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눈물

2006-08-13     전유재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으며, 셋은 만물을 낳는다.

(道生 一 , 一 生 二 , 二 生 三 , 三 生 萬 物 .)


  道는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처음이자 궁극이다. 접근의 시작은 정확하다. 최초의 조건을 바람직하게 파악, 설정한 것으로 이해된다. 달관의 소치일 것이다. 그것을 道라고 칭하였다.


  道는 하나를 낳았다. 하나는 카오스이다. 카오스는 정형화를 내재한 근원적 힘이다. 자궁의 저력이다. 우주가 열렸다.


  하나는 둘을 낳았다. 여기에서부터의 접근은 오류를 잉태한다. 카오스가 코스모스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중앙에 코스모스가 위치한다. 코스모스는 카오스에서 낳은바 되어 끊임없이 그 勢를 확장한다. 낳아진 자가 낳은 자와 어쩔 수 없는 긴장관계에 돌입하는 전개가 되겠다.


  둘은 셋을 낳았다. 드디어 나머지 영역, 카오스의 전부에서 코스모스를 제외한 전 영역 역시 나뉘기 시작한 바가 된다. 음과 양이라 이름한다. 陰과 陽이라는 둘, 거기에 먼저 갈라져 나온 코스모스를 합쳐 3이 된 것이다. 코스모스라는 하나가 나머지 둘을 지속적으로 침식하는 형태를 나타내면서 우주가 보다 세분화되어 끝없이 펼쳐진다.

 

  셋은 만물은 낳았다. 음과 양은 코스모스를 살찌우는 요소로서 작용한다. 코스모스가 자리한 위치에서 지향할 경우, 이제 더는 카오스에서의 잉태됨에 의한 두려움과 감사함이 없다. 카오스는 음과 양으로 변모하면서 코스모스를 제어할 힘을 잃었다. 낳은 자가 낳은바 된 자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로 돌입함에 다름 아니다. 코스모스는 지속적으로 음과 양을 제공받아 영역을 확장하고 저변을 키운다. 언제부터인가 코스모스가 카오스를 제어하는 속성이 된 것이다.


  경우의 수만 간신히 남았다. 코스모스가 쇠할 경우에 음과 양이라는 요소가 원 위치로 화하고 코스모스 영역은 작아진다. 코스모스가 흐름을 탈 경우 음과 양의 영역은 끝없이 축소된다. 노자는 이것이 그토록 싫었다. 변화함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코스모스가 확장되어 가는 경우를 최소화하는 쪽으로의 지향성을 역설한다.


  눈물이다. 노자의 눈물이다. 무위를 역설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파악한 결과와 자신이 바라던 삶 사이에 유쾌하지 못한 괴리가 생겨났다. 그는 코스모스의 확장을 혐오했고, 자신이 파악한 법칙대로 행하지 않으며, 가고 있는 방향을 기어코 막으려고,적어도 그 속도를 늦추려고노력하였다. 도덕경은 그 법칙을 전제하면서도 그 법칙에서의 최소한 개입을 통한 인간의 자세에 대한추구다.


  그러나 노자가 파악한 道가 과연 세상이 그러하도록 전개되어 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인간의 정열을 제어할 수 있겠는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있는 그대로의 법칙은 코스모스의 원하는 바에 맡겨지고, 인간은 되도록이면 그 역으로 행하고자 했던 비애, 그래서 노자의 눈물은 슬픈 쪽이다. 노자는 세상을 잘못 파악했다.


노자의 눈물에 눈물짓는다.

 

 

 

 

 

전유재(全宥再, Quan YouZai)연변과학기술대학 생물화공학과 학사. 상명대 정보통신대학원-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STEPI) 협동과정 기술경영학과 석사졸업. 현재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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