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연변문학 윤동주 문학상 심사평
2006-08-21 동북아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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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수상자와 수상작을 통해 민족과 운명을 같이 하면서 참신한 문학세계를 개척해가는 우리 작가들의 치렬한 작가정신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심사위원회는 조성일, 리상각, 김병민, 김호웅 등 평론가, 시인들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의 분과별 심사평을 요약, 종합해 총평을 대신하고자 한다. 시부분: 민족의 한과 역설의 힘 본상 수상작으로 김학송의 시 《청보리》를 뽑게 되였다. 늙은 밭이랑에 굶주림을 심어놓고 아리랑고개에 벨수록 자라는 한을 남기는 청보리, 그래서 력사는 굶주린 자의 몸부림이란다. 넘어도 넘어도 배고픈 보리고개, 슬픈 력사를 이어가는 청보리. 청보리는 파랑치마를 입은 불쌍한 어머니로서 민족의 한을 상징한다. 청보리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민족의 혼을 대변했음으로 시의 이미저리가 생신하고 돋보인다. 신인상 수상작으로는 모동필의 시 《거꾸로 흐르라 두만강아》가 선정되였다. 두만강은 우리 몸에 흐르는 피의 상징이다. 그런데 오늘의 두만강에는 한이 맺히고 오물이 출렁인다. 병든 령혼이 먹구름이 되여 하늘을 가리고 빛을 삼켜버린다. 이어받은 선조의 피가 말라가고 있다. 하여 시인은 “피여 거꾸로 흐르라. 두만강이여 거꾸로 흐르라” 라고 절규한다. “선조의 추억이, 맑은 령혼이 비끼게! 이어받은 피가 넘치게!” 이와 같이 서정은 치렬하다. 가슴을 치는 기발한 착상과 역설, 우리의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시이다. 평론부분: 문학평단에 떠오른 두 얼굴 리광인의 《북향회와 강경애고문의 활약상》을 본상 수상작으로, 서채화의 《예민한 감수성과 남다른 안목》을 신인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리광인은 최근에 평문을 무더기로 쏟아내는 50대 평론가로, 서채화는 평단에 갓 대두한 20대 신진평론가로, 각자 자기의 얼굴을 가지고 우리 조선족평단에 떠올랐다. 리광인의 수상작 《북향회와 강경애고문의 활약상》은 강경애의 연구에 있어서 력사의 뒤안길에 깔려있던 진실을 객관적으로 파헤쳐 복원함으로써 우리의 관심을 모으고있다.《북향회》는 지난 세기 30년대 중반 룡정에서 세워진 문학동인단체로서 중국조선족문학사에 마멸할수 없는 공적을 세웠 다. 강경애는 룡정거주시절에 《북향회》고문으로 활약하면서 《북향회》 및 그 동인들에게 크나큰 영향력을 끼쳤다. 하지만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그 활약상이 후세에 잘 전해지지 않고있는 상황이다. 리광인은 바로 이런 상황에 대비해 《북향회》의 창립시간 및 그 전후에 《북향회》에 끼친 강경애의 역할을 재검토하면서 《북향회》와 관련된 강경애의 활약상을 처음으로 폭넓게 그려냈다. 이 평문을 통해 우리 가슴에 뜨겁게 안겨오는것은 선배평론가들의 기성 연구성과에 대한 공정한 분석, 력사와 진실에 대한 존중 및 그에 대한 끈질긴 추구, 자기의 견해를 사실로 립증하는 학구적인 자세이다. 서채화는 《예민한 감수성과 남다른 안목》이라는 평문을 통해 우리 평단에 두각을 내밀었다. 이 평문은 김명순의 시 《성에꽃사랑》, 《소외》의 가치판단을 함에 있어서 재래의 도식적인 정치평론 혹은 도덕적설교의 틀을 깨고 텍스트의《구조》와 《관계》에 치중하고 시의 이미지를 비롯한 수사적 장치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시의 텍스트 표층구조의 저변에 깔려있는 심층의미를 설득력있게 설파하였다. 이 수상작을 통해 《청출어람(青出於藍)》의 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수필부분: 이미지와 서정수필의 미 《윤동주문학상》 수필부문 본상에 선정된 남복실의 《가을, 성숙, 녀자 그리고…》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통하여 얻어진 사색을 녀성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그려낸 훌륭한 작품이다. 작자는 자연의 가을에서 인생의 가을을 느꼈고 또 그로 인해 《성숙의 계절》과 《수확의 계절》 등 삶의 가치에 대하여 사색을 펼쳐가면서 언제나 풍요로운, 언제나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이 바로 담백하지만 진솔한 중년녀성의 독백이라고 할수 있겠다. 40대를 겪어본 녀성이라면 누구나 겪어보았을 삶의 전환점에 대한 감수와 사색을 별반 수식이 없는 필치로 그려내였다. 작가는 중년에 접어든 녀성으로서, 어느 순간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감수를 받는다. 하지만 젊음의 상실에 대한 실망을 이겨낼수 있은것은 최선을 다하는 삶의 방식임을 잘 알고 있고 생기와 활력으로 넘치는 삶을 살아가려고 작심한다. 그래서 작가는 가을의 의미를 인간의 성숙, 생명의 성숙으로 해석하고있다. 생명과 생활에 대한 진실한 감수를 적어놓으면 그냥 수필이 된다고 말하면 창작의 산고(産苦)를 무시하는것 같지만 사실 훌륭한 수필은 바로 그렇게 태여나는것이다. 신인상에 선정된 류광철의 《<감자싹눈>으로 읽는 인생살이》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또한 가장 소중한 친인사이의 사랑을 쓴 우수한 수필이다. 감자, 아버님의 교육과 사랑, 대대로 이어지는 혈육의 정 등 소박한 소재, 소박한 언어 그리고 소박한 주제의 표현은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또 장점이라고 할수 있다. 굳이 작품의 아쉬운 점을 짚어낸다면 세련되지 못한 글의 구성을 들수가 있겠다. 소설부분: 캐릭터와 판타지의 매력 소설부분 시인인상에 권중철의《아, 넋의 자취여》, 본상에 김혁의 《불의 제전》이 당선되었다. 권중철의 소설은 새로운 캐릭터(character, 성격)를 창조해 주목된다. 주인공인 《작은 아버지》는 성씨는 장씨이나 이름은 누구도 모른다. 그 대신 유난히 큰 거시기(男根)와 엉덩이에 난 흉터가 인상적이다. 왜소하고 강마른 몸매이나 언제나 칼날같이 번쩍번쩍 빛나는 독수리눈을 가진 그는 한 마리의 늑대와 같은 야인이다. 일단 분통이 터진다 하면 몸집은 작지만 상대가 누구든 생사를 불문하고 주먹으로 치고 이마로 들이박고 한다. 그는 민주련군 전사로 항일전쟁에 참가했고 인민해방군전사로 제3차 국내전쟁에 참가해 해남도까지 쳐내려간 공신이지만 당원도 아니고 군인복원증도 없다. 현에서 몇 번째 가는 관직을 받았지만 그것마저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시골에 내려와 사는 괴짜다. 하지만 그는 모름지기 애증이 분명한 사람인지라 일본놈을 미워하고 혁명경력을 빙자해 공물을 마음대로 독차지하는 자들을 눈이 찢어지게 미워하며 홀로 사는 분이 엄마를 동정하고 군인의 영예를 소중히 간직한다. 성미가 거칠고 걸핏하면 주먹을 쓰지만 경우가 바르고 정직한 사람이다. 그는 살벌한 《문화대혁명》때 의지가지없는 분이엄마를 비호해 준 《죄》로 반란파들에게 물매를 맞고 숨진다. 작자는 이러한 생동한 성격미의 창조를 통해 허례허식과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현실을 비판하고 참된 인간성의 부활을 호소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소설은 일인칭 소설시점을 택하고있는데 모든 인물과 사건을 “나”의 추억, 관찰과 서술에 의해 묘사, 진척시키고있다.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로 호젓한 산속에서 일본녀인과 통정을 하는 장면, 혁명경력을 빙자해 마을을 쥐락펴락하는 《천도깨비》를 혼내주는 장면, 분이 엄마와 치근덕거리는 《백대가리》와 그 형제들을 굴복시키는 장면 등 전형적인 세부를 통해 의협심이 강하고 강기(剛氣) 있는 《작은 아버지》의 성격을 잘 그려냈다. 또한 《작은 아버지》의 유난히 큰 거시기에 대해 반복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은근히 남성미를 암시하고 작품에 익살과 해학의 미를 더해 주고있다. 김혁의 《불의 제전》은 판타지(fantagy) 소설이라 이를 순문학으로 볼수 있는지 쟁론할 여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상상이 빈약하고 언어가 거칠고 메마른 오늘의 문단사정을 념두에 둘 때 현실에 안주할줄 모르는 김혁씨의 대담한 실험정신과 이 소설에서 보여준 풍부한 상상력, 미끈하고 윤택한 언어구사력 및 우리 민족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 특별히 주목된다. 《불의 제전》을 보면 적봉(赤峰)을 성산으로 우러르는 남하족(南河族)과 산북족(山北族)이 곡성(哭城)이라는 담을 사이 두고 은연중 갈등과 마찰을 빚어내고있는데 이를 배경으로 남하족의 진(眞)이라는 화동(火童)의 눈물겨운 성장사와 그의 비장한 운명을 다루고있다. 불을 무서워하던 진이 화신무(火神舞)에 열광하게 되고 산북족의 유(柔)라는 처녀애와 열연에 빠지기도 하며 월경(越境)하여 산북의 불씨를 가져다가 가가호호에 나누어주는 등 여러 가지 남하족의 금기(禁忌)를 어긴 죄로 두 눈을 잃게 되지만 불과 회신무에 대한 집념은 버릴수가 없다. 나중에 진은 미친듯이 춤을 추고 북을 두드리면서 터져오르는 적봉의 용암속으로, 불속으로 걸어 들어가 열반(涅槃)한다. 이 소설은 우선 불을 매개(媒介)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있다. 상고시대 북방의 여러 부족과 삼한의 여러 나라가 봄, 가을에 있었던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음주(飮酒), 가무(歌舞)한 국가대회》도 불을 둘러싼 군중의 광희(狂喜)로 이어진 제의(祭儀)였다. 그리고 불은 우리민족의 경우 신화에서는 왕권, 영웅탄생, 정화(淨化) 등을 의미하고 우리 무속이나 민속에서는 열정, 정화를 의미했으며 우리 풍습에서는 생명력과 복(福), 벽사(辟邪)를 의미하고 유교에서는 개화(改火), 불교에서는 자기 멸각(滅却)을 통한 승화를 의미하였으며 력사와 문학에서는 위기와 정열을 의미했다. 《불의 제전》에서는 불의 다양한 상징적의미를 유감없이 보여주고있는데 그 중에서도 어지러운 세상을 정화하고 멸각을 통한 승화의 의미에 포인트를 주고있다. 화신무에 열광하고 불속에서 열반하는 주인공 진의 형상에서 가장 두드러지는것은 예술에 대한 집착, 열정적인 사랑, 만민을 위한 헌신성, 스승에 대한 존경과 같은것들이다. 이러한 덕목들은 무지막지한 족장(族長)과 리해타산에 밝은 동료인 교(狡)와의 대비를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이러한 환상적인 인물과 사건을 다루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암시하는바는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민족이 국토의 분단을 극복하고 대동세계를 이루는 길은 우리민족 전체가 불의 세례를 받아 스스로를 정화하거나 재생해야 함을 암시하고있다. 이 소설은 작자의 해박한 지식, 환상적인 플롯, 장려한 언어구사와 깊이 있는 주제의 발굴로 말미암아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모두어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하며 우리 문학의 더욱 큰 발전을 기대해 본다. 2006년 8월 16일 |
<동북아뉴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