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 로춘애]행복만 아닌 고민
[서울=동북아신문]나는 중국 심양에 사는 중국 조선족이다. 2살 반 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들애가 있어서 매일매일 행복하다.
1 시간이나 넘는 퇴근 길이지만 아파트 단지 대문에 들어서면 항상 창문에 매달려 나를 향해 손짓 하는 아들이 있어서 힘든 줄을 모른다. 애고사리 같은 손으로 창문을 탕! 탕! 탕! 두드리며 “엄마! 빨리와!” 하며 반겨주는 아들이 있어서 살맛이 난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엄마, 오늘 출근 하지 마, 나랑 놀아줘” 하고 졸졸졸 따라다니며 매달리는 귀염둥이 아들이 있어서 삶의 가치를 만끽한다.
주말이면 “오늘은 우리 아들 데리고 어디가서 뭘 하며 놀지?”하는 “걱정거리”가 있어 삶이 충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에 들어서서는 은근한 고민 때문에 잠을 설친다.
아들애가 3살이면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조선족 유치원에 가야 하는가, 아니면 한족 유치원에 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다.
지금까지 줄곧 조선족 유치원에, 조선족 학교를 고집해 왔건만 정작 “유치원 대문앞”에 이르니 발길이 무거워진다. 왜냐하면 조선족 학교의 학생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노파심에서 하는 걱정이지만 우리 아들애가 고중을 졸업하고 대학에 진출하기 까지 조선족 학교가 존재 하겠는가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나도 조선족 학교의 교원이기에 우리 민족의 학교가 흥성하고 발전하기를 그 누구 보다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점점 줄어드는 조선족 인구와 학생수에 대해 마음이 아픈 것 외에는 따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심양 시내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족 학교는 아직 폐쇄의 걱정이 없건만 농촌 학교는 몇몇 되지가 않는다. 우리 집 앞에 있는 조선족 학교에 보내려고 문의를 했더니 아직 20명도 못 채우고 있다. 그중에는 유치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소학교는 한족 학교에 가야 하는 한족 애들도 몇몇 있다.
학생수가 적어서 선생님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그만큼 경쟁이 없는 환경에서 외롭게 살아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가! 고중까지 경쟁이 없는 안온한 환경에서 순리롭게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을 행운이라고 좋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조선족 대학은 없다. 하기에 대학입시 시험에서는 한족 학교 학생들과 경쟁을 하여 한족 대학에 진학해야 하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한족 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학습하고 한 기숙사에서 어울려 살아야 한다. 개울물에서 살던 올챙이가 갑자기 바닷물에 말려드는 격이다.
대학을 나와 직장을 찾을 때면 한국 기업이나 한국 회사 혹은 한국 사회에 진출할 수 있어 취업 범위가 넓어지게 된다는 유혹하에 조선족 학교를 선택하는 학부모들도 계시고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기에 조선족 학교를 고집하는 학부모들도 계신다. 그리고 가정 조건때문에 조선족 학교를 선택하는 학부모들도 계신다.(한족 학교에 비해 조선족 학교는 두루두루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그 원인도 나름대로 중요하지만 눈앞에 닥친 고민은 조선족 학생 수가 너무 적어서 학교의 존재 여부에 위기가 닥친다는 점이다. 그날이 하루 아침에 오는것이 아니지만 16년 후에 대학에 진출하게 될 우리 아들에게는 현실적인 문제다.
며칠 전에 내가 다니던 초등 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뵌 적이 있다.
“선생님, 학교 운영에 로고가 많으시죠?” 하고 인사말을 건넸더니
“아이고, 말도 말아, 하마트면 민족의 죄인이 될 번 했어!” 하며 괴로워 하셨다.
항상 밝고 명랑하시며 실력까지 갖춰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오시던 그분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나는 깜짝 놀랐다.
“왜요?” 하고 다급히 물었더니
“글쎄, 심양시 교육국에서 우리 학교에 학생수가 적어서 남아도는 교실이 많다면서 한족 학교 학생들을 배치하겠다고 하는거야. 그럴수는 없다고 반년을 싸워 겨우 밀어냈어. 중앙에 까지 찾아가서 올리 뛰고 내리 뛰고 해서 겨우 학교를 지켜냈어.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잠이 안와!” 하며 머리를 흔드는 것이었다.
“선생님, 그럼 지금은 마무리 된거예요?”
“조만간에는 딴 말이 없겠지만 앞으로는 모르지. 학교는 크고 건물도 많고 시설도 좋은데 학생수가 적어 교실이 많이 비여있으니 그대로 방치해 두는것도 아니잖니?! 우리 조선족 학생들을 위해 지은 학교지만 정부에서 돈 내여 정부에서 지은 학교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학교인데다가 민족 학교라고 각별히 생각해 주는데 … 학생이 적어 건물이 남아돌고 있으니… 참 난처한 일이지!”
“선생님, 참 대단해요! 한족 학교 교장분들은 중앙에 찾아가서 뇌물까지 바치면서 잘 좀 봐달라고 부탁하고 자기 자리를 보존하고 승직하려고 바둥바둥 하는데 선생님은 조선족 학교를 지키려고 중앙까지 찾아가서 ‘밉상’을 부리니 말입니다.”
“하하~ 그건 아니고, 시 교육국에서도 우리 조선족이 미워서가 아니라 돈 들여 지은 건물이 남아돌아서 그러는 거잖니! 각자 자신의 사명이 있으니 할수 없는거지! 그리고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 마을의 촌민들이 참 대단하다는걸 느꼈고 촌민들에게서 많은 감동을 받았어.”
“네?”하고 물었더니 교장 선생님은
“글쎄 학교에 어려운 점이 있다는 걸 알고 전체 촌민들이 단합하여 방법을 토의하고 싸인을 해주고 하면서 지지해 주었기에 큰 힘이 되였어. 참 대단해! 자식들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지! ” 하고 혀를 끌끌 차며 감탄하는 것이였다.
교장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촌민들의 자식 사랑 민족 사랑에 깊이 감동 받았고 교장 선생님의 겸손함과 솔직함에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너네 애도 우리 학교에 보내!” 하며 교장 선생님은 마지막 인사말을 남겼다.
행복한 고민- 갈데가 없어서 생기는 고민이 아니라 한족 학생들보다 선택의 여지가 하나 더 있어서 생기는 고민임에도 백프로로 행복하지 만은 않다.
그리고 20년이란 긴긴 세월 나에게 밑거름이 되고 아름다운 동년을 주었던 고향을 농촌이란 이유 때문에 싫어하고 이제는 시내 학교에 들어가 시내 사람이 된 자신을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좋아했던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하다.
중국이라는 대환경 속에서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이끌어 나가는 민족 학교를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우리 소환경의 사람들이 참으로 대견스러우면서도 안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