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 서탑가 코리아타운, 21세기 조선족의 전망대
중국조선족의 사는 이야기 (시리지 2)
조선족은 떠나고 있다. 한국이나 외국으로, 국내 대도시로, 떠나는 조선족을 말릴 수 없다. 조선족의 집 거구 연변농촌과 산재지구의 조선족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경재, 문화 등 다양한 요소와 질의 변화는 조선족 삶의 구도를 이미 개변시켜 놓았다. 누구도 백 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족이 한국이나 중국 자체 내에서 흔연히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한민족과 중화민족 사이에서 조선족의 가교역할은 독특하다.
그리고 조선족은 자기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야 할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근년 내 국내 대도시로 진출한 조선족은 점차 집 거구 양상을 띠면서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청도, 위해, 심양, 북경 등지의 운거와 변화된 모습들이 그 점을 설명해주고 있다. 심양 서탑가에서 본 코리아타운은 거의 충격적이었다 .
심양, 동북아 지정학적 중심지
심양은 지정학적으로 서울과 북경의 중간 지점에 있으며 중국으로 가는 가장 가깝고 평탄한 길이다. 또한 위쪽으로 장춘, 하얼빈, 나아가 러시아, 몽고로 통하고 아래쪽으로는 항구도시 대련으로 통한다. 하기에 일본은 20세기 초에 이미 심양을 대륙 침탈의 관문 도시로 삼았던 적이 있다. 일제는1931년 봉천(현재 심양)에서 918사변을 사변을 일으켜 만주지역으로 일본 관동군을 진출시키고 전 만주를 점령하였다.
서탑가, 조선족이 뿌리 내린 역사
서탑가 유래는 심양 시내에 동서남북에 탑이 있는데 서쪽에 있는 탑이 위치한 곳이라고 해서 서탑이라고 했다. 예부터 봉황이 깃든 살기 좋은 곳이라, 당지 사람들은 봉황이 떠나지 못하도록 탑을 세우고 네 귀를 든든히 못박아놓았다고 한다. 서탑은 1998년 11월에 재시공하였다.
조선족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기, “조선독립운동가의 과부들이 그곳에서 국밥장사를 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이국땅을 찾아온 독립 운동가들을 위해 국밥이라도 한 그릇 대접하겠다는 생각에서 당시 번화가였던 심양 역 부근에서 떨어졌던 곳에 국밥집을 차렸고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조선족 뿌리는 그렇게 형성된 것이었다.
서탑가, 조선족이 사는 빛과 냄새
서탑가는 심양 역에서 버스로 5분 거리에 위치하여 있다. 코리아타운은 사방 1km의 거리로, 조선족 백화상점과 한성 구물광장의 빌딩을 중심으로, 활발한 경제활동의 지역이자 상업의 지역으로, 소비의 중심지역이다. 시부대로(市府大路), 연변가(延邊街), 신개도가(新開道街) 중심으로 한성 구물광장 빌딩의 뒤편에는 조선족 의원과 서탑 시장이 있다.
조선족 백화상점 앞에는 정창 호텔과 서울 호텔, 녕대 호텔의 빌딩이 있는 시부대로(市府大路)가 있고 조선족 백화상점 옆 건물은 조선문 서점이 있고 옆의 도로인 연변가는 노래방과 사우나, 식당, 술집 등이 밀집된 거리이다. 많은 한국 사람이 오가는 서탑가는 보따리 상인이나 자영업자나 기업이나 단체에서 꼭 들러 보는 명소이다. 신개도가에는 볼링장, 당구장, 식당, 카페, 한국음식 전문 식당가와 노래방이 있다.
서탑거리, 도처에 조선 글이 보이고 조선말이 통하고 조선족 냄새가 나고 있었다.
서탑가, 삼국인의 코리아타운
서탑의 역사적변화의 전기는 한중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시작,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인이 심양을 찾았고, 그 곳을 찾은 한국인들은 언어가 통하고 같은 민족이 모여 사는 서탑으로 모여들어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또 상업 등 경재교류가 활성화되면서 한족들이 모여들고 정부도 투자하면서 중국인, 조선족, 한국인, 북한인들이 모여 사는 삼국 공동체가 이뤄진 것이다.
이곳에는 한국, 중국, 북한 삼국의 경계가 없다. 서탑가 길목에는 북한의 평양관이 있고 한국인, 중국 조선족, 북한, 중국, 한족 등이 차린 민박, 식당, 노래방, 슈퍼 등을 중심으로 유흥업소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삼국의 일반주민이 한 데 어우러져 생활하고 사업하는 삼국 공동의 장이 된 것이다. 사람에게 '먹고 자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은 가장 기본적 생활양식이요, 그것이 바로 삼국의 가장 기본적 생활의 공통점을 찾아나가는 출발점일 것이다.
서탑은 마치 21세기 한국, 중국, 북한 삼국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동북아의 창’, 전망대 같았다. 현재 이 같이 삼국의 주민들을 그 구성요소로 삼고 형성된 지역은 중국에 심양 서탑 밖에 없다고 한다. 때문에 서탑은 동북아의 화합과 공존의, 커뮤니케이션의 모델로 떠올 것이 분명하다.
서탑가 평양관, 북한의 창
아침에 평양관을 찾았을 때 식당은 한산했지만 2층 커피숍에는 손님들이 꽤 됐었다. 커피숍 바에는 각가지 양주에 커피들, 특히 조선(북한)산 차들이 잘 진열되어 있었다. 커피숍 마담은 스무 서너 살의, 순수한 미모의 평양아가씨였다.
자주 찾는 이들은 한국사람, 조선족들, 아가씨는 제법 중국말도 할 줄 알았다.
요즘 서탑가 모란관에는 평양아가씨들의 공연을 볼 수 있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평양대학을 졸업한 17명의 아가씨들이 종업원으로 일하는 그곳에서는, 아가씨들이 손님들을 위해 하루에 2번 씩 무료공연을 해주고 서비스도 깍듯이 해주는데 3년 후에 평양에 돌아가 서비스업에 종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북한의 개혁개방의 창을 엿볼 수 있는 곳이 서탑가이었다.
서탑가, 밝고 커지는 한민족의 전망
서탑 재개발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현재 지역면적보다 10배나 확장될 것이라 한다. 동쪽은 남경가, 서쪽은 서탑가, 북쪽은 영구로, 남쪽은 서부대로 개발하는데 보행가의 쇼핑몰이며 입구에 신축될 원주형 30층 높이의 원스톱 라이프 식 건물이며 5성급호텔들은 한국자본의 대량 투입으로 한민족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전말을 밝게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건설주기는 3년, 주체공사는 약 2008년에 완공할 예정이라 한다.
서탑가, 조선족 정체성을 이뤄나갈 수 있는 길은?
심양에 살고 있는 조선족 인구는 약 8만 명, 서탑가에 사는 조선족 인구는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고 있다. 서탑 조선족소학교가 있는데 어쩜 조선족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조선족의, 하나의 명물이라 하겠다.
기실 조선족을 조선족이라 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은, 조선 글을 읽을 수 있고 조선말을 할 수 있고, 한민족 간에 무리 없는 대화를 나날 수 있고, 타민족보다 빠른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그래서 남다른 정으로 끈끈히 이어져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들이 아닐까?
서탑은 이제 조선족이란 차원을 넘어 한국사람 북한사람까지 포함한, 우리 민족의 교육체계를 이뤄 민족문화와 민족경재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민족의 정체성이 이뤄지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