 들려 볼 시간도 없을까.

다시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커피 한 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