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최려영] 반지 외2수

-동포문학 8호 공모작품-

2018-09-04     [편집]본지 기자

[서울=동북아신문] 반지 

회색 우비를 입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반지가 비처럼 쏟아지면
눈물과 웃음으로 얼룩진 얼굴들이
손을 뻗어 반지를 영접한다
 
정수리에, 뺨에, 튀어나온 광대에
반지가 내려 앉으면
튀어 오르는 불꽃과 함께
동그란 모양의 인장이 살갗을 태우며 새겨진다
 
두르지 않아도 될 황금 테두리를
온몸 가득 새기고
지지 않아도 될 책임을
목에 칭칭 두르고
 
묵묵히 씨앗을 뿌린다
어른 놀이를 한다
 
문득
신성한 수단*을 입은 자들 사이로
붉은색 우산을 쓴 얼간이가 비껴가면
그 영혼은 온통 순수함과 욕망으로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낸다
 
세상의 것 아무것도 움켜쥐지 못한
그 손과 발 얼굴 말갛고 투명하다
 
*수단: 성직자가 평상복으로 입는 발목까지 오는 긴 옷
 
 
 
네가 선택한 정답과 내가 합리화한 정답
정답이라는 뭉툭한 갑옷을 입은
우리는 억세고 퀴퀴한 돌이다
 
돌이 되어 땅바닥에 질펀하게 퍼 앉은 우리들과
돌이 되기를 거부한 유약한 부스러기들이
공중에 흩날리며 일곱 빛깔 프리즘을 일렁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돌이다
가끔 내린 빗방울에도 무지개가 될 수 없는
질기고 퀴퀴한 돌이다
 
 
먹은 것으로 산다
 
사람은 먹은 것으로 산다
모래를 마시든
구름을 뜯어먹든
먹어야 살 수 있다
 
먹는다는 행위는 축적을 동반한다
행위가 켜켜이 쌓이면
젖은 점토에 찍힌 유령의 발자국처럼
기이한 향수(乡愁)를 남긴다
 
걸을 힘을 잃은 자들은
멈춰 서서
과거의 기억을 뭉텅뭉텅 잘라 먹는다
 
그것이 설령 오묘한 향수로 점철된
자기 미화의 자투리일지라도
 
지금 살갗을 스치는 바람은
영원히 우리가 난생처음 맞는 바람이다
 
고로
먹은 것으로 사는 우리는
영원히 현재라는 시축(时轴)에
똑바로 서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