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박영진] 연변 왕청2중 동창들과 30년 만의 상봉
- 2016년12월4일 서울 대림동 차이나타운에서
세상이 좋고 세월이 좋아 또 위쳇이 좋아서 헤어진지 30년이 지난 첫사랑 그녀를, 또 그토록 보고 싶고 그리웠던 고중시절의 동창들을 한국땅에서 만나게 되었다. 중국에서도 못 만났던 사람들을 한국에서 만나게 되다니 참 한국이 작고 한국땅이 좁은가 본다.
북경에서 사업하는 친구 방홍범이 작년에 채팅방을 열어 연락이 되는 몇몇 친구들이 서로 문안하고 소식을 전하다가 한달전 학교때 부반장이였던 오청화와 연락이 되면서 채팅방에 50명이 들어 왔다. 동창들 거의 다 연락이 통하게 되었다. 통신록을 작성하여 보니 한국에 9명이 나와 있었다. 모두들 너무 반가워 한시 급히 만나고 싶어 야단들이다.
때마침 12월4일 ‘2016한중문화예술교류의 밤’ 행사에 참가하고자 내가 전주에서 서울로 가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못 만나면 만나기 힘들것 같아서 약속을 잡았더니 모두들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들 온단다.
'웨딩그룹 위더스 영등포'에서 열린 행사에 한시간정도 참석하였다가 나는 서울지하철 2호선을 갈아타고 동창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ㅡ 대림역 11번출구로 찾아갔다. 지하철2호선과 7호선이 경과하는 대림역은 교통이 편리하여 중국동포들이 많이 집거하고 또 즐겨 모이는 만남의 장소로 되어 가리봉 연변거리나 건대입구 흑룡강거리보다 더 크고 매력과 인끼가 있는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대림동 전가복식당은 크고 널찍한데다가 귀빈석도 있고 실내 환경과 인테리가 잘되였고 또 분위기도 좋아서 우리는 이곳을 회식장소로 선택했다.
안산에 사는 최금화가 1번으로 그다음 나, 그리고 인복(부평), 정자(성남), 홍련(의정부), 해옥(인천), 란숙(일산), 미란(강남)이가 차례로 도착했다. 30년만에 만난 동창들은 너무도 기쁘고 반가와서 어쩔바를 몰라한다. 서로들 부둥켜 안고 야단들이다. 홍련이는 부끄러움도 잊고 남자인 나를 뜨겁게 포옹도 해주었다.
전가복식당 귀빈석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그동안 그립던 얘기를, 또 지나간 고중시절 때 있었던 재미나는 이야기를 늘여 놓기도 하고 궁금한 것들을 서로 묻기도 했다. 동창들과 회포를 풀면서 지나간 이왕지사들을 회억하노라니 왕청2중시절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것이였다.
1983년, 16세 어린 나이에 나는 집을 떠나 왕청제2고급중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고향ㅡ백초구에서 힘들게 농사를 지으며 너무 의미없고 보람없이 사는 시골생활에 진저리가 났고 영화에서처럼 대도시에서 멋지게 살고 싶었다. 그러자면 고중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에 가는 것이 유일한 출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다니던 고중시절이 제일 어려웠을 때인 것 같았다. 왕청진 시가지 한복판으로 가야하가 흐르는데 강 건너 하북에 새 학교청사를 건설하는 중이라 교실이 없어서 우리는 지금 왕청5중교실을 빌어서 사용했었고 또 신민가에 있는 왕청4교((왕청현 진수학교자리)교실에서도 수업을 받기도 했다.
우리가 졸업한 이듬해부터 새 교학청사와 학생기숙사건물이 준공이 되어 후배들은 큰 고생을 안하며 기숙사에서 살면서 학교를 편하게 다녔지만 우리들의 3년 고중생활은 그야말로 힘들었고 눈물겨웠다. 특히 외지에서 온 학생들은 주숙문제로 해서 별별 고생을 다 했었다. 홍련이가 옥자와 함께 홀로 사는 김할머니네 집에서 하숙할 때 있었던 우습고도 무서웠던 이야기를 하여 좌중을 웃게 만들었고 미란이가 우리가 1학년때 동진에 살던 해옥이네 집에서 동창들이 모여 음식을 맛나게 해먹고 재미나게 놀다가 하루밤 잤던 일을 꺼내서 우리는 잠시나마 즐거웠던 그때시절로 되돌아가 보게 되었다.
란숙이가 우스개로 "나에게 첫사랑이 있었던지 없었던지 모르겠다. 아마 없었던 것 같다" 고 말했다. 나는 명호가 그의 첫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쟈피거우에 사는 란숙이는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서 20여리나 떨어진 집으로 가군 했다. 일요일이면 집에 가서 부모님들을 도와주어야 했던것이다. 이쁘게 생긴 란숙이를 길막고 연애하자고 집쩍거리는 사회불량배들이 많았다. 하여 우리 몇몇 남자동창들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그녀를 마을어귀까지 데려다 주군했다.
한번은 길을 막아선 불량배패들과 맞붙게 되었다. 한 불량배가 자기가 란숙이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면서 연애를 하겠다고 하니 명호가 그녀는 이미 자기와 연애하는 사이니깐 물러나라고 했다. 그렇치 않으면 죽기살기로 한판 붙자고 했다. 우리가 강하게 나오니 그들도 귀찮은지 물러서는 것이였다.
참 그때 우리들의 우정은 순수하고 진지했던가 본다. 누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나 했다. 동광촌의 지창범은 부모조실하고 큰형수님댁에서 얹혀 살았다. 모내기철이여서 고양이 손도 빌어 쓸 때인데 학교 다니느라 돕지 못해 여간 안타까워 하지 않았다. 그런 사정을 알고 토요일 오후 우리 동창들 20여명이 모내기 도와주러 떠났다. 가야하강뚝길 따라 남학생들이 탄 자전거에 여자 한명씩 태우고 신바람나게 달려갔다. 창범의 형님과 형수는 너무 고마워 어쩔줄을 몰라했다.
형수님은 저녁에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고 일찍 집에 들어갔고 우리는 모내기를 말끔히 끝내고 저녁을 맛있게 먹고 오락도 놀고 유희도 놀며 밤을 즐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우리가 진짜 멋지고 잘한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칭찬을 받을 일이다. 요즘처럽 삭막하고 각박한 세상에 이런 순수한 우정과 진정어린 진심은 흔치 않고 더더욱 빛나 보인다.
란숙이가 첫사랑을 입에 올리니 나도 고중시절에 첫사랑이 있었던가 생각하게 된다. 16세 나이면 사춘기에 속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성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고 이상야릇한 감정이 생긴다. 연애방면에 늦종인 나였지만 이쁘고 똑똑하며 활달한 여자를 좋아하고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나는 나에게 첫사랑이 있었다면 그녀일거라고 생각된다. 내가 난생 처음 여자의 향기를 느꼈고 여자의 섬섬옥수를 잡고 쿵딱거리는 마음으로 이상야릇하게 짜릿한 느낌을 받으며 함께 신나게 춤추었던 그녀, 바로 내 옆에 앉아 있는 미란이였다.
1983년 가을 왕청2중학생들이 지금 왕청5중운동장자리에서 집체무표현이 있었다. 학생들의 단합과 우정을 돈독히 하려는 학교측의 창의적인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숱한 구경군들이 보는 앞에서 경쾌한 '영빈곡'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었다. 운 좋게도 나는 반에서 제일 이쁜 미란이와 춤짝이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못내 흐뭇했지만 내색을 내지 않고 점잖게 춤을 추었다. "낸칭더 펑유먼 찐탠 라이샹후이, 워먼디 워이라이 둬머 메이리…" 향긋한 여자의 향기에 취해, 경쾌한 음악에 취해 나는 천당으로 날아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들의 한국에서의 감격적인 상봉을 관심하고 부러워하고 궁금해하는 채팅방의 다른 동창생들을 배려하여 우리는 오늘 이 모임 장면을 생방송 하기로 했다. 태평양 건너에서 조희철이 축하메시지를 보내면서 북경, 상해, 청도, 연태, 광주, 제남, 대련, 장춘 등지에 나가 있는 동창들과 고향 연변땅을 지키는 왕청과 연길의 동창들도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었으며 황태륜(일본)과 나타샤(인숙, 모스크바체류)도 늦게나마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연회가 시작되었다. 달이 내 마음을 대표한다는 노래가 있고 술이 내 진심을 대표한다는 말이 있다. 그동안 그리웠던 심정을 술에 담아 권커니작커니 웃고 떠들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겁게 식사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념촬영도 하고 또 동영상을 찍어서 우리들의 채팅방(왕청2중동창회)에 올리기도 하면서 야단들이다. 우리들의 감격적인 상봉을 생방송으로 보면서 동창들은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한국에 있는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었다.
"모두 다 갔다"라는 노래처럼 우리 동창들도 이 세상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아서 모든 동창들이 한자리에 오붓이 모여앉아 회포를 풀기 어려운 형편에서 우선 가까운 곳에 사는 동창들이라도 자주 만나면서 인생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들이였다. 10일저녁에는 왕청에 있는 동창들이, 11일에는 북경에 사는 동창들이(제남에 사는 철룡 합류함 ),17일에는 연길, 왕청, 장춘에 있는 동창들이 총집결하여 연길한성호텔에서 정심부터 통쾌하고 멋지게 조직한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이렇게 한번 동창모임을 가지게 되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연히 만나게 되는 것이다. 살다보면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느끼게 된다. 돈만 벌겠다고 보고싶은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다 모이는 모임이나 장소에 오지도 않고 혼자만 살다가 죽을때에 후회하는 바보같은 사람들도 있다. 자기 5분후의 일을 모르는게 사람이다. 백년 살것처럼 후에 보면 되지 후에 하면 되지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아침이슬로 살아져 버린 사람들도 적지 않다.
참 우리들은 행운을 타고 났나봐.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는지 전난시대도 아니고 또 생계를 걱정하는 빈민국의 국민도 아닌, G2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공민이라는 것,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제집 나들 듯이 하는 증국조선족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된다.
마음을 비우고 탐욕을 버리면 항상 즐겁고 행복하다.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면 세상이 바뀐다. 생각이 바뀌면 모든것이 바뀌는 법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동창들이 자주 연락하고 서로 도와주면서 삭막하고 각박한 이 세상에서 순수하고 진심이 어린 우정의 꽃을 영원히 가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16년 12월 17일 대한민국 김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