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모두 외국인이다

2003-11-26     운영자
[경향신문] 2003-11-16

‘인간 사냥의 날’.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불법체류자에 대한 일제단속이 시작된 16일에 이같이 섬뜩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지난 15일로 자진출국 시한이 만료된 후로도 한국을 떠나지 못한 약 10만명 이상의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은 자신이 직면한 당국의 단속과 수용, 강제추방에 대한 공포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많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은 필요할 때는 저임금에 실컷 부려먹고 이제 와서 나가라는 한국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파키스탄 노동자 마티씨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체류기간이 4년이 넘어 추방대상이 된 외국인은 대부분 IMF 위기 이전에 한국에 온 사람들로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제2의 조국’에, 그리고 고용주에게 충성을 다했다”고 토로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때로는 하루를 한끼로 때우기도 했고 한국인 노동자들의 심한 모욕적 언행을 견뎌야 했다고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이들을 쫓아내려 하는 한국에서 정의·인간애·사랑의 기준과 노동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애절한 어조로 묻고 있다. 마티씨는 언론매체에 이런 호소나마 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은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한 채 시골로 잠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부는 지하철 전동차에 뛰어들거나 공장에서 목을 매 자살하기도 했다. 이런 비극적 선택의 행렬이 이어지지 말란 보장은 없다.

=쫓겨나는 외국인 노동자=

정부의 조치는 내년 8월부터 시행되는 외국인 고용허가제에 앞서 취해진 것이다. 숱한 논란이 있었지만 고용허가제는 궁극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자격을 부여해 법률로 보호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로 평가된다. 따라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시련은 이 제도의 시행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진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명분이 우리에게 깊이있는 성찰의 의무까지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사회에 만연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구조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에게도 1970·80년대 수많은 근로자들이 열사의 사막에 ‘외국인 노동자’로 파견돼 땀을 흘렸던 경험이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상생의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할 소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철저히 ‘타자화’해 차별해온 의식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긍정적 의미에서의 세계화와 탈 근대는 요원한 것일 수밖에 없다.

강제추방에 직면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고의적 임금체불과 전세보증금 반환기피 사례 등이 당장 늘고 있다.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자행되는, 파렴치 행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계간 당대비평 주간 김진호 목사는 “‘그들’은 이미 ‘우리’ 안에 있으며 본디 우리(인간)는 모두 외국인이다”란 말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 타파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란 절규는 1970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스스로 생명을 불사른 전태일의 절규를 아프게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한편으로 지양돼야 할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단지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려는 시각이다. 이는 또다른 형태의 우월주의의 표출이다. 유명기 교수(경북대)는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보도는 ‘문제’ 또는 ‘사건’ 중심이어서 팔·다리가 잘리는 산재를 당하고도 한푼의 보상금도 못 받았다든지, 악덕업주와의 갈등으로 죽음에까지 이른 사건들을 다룰 때 ‘무너진 코리안 드림’ 운운하는 표제가 단골로 등장한다”면서 “이런 보도들이 반복됨으로써 외국인 노동자는 천한 직업에 종사하는 불쌍한 존재로 각인된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는 노동자와 업주의 개별적 관계로 제한돼 법적·제도적·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를 오히려 가로막는다고 그는 보았다.

=强小國 걸맞게 대우해야=

이제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도 전지구화, 세계화 시대에 한국이 ‘강소국(强小國)’으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경제적 수준과 아울러 높은 도덕성을 갖춘 인권국가란 인식을 바탕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설동훈 교수(전북대)에 따르면 그 강소국의 조건은 부국강병이 아니라 평화와 인권 및 삶의 질 존중이다.

〈김철웅/미디어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