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들게나

2006-08-15     전유재

           그날을 그려보며

조주(趙州) 종심(从谂)대사(AD778~897)는 唐代 선사이다.


선사가 막 도착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 곳에 와 본 적이 있소?”


스님이 말했다.

“와 본 적이 없소이다.”

선사가 말했다.

“차 한 잔 들게나.(喫茶去)”


선사는 다른 스님에게 같은 질문을 하였다. 스님이 말했다.

“와 본 적이 있소이다.”

선사가 말했다.

“차 한 잔 들게나.(喫茶去)”


원주가 이를 의아해하며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와 본 적이 있는 자에게도 차를 권하고, 와 본 적이 없는 자에게도 똑같이 차를 권하신 것이오?”


“원주” 

조주선사가 큰 소리로 불렀다.

“예”하고 원주가 답했다.


조주선사가 말했다.

“차 한 잔 들게나.(喫茶去)”


"師問新到 曾到此間陵 曰 曾到 師曰 喫茶去 又問僧 僧曰 不曾到 師曰 喫茶去 後院主問曰 爲甚陵曾到也云喫茶去 不曾到也云喫茶去 師召院主 主應諾 師曰 喫茶去."   "趙州彔" 중


차향이 그때 그곳에서 그윽했다. 지금 이곳에서도 그윽하다. 차향을 차마 못 잊어, 이 자리에서 그대에게 차를 권한다. 이것으로 그대와 나, 그리고 건네진 차까지 모두 향이 그윽할 것이다.


“차 한 잔 들게나.”


처음 온 스님, 그대는 “차 한 잔 들게나”


이곳에 처음 왔다. 절을 보러 온 것은 아니다. 구하고자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먼저는 끌림이 있었다. 끌림의 강렬함에, 끌림의 미약함에 걱정할 일이 먼저는 따로 없다. 스님이 지금 선사와 마주섰다.


선사는 단순했다. “이곳에 와본 적이 있소?” 너무 뚜렷하게 들려 그만큼 확실하게 대답했다. “와 본 적이 없소이다.” 스님은 솔직했다. 과연 와본 적이 없는 탓이다.


선사의 권함에는 소박함이 묻어났다. “차 한 잔 들게나.” 그것으로 족했다. 구하고자 한 것을 다 주었다. 선사는 과연 차를 권해야만 했다. 그것밖에는 따로 줄 것이 없었다. 스님은 받아지는 차 한 잔으로 가득하게 다 받았다.


스님은 차를 받았다. 차 한 잔과 함께 또 받아두어야 할 것이 따로 있었다. 차를 받는 순간, 스님 얼굴에 무엇이 스쳤을지는 모른다. 지금에 와서 그 낯빛이, 세월에 흘려 둔바 되었다. 선사는 알았다.


선사가 먼저 물었다. 먼저 물어본 자는 물어보는 만큼 간절했다. 그 간절한 마음에 담아 전하고자 한 의미가 있다. 선사의 것이기 전에, 세상에 그토록 계속 있었던 그 무엇이었다.


선사는 알지 못했다. 스님이 면전에 서서 그를 바라볼 때, 지금 이곳에 과연 와본 적이 있었는지 알 리가 없다. 그렇다면, 와본 적이 없었기에 선사가 권했다. 차가 스님에게 권해졌다.


머물렀던 스님, 그대도 “차 한 잔 들게나.”


이곳에 다시 왔다. 절을 보러 온 것은 아니다. 구하고자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먼저는 끌림이 있었다. 끌림의 강렬함에, 끌림의 미약함에 걱정할 일이 먼저는 따로 없다. 스님이 지금 선사와 마주섰다.


선사는 여전히 단순했다. “이곳에 와본 적이 있소?” 너무 뚜렷하게 들려 그만큼 확실하게 대답했다. “와 본 적이 있소이다.” 스님은 솔직했다. 과연 와본 적이 있는 탓이다.


선사의 권함에는 집요함이 묻어났다. “차 한 잔 들게나.” 그것으로 족했다. 구하고자 한 것을 다 주었다. 선사는 과연 차를 권해야만 했다. 그것밖에는 따로 줄 것이 없었다. 스님은 받아지는 차 한 잔으로 가득하게 다 받았다.


스님은 차를 받았다. 처음 온 스님과 같은 차를 그렇게 받았다. 차와 함께 받아두어야 할 것이 과연 있었다. 차를 받는 순간, 스님 얼굴에 무엇이 스쳤을지 역시 모른다. 세월에 띄운바 되었다. 선사는 알았다.


선사가 먼저 물었다. 이번에는 더 간절했다. 선사의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던 그것은, 세상에 그토록 계속 있게 될 그 무엇이었다.


선사는 알지 못했다. 스님이 면전에 서서 그를 바라볼 때, 지금 이곳에 과연 와본 적이 있었는지 알 리가 없다. 그렇다면, 와본 적이 있었기에 선사는 더욱 권했다. 차가 스님에게 권해졌다.


원주, 그대는 기어이 “차 한 잔 들게나”


이곳에 머물러 있다. 선사와, 절과 함께 있다. 구하고자 한 것을 계속 구하고 있다. 먼저는 끌림이 있었다. 끌림의 강렬함에, 끌림의 미약함에 걱정할 일이 먼저는 따로 없다. 원주가 지금 선사와 마주섰다.


원주는 단순하지 않았다. “둘 다에게 과연 차를 똑같게 권했어야 했단 말이오?” 뚜렷하지는 않지만, 무엇인가 구별이 되게 선사가 했어야 되는 줄로 원주는 알고 있었다. 선사는 이제 그만 고함이다. “원주!” 과연 원주가 선사와 함께 그곳에 계속 있는 탓이다.


선사의 권함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차 한 잔 들게나.” 그것으로 족했다. 구하고자 한 것을 다 주었다. 선사는 과연 차를 권해야만 했다. 그것밖에는 따로 줄 것이 없었다. 원주는 받아지는 차 한 잔으로 가득하게 다 받았다.


원주는 차를 받았다. 두 스님과 구별 없이 같은 차를 그렇게 받았다. 차와 함께 받아두어야 할 것이 과연 있었다. 차를 받는 순간, 원주 얼굴에 무엇이 스쳤을지 역시도 모른다. 세월에 부쳐둔바 되었다. 선사는 알았다.


원주가 먼저 물었다. 모른다고 물었다. 원주가 그렇게 물었던 그것은, 여전히 찾지는 못했지만 세상에 끝까지 있을 그 무엇이었다. 


선사는 알았다. 원주가 면전에 서서 그를 바라볼 때, 지금 이곳에 과연 있는지를 알았다. 그렇다면, 여기에 있었고, 계속 있을 것이기에 선사는 기어이 더욱 권했다. 차가 스님에게 권해졌다.


차 한 잔 들게나


끌림이 있었다. 끌림의 강렬함에, 끌림의 미약함에 걱정할 일이 먼저는 따로 없다. 끌림은 분명 있다. 끌림이라는 것은 스스로 있는 무엇이다. 끌림은 혼자 생겨나지 못한다. 끌림은 끌림이 되기 위해 끌리고, 끌려가는 양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으로 모자라다. 끌림에는 끌어지게 하는 무엇이 또 있어야 한다. 끌리기 위해 한쪽에 있는 자, 끌리기 위해 다른 한쪽에 있는 자, 그 끌림을 끌림으로 되게 하기 위해 양자를 맺어주는 자, 이제는 이것으로 족하다. 끌림이 생겨났다. 비로소 존재가 생겨난다.


존재가 생겨나 세상이 있어졌다. 존재는 끌림에 의한 관계맺음이다. 관계맺음이 있기 전에 끌림의 속성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무릇 세상적인 것은 다 그러하다.


끌림에 의해 두 스님이 여기에 왔다. 끌림의 두 스님, 그것을 알고 있던 선사, 그들은 끌림에 의해 그렇게 마주섰다. 그리고 받았다. “차 한 잔 들게나.” 그것으로 족했다. 구하고자 한 것을 다 주었다. 선사는 과연 차를 권해야만 했다. 그것밖에는 따로 줄 것이 없었다.


끌림에 의해 원주가 여기서 물었다. 의아함은 역시 끌림에 다름 아니다. 그것을 알고 있던 선사, 그들은 끌림에 의해 그렇게 마주섰다. “차 한 잔 들게나.” 그것으로 족했다. 구하고자 한 것을 다 주었다. 선사는 과연 차를 권해야만 했다. 그것밖에는 따로 줄 것이 없었다.


끌림은 결국 맺어짐으로 잠시 끝난다. 그렇게 끝나서 또 역시 끌림으로 간다. 그 끌림은 또 맺어짐을 만들었고, 또 만들고 있다. 존재는 끌림에 의해 맺어짐으로 보여진다. 변함이 없다. 두 스님도 끌렸고, 원주도 끌렸다. 끌렸던 자는 기어이 맺어짐으로 된다. 맺어짐은 결국  존재다.


“차 한 잔 들게나.”


맺어짐의 바름과 바람직함, 선사는 그렇게 맺었다. 두 스님에게 그렇게 다가섰다. 먼저 다가선 원주에게도 그렇게 마주했다. 차 한 잔으로 맺어진 자들, 그렇게 맺어지어 그들은 각자 그 다움을 보존하면서 커지고 바람직할 여지를 가졌다. 그래서 그들답게 남아있다. 각 존재와 존재의 또 맺어짐, 그래서 단순한 연관만은 아니다. 그들은 맺어져 또 다른 존재를 만들었다. 그들 사이의 일어남, 그것은 또 새롭게 생겨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차 한 잔, 그것으로 이제 새로운 존재가 우주를 채운다.


세상은 맺어짐에 의한 존재의 탄생이요, 바람직한 맺어짐에 의한 진리의 체현이다. 차를 권하는 자, 차를 받는 자, 그리고 차 한 잔, 이것으로 이미 모든 것이다.


차향이 그때 그곳에서 그윽했다. 지금 이곳에서도 그윽하다. 차향을 차마 못 잊어, 이 자리에서 그대에게 차를 권한다. 이것으로 그대와 나, 그리고 건네진 차까지 모두 향이 그윽할 것이다.


“차 한 잔 들게나.”

 

 

 

 

 
 
 
 

 

 

전유재(全宥再, Quan YouZai)연변과학기술대학 생물화공학과 학사. 상명대 정보통신대학원-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STEPI) 협동과정 기술경영학과 석사졸업. 현재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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