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지의 "정치하지 않는다"를 살펴보다

대만 후이수이린(惠随琳) 장편칼럼

2015-02-07     [편집]본지 기자

카이펑왕(凯风网)은 일찍 후이수이린(惠随琳)의 칼럼 "이홍지의 「'정치하지 않는다'를 말 한다」라는 글을 실어, 그 시시비비를 논하였다. 이에 얼마 전 한국기독교협회익명의 모 장로가 본지에 그 장편칼럼을 추천하며, "종교는 종교의 율법을 어기지 말아야 하고, 전통건강수련단체는 자체의 선과 룰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못하면 세상이 어지러워 진다"며, "이홍지가구경 무슨 잘못을 범했는지 독자들이 판단할 필요성이 있어 이 문장을 추천한다"고 그 이유를밝혔다. 편집자 주

파룬궁은 "우리는 수련을 하는 것"이지, "정체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파룬궁의 창시자 이홍지는 중국인민 마음속에서의, “정치”의지위와 영향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당대 중국에서, 민중들이 출처가 불투명하고 정치색채가 농후한 민간조직에 대해서 대부분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훤히꿰뚫고 있었다. 이에 이홍지는, 1992년 파룬궁을만들어낼 초기에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정부를 반대하지 않는다”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또, 이로 민중을 미혹시켰고 민중의 참여에 신임을얻어냈으며, 신도들을 발전시켜 향후에 장대해지고 세력을 키우는데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당초에 "정치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하던 이 사이비 교주는 일구이언(一口二言)을 일삼았으며, 후에는 아예 팔을 걷어 부치고 정치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는중국 대륙에서 기세등등하게 '정치'를 했을 뿐만아니라, 심지어 대만에서도 크게 '활약'을 하였다. 사실이 증명하다시피,그는 다른 국가와 지역에서도 '정치'에 손을 뻗치고 있었다.

1. 소위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한 것은 거짓이다.

이홍지는 파룬궁을 선전하는 초기 단계에 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 "파룬대법수련자준칙” 제5조에 “파룬궁대법학도는 심성을 수련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절대 국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며, 더욱이 그 어떤정치성 분쟁과 활동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규정을 어긴 자는 더 이상 법륜대법의 제자로 인정할수 없고 모든 후과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명확하게 규정하였다.「파룬대법대원만법(大圓滿法)」

1996년 이홍지는 “수련은 정치가 아니다”라고 하는 소위의 “경문”을 내놓았는데, 경문속의 내용에는 이런 말이있다. “일부 학원생들은 사회나 정치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데, 이런강렬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여 우리의 대법을 배우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의 대법을 이용하여정치에 참여하려고 망상하고 있는데, 이것은 신을 모독하고 법을 모독하는 더러운 심리적인 행위이다. 만약 이런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면 절대 원만(圓滿)함을 이룰 수 없다.…사회가 우리를 어떻게 대하든 그것은 수련자들의마음을 시험해보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이 '정치에발을 담구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면 이홍지는 왜서 "수련자는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는 거짓 설교를 했을까? 그 목적은 바로 사람들의 시선을 따돌려 "파룬궁은단순히 심신을 수련하고 각종 정치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수련단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눈가림 수법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파룬궁을 수련하도록 기만하기 위해서이다.

1999년 6월, 이홍지는 소위 '경문'의 <안정>에서 “우리는 수련자이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라고재차 강조하였다. <파룬대법수련 국제교류회의 마감연설> 가운데는이런 한 단락이 있다. "우리는 절대 정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정치에 간섭하지 않으며 절대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 만약 이홍지가 정치에 참여한다면 오늘날에 전도한 것은 올바르지 않은법이다. 나의 말을 기억하라”

이홍지는 '마감연설'에서 두 가지 뜻을보여주려고 하였다. 즉 대내적으로는 이런 태도 표명으로 학원들의 진취심을 불러일으키고, 대외적으로는 파룬궁에 대한 비평을 억제하여 파룬궁의 합법성을 회복시키려는 것. 그러나 이홍지 본인이나 이후 파룬궁조직의 발전을 보면, 그들은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애써 변명을 하고 있음을 증명해주고있다.

2. 소위 “정치하지 않는다”는수치(羞恥)를 가리는 무화과 잎에 불과하다

1999년 7월 22일, 중국정부는 법적으로 파룬궁을 금지하였다. 비록그때 이홍지는 미국으로 도망을 갔지만, 법률의 위력은 그에게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는 "나의 일부 성명"이라는 “경문”을 발표하여 “나는 본시 수련자로서 종래로 정치와는 인연이 없다”라고 말하였으며,“중국 파룬궁은 군중적인 수련활동이지, 조직이 아니며, 또한 어떠한 정치적인 목적이 없다. 종래로 정치활동에참여한 적이 없다.”고 변명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이든 미래이든 상관없이 정부를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변명하였다. 그는 일부러 “군정성실수련조직(群众性实修组织)”을 “군중성수련활동”으로고쳤는데 그 가운데는 현묘한 궤책이 숨겨져 있었다.

2003년 7월, 이홍지는 미국법회에서 “파룬대법 강의”를 하던 도중, 또 정치에 대해무심한 듯 한 태도를 취하며 “우리들은 일반인들의 금전이나 일반인들의 정치, 또는 권력에 대해 조금도 흥취를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2004년 11월, 이홍지는 뉴욕국제법회에서의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자신과 파룬궁에 대해서 “우리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다. 인류의 좋고 나쁨과, 중국인민들이 어떤 제도를 선택하는지 하는 것은 사람의 일로서 나와 파룬궁 제자들은 종래로 어떠한 제도를선택해야 하고 어떻게 생활해 나가야 하는지 입 뻥긋한 적이 없다”라고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홍지는 표면적으로는 파룬궁수련자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파룬궁조직이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해왔지만, 실제로파룬궁조직은 정치와 무관하지가 않았다.

중국공안부에 대한 조사와 중국 신문출판사에서 하달한 통지를 보면 파룬궁조직은 신문출판사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포위 공격하였는데, 마침내 세상을 놀래우는 '4·25사건', 즉 중국 중앙에 소재한 '중남해 사건'을 일으켰는바, 이는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자못 나빴다.

사실은 웅변보다 낫다. 이홍지가 “정치를하지 않는다”고 한 말은 "정치에 참여했다"는객관적인 사실을 가릴 수가 없다. 이는 결국 자신의 수치를 가리기 위한, 허위적인 베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3. 소위 “정치하지 않는다”는일종의 기편 책에 불과하다

이홍지의 소위 “경문”과 “법회”는모두 그 본인이 절대적인 숭배, “파룬궁”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기반으로 하여 세워진 사상기초와 조직체계로서, 날이 갈수록 정치적인 색채를 띠었다. 그는 수련자들이신체 단련으로 병을 막는다는 최초의 훌륭한 소망을 미끼로, 진정 맹목적인 숭배에로 이끌었으며, 중국정부를 위협하는 칩으로 삼았다.

예를 들면, 그는 중국의 민족영웅 악비의 고향에 몇 글자 써주면서 악비묘에 비석을세울 것을 요구하였는데, 민족영웅의 영향력을 빌어 자신의 명성을 알리고 자고 시도하였다. 당시 문화관리부가 이를 거절하자 그는 현지 정부기관에 가서 소란을 피워대기까지 하였다. 또 예들면, 이홍지는 사람들이 파룬궁에 대해서조그마한 비판이 있기만 하면 파룬공 신도들을 이끌고 가서 신문단위와 정부기관을 포위 공격하였는데 특히 '중남해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신도들의 충성심을 이용하여중국정부와 대립하고 저항하여 정치상에서의 힘겨루기를 함으로써 정치자본을 얻어 "남에게알일 수 없는 정치적 목적"을 이루고자 함이었다.

파룬궁신도들에게 중남해 앞에서의 정좌(静坐)를 계속 선동하기 위해 그는 “인내를 포기하고 죽음을 포기하면 신이다. 그렇지 않으면 평범한 인간이다.”라고 격려하였으며, '정좌'에 참여하려 하지 않는 신도들에 대해 '경문(经文)'에서 그는 이런 위협을 하였다. “내가 너희들이 사람들과 결별하라고 할 때 너희들은 나를 따르지않았다.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중남해를 포위 공격하여 악렬한 영향을 끼친 후 이홍지는 해외에서도 이렇게 선동했다. “북경에있는 신도들은 모두 매우 훌륭하다. 더 이상 그들을 평범한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된다. 위대한 신이다.” 이런사례들을 놓고 볼 때 그가 어찌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일부 매체와 전문가들은 이홍지의 “정치하지 않는다"에 대해 꿰뚫어 보았다. <워싱턴우편신문>의 2001년 3월 10일에 실린 '이홍지가 외국에서 파룬궁활동을 조종하고있다'라는 문장을 보면 “이홍지는 중국정부와의 충돌을일으키는데서 관건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우선, 제자들로하여금 중국 경찰들과 겨루도록 하고, 나아가서 제자들이 중국에 대해 저항하도록 계속 선동을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2007뉴욕법회강법>에서 이홍지는 이런 말을 하였다. “사회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의 일은 정치에 속한다. 이것은자유사회의 각도에서 말한 것이다.중국공산당에 의해 변형된 정치 관념에 서서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이된 정치는 사람을 때리는 방망이다. 그렇다면우리도 사용할 수 있는데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는 “정치는 사람을 때리는 도구”라고 얼마나 잘 말했는가! 게다가 “정치”에 또 다른 기능을 부여하고 있다. 즉 정치를통해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때릴 수도 있고 사람을 구할 수도 있는 이런“정치”에대해 이홍지는 조금도 은폐하지 않고 “우리도 쓸 수 있다. 무슨상관이 있는가?”라고 말하였는바, 그는 이미 파룬궁이내세운 소위 <9평> 등을 “정치도구”로 이용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승인한 셈이 된다.

사실 이홍지는 이런 설법을 한두 번 내놓은 게 아니다. <정치를 다시 논하다>는 문장에서 그는“만약 ‘정치’가 박해를 폭로할 수있다면 ‘정치’는 박해를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가진상을 보여주는데 도움이 된다면 ‘정치’는 중생을 구할 수 있는데 이런 장점을 갖고 있는 소위의 ‘정치’를 왜 하지 않겠는가!", “대법제자들이자체로 매체의 박해를 반대하고 세인을 구하는 것은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정당당하게 이 ‘정치’를 이용하여 박해를폭로하고 중생을 구하라!”하고 크게 외쳤다.

<2005센프란시스코법회강법>에서 이홍지는 "박해를받고 있는 사람들은 정치를 한다고 해도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며, 이것은 마땅한 일이다.”라고 더욱 적나라하게 말했다.

이로 놓고 볼 때, 이홍지는 이미 “정치에참여하지 않는다”는 가면을 벗어 던지고 소위의 “진·선·인”과 “평범한 사람”들과 어울려 “평범한 사회를 만들겠다”는사실을 등 뒤로 한지 오랜 것이다. “박해를 폭로하고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황당한 설교는 이유가 못된다.

<로스엔젤스법회강법>에서 이홍지는 두 가지 가설을 내놓았다. 한 가지는 “무엇이 정치인가? 만약 나, 이홍지가 여러 분을 이끌고 정치 속에서수련한다면 수련이 성공할 수 있겠는가? 절대적으로 가능하다.” 그는 또, 더 맹렬한 가설을 내놓았다. “만약 내가 오늘 여러분들을 이끌고, 임금과 신하의 방식으로신하인 당신들을 이끌고 수련한다면 수련이 성공할 수 있겠는가? 이것도 절대적으로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더 원만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어떤 방도로 이 길을 걸을 것이고, 어떻게 중생들을 책임질 것이며, 어떻게 하면 생명을 늘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대법의 지도에 따라서 한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시피 이런 가설은 그가 "정치 불장난"을하고 있으며, 심지어 “제왕”이 될 헛된꿈을 꾸면서 자신을 “임금”이라 칭하고 소위의 “대법제자”를 “한 무리의 신하”로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또, 그가 왜서 <9평>을 내놓았고, 왜서 "중국공산당을해체”시키려고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 최종 목적은 “제왕"의 꿈에 있는 것이다.

일찍이 <로스안젤스법회강법> 전몇 개월 사이에 이홍지는 경문을 발표하여, 자신의 “제왕”의꿈을 “천하에 내비친 적”이 있다. “만약 이홍지내가 이 생에 제왕이 되어 한 무리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수련을 한다면 되겠는가, 되지 않겠는가? 절대적으로 된다! 법의 정의의 에너지가 생명력을늘릴 수 있고, 이 길을 정확하게 나아갈 수 있다면 무조건 될 수 있다! 정말로 그렇게 된다고 해도 미래의 선택이고, 미래의우주가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맨하탄국제법제강법>에서이홍지는 “장래에 법이 바로 서는 인간세상이 올 때, 혹은그 이전에 중국공산당이 무너진다면 누가 집정을 하겠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정말로 뻔뻔스럽고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자이다. 그는꿈속의 “제왕”에 대해 “신은 바로 큰뜻을 품고 있고 능력이 있으며 도덕이 고상한 사람들을 찾는다. 절대적으로 그럴 것이다!”라고 묘사했다.

상술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한편으로 그는 “정치에참여하지 않는다”고 크게 표방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이미 “정치”에 대해 “침을 질질" 흘리고 있은 것이다. 이런 “서방질하며 비석을 세우는”수법은 그가 관용적으로사용해오던 계략으로, 그는 “대법제자”들로하여금 자신을 위해 “충성”을 다하기만 바랐다.

이홍지의 마음은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 안다. 미국 시사평론가 대위 유잉은 “파룬궁은 세계상에서 가장 큰 반공산당 조직으로, 미국정부에게는더욱 관방적인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반사이비전문가 알렉산드레는 “파룬궁은 미국의 직책부서가 중국내정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효과적인도구로 볼 수 있다.”라고 정의를 내렸다.  

따라서 이홍지가 여러 번 다른 장소에서 떠벌인 “정치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냥 해본 소리이요,기만일 따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파룬궁이 대만선거에 참여하는 '황당극'이 한국에서도 재연 가능하다

10여 년간, 이홍지는 이론적으로 이런 꿍꿍이를 꾸민 외에도, 실제적으로 사회에서 붙는 불에 키질하는 격으로 신도들을 현혹시켜 “정치적인추행”을 크게 벌리었다.

여기에는 대만 민진당의 “정치선거”를 지지하고 참여한 일도 포함된다. 이들은 민진당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2014년 “9합1일선거”전에파룬궁신도들에게 전문 명령을 하달시켰다. 즉 매체를 이용하여 전적으로 민진당을 지지하도록 민진당후선인의 기세를 크게 돋워주었다. 그래서 파룬궁이 중점적으로 지지한 여러 명의 후선인들이 모두선거에서 순조롭게 당선될 수 있었다. 이홍지와 민진당은 "한쪽에서 사람을 내고 다른 한 쪽에서 돈을 내는 거래"를 한 셈이다. 그러나 이홍지는 이런 일들을 비밀인척 일부러 숨기며, 자기의총명한 제자들더러 스스로 어느 쪽이 “친구”인지 “알아차리라”하고명시해 주었다.

2003년 2월 <정월대보름법회>에서 그는 “저번의 대만선거 때 나는 오랜 신도들에게대만학회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대법학회는 선거에 아무런 태도 표시가 없다'고 말하라고 했다”, “누가 투표하러 가고 싶으면 투표하러 가라, 아무 문제가 없다. 그 의원과 나 이홍지는 친구인데그를 위해서 뭔가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아무튼 선거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의무일뿐이지,별 게 아니다.”라고 떠벌렸다.

보다시피 민진당이 그번 선거에서 대승리를 거둔 것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를 선양하던파룬궁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는 일도 없고, 개혁과 진보가 없으며, 중국대륙과의 교류와 협력을 거절하고 반대하면서 대만경제발전에는 상관하지도 않는 정당이 어떻게 선거에서대승할 수 있었겠는가?

민진당과 허위적이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파룬궁이 의기투합하여 못된 일을 저질러, 대만의정치풍기에 대한 우려를 낳게 하였다. 이미 중국정부에 의해 사이비종교로 판정이 파룬궁은 현재한국에서도 발전하여 세력이 커지고 있으며, 한국의 개별적인 '정치엘리트'들도 개인적인 정치이익 때문에 사적으로, 심지어는 공개적으로파룬궁의 지지를 받는 것과 관계를 끊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나가게 되면, 미국에 둥지를 튼 사이비종교 교주-이홍지가 소위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대만에서 한국으로다시 한 번 옮겨와서 실천할지, 누가 알겠는가? 정말개탄할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