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민항기 서울 갔다오!”

2006-09-04     동북아신문 기자

  “중국 민항기가 납치 되었다오!” 무서운 소식이다.
“그 비행기 어디로 갔다오?”
“남조선 서울에 내렸다오.
1980년대 말에 있은 중국 민항기가 납치범들에 의하여 서울에 착륙한 사건은 그 당시만 하여도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한반도에 뿌리를 둔 중국 조선족들에게는 생전 처음 듣는 소식이다. 그처럼 경계하는 남조선과 연계됐다니 조선족들은 긴장해 났다.

십여 년 전 만하여도 중국의 문화대혁명 폭풍에 조선족들 가운데서 남조선 간첩을 잡아낸다고 야단이었다. 남조선에 친척이 있어 걸려만 들면 간첩선에 코 꾀웠다. 조선족들에 대한 이런 피해 의식으로 하여 시간이 흘렀어도 어지간히 겁을 내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남조선에 내렸나” 라고 원망도 하여 보았다.

그러나  이 민항기 납치사건은 중국정부와 한국정부에서는 정상적 외교관계가 없는 상황에서도 양측에서  재빨리 긴급 대처하였다. 결과 비행기와 탑승했던 여객들을 무사히 중국에 들여오는 것으로서 일단, 매듭을 지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건후의 민심에 주는 여운이 더 충격적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귀가 솔깃, 눈을 뜨게 한 것은 비행기 납치 사건의 전말이 아니라 그로부터 곁가지를 쳐 들려오는 한국에서 보고, 들은 여객들이 전하는 엄청난 새 소식들이었다.
중국은 다 년래 자국을 “위대한 나라”, “유구한 역사의 나라”, “행복한 나라”로 선전하였고 한국과 같은 나라는 6.25전쟁에서나  보던 모습 그대로 약소하고 낙후한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라로만 인정하고 있었다. 중국이 봉폐(封閉)되어 있던 개혁개방  전이라  외부소식이 감감하였다. 중국 사람들 특히는 조선족 동포들의 안목에는 한국과 같이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 몇 십 년 전 만하여도 게딱지같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보잘것없는 나라, 더욱이 6.25전쟁에서 잿더미로만 되였던 한국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조선족이 6.25전쟁에 많이 참여하였다.)

그런데 납치 되였던 비행기에 탔던 몇 안 되는 조선족들이 “말하지 말라”는 정부 측 일군들의 당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본 새 소식을 “손나팔”로 퍼뜨렸다. 먼저 가정식구로부터 하여 친우 사이, 직장, 마을로 한입, 두입 건너 전하는 바람에 널리 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전한 말의 중점이 바로 “서울 시내를 돌아보고 중국 상해에 돌아오니 마치 도시에서 농촌 부락에 온 것 같다…….”는 충격적인 민간 “뉴스”였다. 처음 사람들은 잘 믿지 않았다. 세계에서도 유명한 현대도시 상해 보다 더 굉장하다니?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는 가운데서도 이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한입, 두입 건너 동포사회에 넓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 계속 되여“88올림픽 운동회”와 같은 세계적 영향력 있는 큰 사건들이 알려지면서 또한 중국인과 조선족들의 의식에 충격적인 변화를 주었던 것이다.  
“88올림픽운동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중국은 이 운동대회에서  아세아 체육대국의 신분으로 델레비죤, 신문, 방송, 잡지 등 많은 기자들도 동원되여 열띤 국가의 영예를 나타내는 보도 경쟁을 벌였다. 조선족 동포들도 밤잠을 설치며 몰려다니면서 델레비죤을 시청하였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민생활의 백여 년, 자나 깨나 고국인 한반도를 잊지 않고 사는 한 핏줄의 사람들이아닌가?!

여기서 조선족들은 또 한 차례 눈을 뜨게 되였는데 이들은 중국이 금메달, 은메달, 몇 개 따느냐가 문제보다도 델레비죤 화면에 비추어진 대한민국의 발전상에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대비하기를 좋아한다. 또 대비를 거쳐 우위가 판명된다.  조선족들은 북한과 천만갈래 연계를 가지고 있는데 한국과 북이 자랑하는 “세상 부럼 없는 나라”를 대비하고 허무감을 느끼게 된다.   조선족은 북한을 잘 알고 있다. 북한에 고향을 둔 조선족이 많고 또 인접해 있는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여러 가지 면목으로 왕래가 많은 편이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돈을 많이 벌고 , 잘 먹고, 잘 입고, 사회의 인정을 받으며 잘 살기를 바란다.

그 때 중국은 개혁개방이 시작 되여 경제에 눈을 뜨고 물질추구가 극상 하는 시기였다. 실질적으로 한국이 말과 같이 잘 살며 또 많은 조선족들의 고향으로 되는 한국에 마음이 쓸리게 된 것이다. 이에 먼저 한국을 동경하고 자신들이 한인임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선 조선족은  장년들과 노인층이다.  조선족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한국에 친척이 없다던(숨기고 살았음) 친척들이 너나없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한국에 마음이 끌렸고 뒤를 이어 그 가기 힘든 한국친척방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뒤미처 조선족들의 희로애락이 번복된 한국진출의 대 서막이 열렸던것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낸 것은 이국땅에 사는 조선족들에게도 행운임은 틀림없었다. 

동북아뉴스/ 최민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