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소중한 내 가족 내 자식

2006-05-15     동북아신문 기자



기자: [admin] 래원: [길림신문] 

○ (훈춘) 김해금


저는 두 애의 엄마입니다. 돈에만 열중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싶어 더우기 자신에게 고무를 주고싶어 서툰 글을 지었습니다.

유혹을 이겨낸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을 이겨낸다는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저의 글이 지금세월에 마음무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여준다면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유리창으로 흘러드는 해살이 여느때없이 포근한 한낮이다.

나는 쌕쌕 달콤히 자고있는 아들애의 발가스레한 얼굴을 바라보며 친구들이 하던 말을 떠올린다.

《얘, 아들 둘씩이나 입이 비뚤어지겠다야!》

그때 나는 속으로 《걱정말아, 너희들이 언젠가 부러워할 때가 있을거야!》 하며 그저 웃고말았다.

내가 시댁문에 다시 들어섰을 때도 일가친척들은 《가난구제는 나라에서도 못한다는데 무슨 고생을 사서 하려니!》했다.

하긴 내가 그 좋은 돈벌이도 그만두고 잔병많은 시어머니에 약한 남편, 수년동안 내려온 빚도 많은데다 덩실한 벽돌기와집들속에 유독 갈아앉은 초가집으로 찾아드니 호박 쓰고 돼지굴로 들어가는 식이여서 리해되지 않았을것이다. 거기에다 아들애 하나 더 기르니 기가 막힌 모양이다. 지금 저만 편안하려고 자식을 버리고 달아나는 사람도 어디 한둘인가. 나도 편하게 살고싶지만 남편에게 희망을 주고 생활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고저 고생을 사서 하는것이다.

몇해전엔 나도 시집살이 너무 지겨워 리혼해 나갔었다.  그때는 정신환자 시누이까지 맡고있었는데 남편은 아예 맥을 버리고 모든 일에 관심이 없는데다 걸핏하면 술주정까지 하니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그후 나는 로씨야물품 장사를 하여 친정의 빚을 다 물어주었고 새집도 사주고 농기구도 사주었으며 장사의 수요로 이곳저곳 다니며 구경도 잘했다. 먹고 입고 사는덴 부족함이 없었으나 마음 한구석은 어쩐지 늘 허전했다. 그것은 내 집이 없기 때문이였다. 언제든지 돌아갈수 있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집이 그리웠다. 오래전부터 여기저기서 괜찮다는 대상을 소개받았지만  전혀 생각이 없었는데 좀 살만하니 안착된 생활에 대한 갈망이 심해졌다.

《에라, 나도 이젠 새 가정 꾸려야지!》나는 생각했다.

그날 저녁 나는 이궁리 저궁리로 밤을 설쳤다. 이제 새 가정 꾸리면 나야 전보다 훌륭히 살수 있겠으나 아들애는 엄마하고 같이 있으나 아빠하고 같이 있으나 한쪽 부모는 잃어야 한다.  애 가슴에 상처를 남기며 누리는 내 행복의 함량은 얼마나 될가? 부모자식은 한 몸이라는데 애를 놓고보면 엄마, 아빠는 다 친인이다. 내 아버지가 세상떴을 때에 나는 온 하늘을 잃은것만 같았다 성적이 특출했던 학업도 그만두게 되였고 의사로 되려던 꿈도 풍지박산나고 말았다. 내가 받았던 상처를 아들애에게 물려줄순 없다. 그 애에게 맑은 하늘을 펼쳐주어야 한다.

그 이튿날 나는 짐을 싸들고 고달프다고 떠났던 내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는 떠나지 않을 결심을 하고.

나는 그동안 좀 벌어놓은 돈으로 빚을 하나하나 물었고 시어머님을 가마목에서 해방시켰다. 이 좋은 세월에 근면하면 잘 살수 있다는것을 남편에게 보여주기 위해 억척스레 일해 수입을 늘렸다. 집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들애도 공부를 잘했고 남편도 술버릇을 차츰 고쳤으며 일에 재미를 가졌다. 그해따라 희한하게 제비들이 많이 날아와 둥지를 여기저기 틀고 매일 《지지배배》노래하니 처음으로 초가집에 사는 재미를 느꼈다. 이듬해엔 둘째애까지 태여났는데 건실하고 무척 영특하게 생겼다. 바삐 보내며 몸이 뻐근하다가도 식구들이 밝게 웃을 때면 사는 보람을 느낀다.

남들의 눈에 나는 지금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시체옷도 분화장도 멀리 갔다. 지금은 설인사로도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세요》하지만 그 말도 나하곤 상관없는듯하다. 나는 나 나름대로의 씨앗을 뿌려놓고 가을의 알찬 수확을 바라고 정성껏 내 가정을 가꿔가고있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