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문학포럼/문학작품 특집시71]리상학의 시 '진달래' 외11수

2019-04-12     [편집]본지 기자

 [동북아신문=리동렬 기자]리상학은 중국 산재지구의 문학의 터전을 수십년 간 지켜온 현'도라지'문학지의주필이다. 그는 온화하고 넓은 가슴으로 중국조선족문학의 발전에 현존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알찬 조선족 문학지를 만들어내고 있을뿐만 아니라, 소박하고도 진투적인 언어로 시창작을 부지런히 해왔다.  꾸밈 없는 그의 시는 쉽게 읽히면서도 사색의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다. 아래 시의 중국조선말 표기법을 그대로 둔다...<편집자>           


 1. 진달래


봄마다 피여나는
빨간 욕망 하나

이루지 못한 아픔
향기만은 여전한데
요절된 아름다운 념원
붉은 핏빛으로 몽오리는 지는가

잊을수 없는 그날의 그 이야기
력사의 바람결에 흘러갔어도
진정 그 혼만은 아직도 살아
봄이면 돌 틈 헤치고
빨간 분수로 솟아 피는가

청산에 울리는 빨간 종소리
봄을 부른다

2. 진달래 2


한입두입 한겨울 씹고 씹어
빨갛게 언 입술

동이에 담아온 봄소식
산중턱에 걸어두고

봄을 불러들이는 한마당 굿
흥겨운 아리랑 선률

다시금 물동이 이고
해빛 길러 떠나는 다홍치마

구불구불 비탈길 오르며
또 한고개 넘어간다

 

3. 장미의 말씀


빠알간 내 얼굴 예쁘다 말하지 마오
그것은
상처받은 사랑의 색갈이라오

가슴 찌르는 내 숨결 향기롭다 말하지 마오
그것은
상처받은 사랑의 하소연이라오

푸른 잎에 맺힌 내 이슬 맑다고 말하지 마오
그것은
상처받은 사랑의 눈물이라오

손 찌르는 내 몸의 가시 얄밉다 마오
그것은
그것은
사랑이 가슴에 박은 한많은 못이라오.

 

4. 진달래


바람 세찬 언덕에 태여나
소나무처럼 굳게 자라지도 못해
약한 바람 한점에도 몸을 휘청이는 녀인
녀인이여
 
한줌의 흙이나 좁은 돌틈에 호적을 올리면
가슴 찢는 생도 머리우에 가리마로 새기고
한생을 묵묵히 살아가는 녀인
녀인이여
 
눈처럼 쌓인 하얀 설음
돌처럼 굳어진 덩이진 원망
눈물로 반죽된 세월로 삭이며
산중턱에 앉아 빨간 불 지펴
산 가마속에
따뜻한 봄을 짓는 녀인
녀인이여
 
당신을 바라보면
먼 기억의 산중턱 초가집에
살금살금 어둠을 밟는 발걸음의 숨결
별이 뛰노는 부엌에 성냥불 그어
아침을 짓는 한송이 빨간 진달래 핀다 

5. 매화

  
얼굴이 달아오른 시월
찬바람 실어다 곳곳에 부린다
 
파란 사랑의 밀어들
한잎 두잎 감기를 앓는다
 
펑펑 쏟아지는 하얀 잔소리
소용돌이로 다가와
몸과 혼을 빨래질한다
 
몇마리 새들이 날아와
데모를 하다가
공기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사랑의 우물 속에서 길어올린
빨간 눈물들
가지에 앉아 아픔을 말린다
 ​ 

6. 새벽바다


이른 새벽
님 마중에
바다는 항상 바쁘다

밤새도록 쌓인 어둠
밀물로 쓸어내고
긴긴 세월 멍든 그리움
파도로 닦고
파아란 념원 펼친다
목화꽃 수놓는다
님이 오실 길우에

이른 아침
님 마중에
바다는 항상 즐겁다

가슴 깊이 가라앉은 고독의 별무리
어부의 그물로 건져내고
루루천년 그리움에 지친 마음
사공의 노래로 잠재우고
축복의 꽃보라 갈매기로 날린다
사랑의 불길 지평선에 지핀다
님이 오실 길목에

오, 님이 오시나보다
뚜우 뚜우 뚜우-
배고동 울린다.

 

7. 마늘


마늘을 보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사랑손에 뜯기워
한쪽각 마늘이 된 당신

그리움을 세워서
울바자 두르고
고독함을 뒤번져
밭고랑 내시고

사랑의 패말 단 터밭에
자신을 심어
여린 싹 하나 손에 든채
세상을 살아온 당신

당신은 검은 흙으로 사라졌지만
당신이 계셨던 곳에는
오붓한 둥근달 살고 있다

마늘을 보면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8. 바다


바다는
자신을 접고 접었다

어제를 펴고
오늘을 접고
오늘을 펴고
내일을 접고

달빛 버무려
폈다 접었다 수천년
해빛 버무려
접었다 폈다 수만년

끝내
세상에서 제일 큰
한떨기 꽃이 된 바다

저녁놀 붉은 함성 터뜨린다​
 

9. 보름달 


님이 오시려나보다
달이 둥글게 웃는다

떠나시던 날
님이 빈 자리를 채우려고
계수나무 한그루 심었습니다
달은

님 오시는 날
님께 맛있는 음식 대접하려고
옥토끼 한마리 길렀습니다
달은

록음 짙은 계수나무 바라보며
살찐 옥토끼 가슴에 안고
홀로의 외로움 얼마나 삼켰을가
홀로의 그리움 얼마나 쌓았을가
달은

아, 님이 오셨나보다
달이 둥글게 웃는다

 

10. 삼계탕


옷을 벗었다
알몸이다

티끌만한 욕심도
가슴 열고 싹 버렸다

뼈속까지 우리고 우려낸
눈부신 육체의 향기

모든 것을 바쳐야 할
뜨거운 순간이다

두 다리 곱게 포개고
당신에게 맛있게 가고픈 맘
빨간 바램으로 동동 떠있다

 

11. 사진기


 
찰칵
문이 열렸다
찰칵
문이 닫겼다

조그마한 감방에 
갇힌 죄인들

꽃도 물도
나무도 바위도
어둠도 밝음도
사람도 하늘도

죽어서도 탈출할수 없는
무기 징역 받은 죄인들
어두운 감방속에서 꿈속을 누비듯
얼굴마다 웃음이 주렁주렁

오, 나의 예쁜 죄인들이여

 

12. 섬

 

아, 한포기 풀
아, 한송이 꽃

한 포기 풀을 위해
천년을 울었다
한 송이 꽃을 위해
만년을 울었다

사방 천만리
출렁이는
떨어진 눈물의 발자욱

어제 한치
오늘 한치
갈라지는 돌틈으로
흘러나오는 잔잔한 울림

아,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