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군식 시인과 伊沙 시인, 그리고 『中國現代詩系』(1)
또 중국시문단의 주류시인들과 넓게 인맥을 쌓고 그들의 시를 한글과 중국어로 번역하여 한국에서 (韓中)대조 번역 시집 출판을 시작하였다.
그는 『中國現代詩系』란 표제 하에 첫 순으로 서안외국어대학교 교수이고 저명한 시인이며 비평가인 이사의 '중국의 밑바닥', '2016 중국 당대 걸출한 10대 청년시인상' 수상자 서강 시인의 '안개', 중국 '선봉시가'의 넘버원 '詩江湖'의 운영자 심호파 시인의 '이상의 나라', 그리고 중국 '현대시 100대 시인' 당선자 군아 시인의 '색과 공' 등을 출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저명한 현대 시인들을 육속 한국에 소개하게 하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시 번역에 매진을 하고 있다. 이로하여 그는 2016년 7월 9일 한국 서울에서 거행한 '아시아시인상' 시상식에서 '아시아시번역상'을 수상하였고, 이사 등도 '아시아시인상'을 수상하였다.
『中國現代詩系』 '總序'에서 이사 시인은 홍군식 시인과의 만남과 이번 總序를 편집 출판하게 된 경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소상히 소개하였으니 많은 관심 갖기를 바란다. 이외에도 본지는, 伊沙 시인의 시집 自序, 그리고 그의 중국 當代 최고의 문제작詩 3수를 소개하니 많은 사랑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주
1. 伊沙의『中國現代詩系』總序
내가 주간을 맡고 홍군식 선생이 옮기는 『中國現代詩系』는 한국에서 출판이 계획되어 첫 시리즈를 출간하게 되는데, 이는 장차 중·한문화교류사에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시단과 독자들에게 중국의 현대시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어 기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주지하듯이 중국은 전통적인 ‘시의 나라’이다. 古詩의 대국이고 강국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당송시기에 시의 최고봉에 이르렀던 중국의 시 전통은 차츰 빛을 잃다가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쇠락하고 말았다. 한 마디로 ‘시의 나라라는 명예가 지난날의 명월로만 남고 되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신해혁명 이후, 민국을 세우고 5·4신문화운동의 흥기와 白話文의 文言文에 대한 대체를 통하여 새로운 書寫언어와 문학언어를 이루어 고시 단절이후 새로운 시문화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역사상 ‘신시’로 기록되었다.
그 후, 거의 100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현대화 진전의 장기적인 어려움을 거쳐 ‘중국 현대시’라는 正果를 완성하게 되었다. 최초 단계의 白話文이 성숙된 현대 한어와 동등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이 당초에 白話文으로 씌어진 ‘신시’도 성숙된 현대시와 동등하지 못했고, 거기에 언어의 비독립적인 존재까지 더하여 그 발전은 필연적으로 문화의 발전과 문명의 진전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당대 현대 문명이 발전해서 일정한 정도에 이르러서야 현대시의 성숙은 겨우 가능했다.
이는 하나의 간난신고의 여정이다. 근 100년에 달하는 세월 속에 중국이라는 나라는 분열,
전란, 내우, 외환, 자학, 몸부림의 고통, 문화의 발전, 문명의 진전 심지어 완만, 정체, 퇴보 등을 충분히 맛보았는데 소위 ‘신시’의 발전도 자연히 동양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다. 거의 절반의 긴 세월이 바로 이런 상태에 머물러 있었고, 진정한 발전도 대대적인 압제를 받았다. 대만을 놓고 보면 1953년 이후 초기의 3大詩社(『現代詩』,『藍星』,『創世紀』)가 있었다.
또 대륙을 놓고 말한다면 1968년 이후 북경의 지하시인군체가 기점이다. 상대적으로 따져보면 대만에서는 1950~1970년대에 고조되었고, 대륙은 1980년대로부터 지금까지 근 40년간의 ‘신시’ 진전이 중국현대시 발전의 최고 성과를 보여준다. 또한 이 40년 중, 신세기 이래의 15년간의 창작이 더욱 성숙되었는바 100년‘신시’의 ‘수확기’라고 할 만하다. 이 수확의 의미는 진정한 ‘현대시’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문화건설은 100년이 필요하고 100년에 도달해서야 성과를 이룬다.
1997년 이후, 나는 좋은 기회를 만나기 시작해, 중국 국내에서는『世紀詩經』,『現代詩經』,『잊어
버린경전시가被遗忘的經典詩歌(상·하권)』,『新世紀詩典(제1, 2, 3, 4 季)』, 『중국입말시선中国口语诗选』,『现代诗八大家』 등 시가선집이 출판되었다. ‘신시’ 100년에 대한 점검으로 ‘대장정’을 한 셈이다. 그 중, 현대시의 精華부분이 독자들에게 추천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詩歌界와 많은 독자들의 깊은 사랑을 받았으며, 외국 동료들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에 이민 간 중국 조선족 시인이며 번역가인 홍군식 선생은 주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신세기시전(NPC)』중의 일부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한국의 정기 간행물에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연줄을 통해 이번 『중국현대시계』를 출판하는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이는 얻기 힘든 좋은 기회이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번 출판 공정은 방대하기에 나는 이왕의 ‘史’의 개념을 주도면밀한 편집이념으로 타파하여 ‘詩’로 시인을 대체하고 質로 ‘詩’를 대체하는 편집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현재 詩創作의 현황을 고려하여 시를 고를 때 중국현대시의 최고성과를 이룩한 시인이나 대표성을 띤 걸출한 시인들만 선택했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넘어온 두터운 정에 미안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드디어 중국현대시의 신비한 베일을 벗길 때가 되었다.
이사
2015.12.20.
중국 장안에서
2. 伊沙의 自序
14년 전, 한국의 한 학자분이 나의 시 「최후의 장안인」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한국의 『시평』잡지에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나는 그 잡지사의 '중국기획' 프로그램에 1년 간 참여를 하게 되었고, 그 분은 또 나의 시평 한편을 번역해 주기도 하였다. 중국 당대시인 韓東에 대한 전문 논고였다. 그 이후 나와 한국과의 인연은 14년 간 '단절'돼 있었는데, 그러던 중 올해 우연히 미국에 이민을 간 중국 조선족 시인이며 번역가인 홍군식 선생을 만나 뜻밖에도 짧은 시간 내에 韓中대역시집을 출판하는 행운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기간 나는 두세 번쯤 "어깨 위를 스쳐 지나가는 기회”를 놓치게 됐다. 실수가 아니라 인연이 닿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14년 동안 줄곧 모종의 신비한 기회와 인연을 묵묵히 기다려오다가 오늘 드디어 행운을 잡게 되었다. 바로 홍군식 선생과의 만남이 나의 시 창작에, 또 중국 당대 실력파 시인들에게 아주 큰 福祉를 마련해 준 것이다. 이는 일종 ‘인연’으로서, 우리 동방인, 동아시아인들은 이 단어의 무게를 알고도 남음이 있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中韓문화의 뿌리와 어원이 같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이 했던 말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나는 오로지 내가 친히 겪어온 일들만 얘기하려 한다. 2년 전, 제4기 「中國靑海湖國際詩歌節」에서 주최 측은 매개 分會場에 필묵과 종이와 벼루를 준비해 두었었다. 中外시인들을 초청하여 붓을 휘둘러 泼墨하게 하려는 시도였다. 그날, 泼墨에 참여한 시인 대부분이 중국시인들이었고, 그 중 외국시인은 한 사람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서예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중국시인들을 앞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가 바로 한국에서 온 大詩人 고은 선생이었다. 그가 장내 시인들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仙風道骨의 경쾌한 기질이 기타 시인들의 경지를 초월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도 충분한 이유와 믿음을 갖고 그 동안 창작한 5000여 수의 시작품들 속에서 5~60수를 가려내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한국 독자들에게 선보이려고 한다.
"앞길에 자네 알아주는 벗 없다고 근심하지 말게나, 천하에 자네 모를 사람 어디 있나?”라는 당나라 대시인 高適의 시구는 이미 나의 시 창작의 신념이 된지가 오래 됐다.
이로써 서문을 대신하는 바이다.
이사
2015.12.20 중국 장안에서
3. 중국 當代 최고의 문제작詩 3수
중국의 밑바닥
辫子는 약속을 해두었던 작업장으로 왔다
그는 “小保 당신에게 담배가 있소?”라고 물었다
그 한 갑의 담배도 작업장 지붕에
감춰둔 6.4식 권총과 함께 훔쳐온 것이다
小保는 침상에 앉아 있었고 그의 다리는
장물을 훔칠 때 줄행랑을 놓다가 넘어져 부러졌다
小保는 그 총을 팔아 버린 후 병원에서
자신의 부러진 다리를 이으려는 속셈이다
辫子는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小保, 자칫 당신의 머리가 떨어질 일이요”
小保는 울기 시작했고 점점 더 큰 울음보를 터트렸다
“내가 정말 가련해 보이지 않소?”
“나는 이틀이나 밥을 못 먹었소. 당신은 나의
辫子도 같이 울었다, 눈물을 훔치면서
“우리도 참 한심하오”라고 하며
辫子는 小保를 도울 마음으로 총을 팔기로 하고
총을 이미 董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팔았다고 했다
이상의 서술은 중국을 경악하게 한
서안의 12.1총기사건의 시작이다
이러한 밤에 모든 사람들이 사건에 관심 가졌지만
나는 辫子와 小保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다
중국의 밑바닥에서 태어난 미래가 없는 아이들을
인민의 시인인 나로서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다
열차가 黃河를 건너며
마침 기차는 황하를 지나고 있었고
나는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고 있었다
솔직히 이건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공손히 차창가에 앉거나
문곁에 서서
왼손을 허리에 지르고
오른손으로 손 채양하고
위인처럼 바라보아야 했다
적어도 시인처럼
황하에 대하여 혹은
역사의 묻은 때를 생각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내다보고 있었고
나는 화장실에 있었다
시간은 무척 길었고
지금 이 시간은 나만의 것이었다
난 꼬박 1박 1일을 기다렸었다
오줌 한줄기를 갈기는 사이
황하는 저만치 흘러가버렸다
시인을 굶기자
그토록 가볍게 그대들은
농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작하는 일과 그리고 봄부터 가을을
비 내리듯 땀 흘려 밀을 수확하는 것까지
당신들은 밀이 바로 당신들이고
여인들을 위한 눈물이라고 생각하는가
밀초리는 그대들 뺨에 돋은
돼지털처럼 부드러운가
방랑의 길에서 허덕이던 나날
북방의 밀은 스스로 자랐고
그대들은 휘우듬한
햇빛 낫을 휘둘러
밀초리의 목과
대지의 마지막 키스를 잘라냈다
아시는가 당신들
시인들은 이미 배불렀다
일망무제한 밀밭은
이미 당신들 배에서 향기로 넘치고
도시에서 가장 위대한 게으름뱅이는
시행에서 자랑스러운 농부가 되였다
밀은 햇빛과 빗물의 이름으로 빛났다
나는 호소한다, 그들을 굶기자
좆같은 시인들을 굶겨 죽이자
우선 나부터 굶기자
먹으로 대지를 온통 어지럽히는 놈팡이를
예술세계의 이 잡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