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후손 16명, 광복절 맞아 대한민국 국적 취득

백범 김구 선생 주치의 아들 등 , 최초 미국인 독립유공자 등

2014-08-12     강성봉 기자

[서울=동북아신문]법무부(장관 황교안)가 지난 8월11일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 김영관 선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그동안 외국국적으로 살아오다 대한민국에 특별 귀화한 독립유공자 후손 16명을 위한 국적증서 수여식을 진행했다. 제69주년 광복절에 즈음하여 국민들이 다함께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되새겨보고, 조국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에 대한 보답으로 그 후손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지위가 부여된 것이다.

이 날 행사에는 독립유공자 유진동 선생, 윌리엄 린튼 선생, 양기탁 선생 등의 후손 16명이 참석하여 국적증서를 받았다.

유진동 선생은 의사로서 1940년부터 광복군사령부 군의처장, 1942~3년경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 의원과 백범 김구 선생의 주치의로 활동했고,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윌리엄 린튼 선생은 1912년 선교사로 입국하여 1919년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제작 등 3.1운동을 후원하는 한편, 한국의 독립운동 소식을 외국신문에 기고했고, 1936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강제출국 당했으나, 1956년 재입국하여 대전대학을 설립했고,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양기탁 선생은 독립협회 및 만민공동회 간부로 활동하다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고, 영국인 베델과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했으며, 대한민국 임시국무령을 역임하고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법무부는 2006년부터 매년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아 특별귀화 허가를 통해 총 908명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했고, 최근 특별귀화의 요건을 간소화하고, 이분들의 안정적 국내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기술교육과 장학금 등을 제공하고 있다.

황교안 장관은 이 날 행사에서 “광복절을 맞아 오늘날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독립유공자 등 애국지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불굴의 노력에 감사한다”며, “북한의 안보위협과 일본의 역사왜곡 등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 모두가 순국선열의 뜻을 이어받아 철저한 안보의식과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지고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여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하자”고 밝혔다

<국적취득자 생활사례>

연번 1)

유○○(60세, 남) : 광복군사령부 군의처장 및 임시 의정원 의원을 역임한 유진동(1908~미상,‘07년 애국장) 선생의 자

❍ 백범 김구 선생의 주치의로 알려진 유진동 선생의 아들 유○○씨는 독립투사이신 선친께서 필사적으로 지켜내고자 했던 대한민국에서 이제는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한다.

❍ 유○○씨는 해방 후 세살이던 1957년, 가족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북한으로 갔으나, 1959년 평양 중앙병원에서 요양 중이던 아버지로부터 “다른 사람이 잘 돌봐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편지를 끝으로 소식이 완전히 끊기게 되었다고 한다.

- 이후, 국가안전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와 관련된 물건 등을 빼앗아 가버렸으며, 아버지를 찾으러 간 둘째 형도 북한당국에 체포되고, 그때 받은 충격으로 둘째 형은 정신이상자가 되었다고 한다.

-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자, 유씨 가족은 1963년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 모두 중국 중경에 정착하게 되었고 유○○씨는 중국인 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부터 최근까지 중경시 소재 공장에서 근로자로 생활하였으며, 한국어 구사는 서툴다.

- 유○○씨는 “당시 독립운동을 하셨던 많은 분들이 북한에 들어 가셨다가 김일성에 의해 숙청당했는데 아버지도 그렇게 되신 것 같다”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 현재 국가보훈처 중국 독립운동 사료수집 업무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유○○씨는 아주 어렸을 때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다면서 “아버지는 아리랑과 도라지 노래를 자주 불러주셨고, 부드러운 성품의 소유자였다”라면서, 선친의 업적에 누가 되지 않도록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연번 2)

○○○○ ○○○ 린튼(43세, 남, 이하‘린튼’) : 전주 신흥학교 교장 재직중, 일제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독립운동 소식을 외국신문에 기고한 윌리엄 린튼(1891~1960,‘10년 애족장) 선생의 증손자

❍ 고조할아버지인 유진벨을 시초로 1885년 이래 대한민국과 인연을 맺은 50여 명의 일가 친척들에 대해 어릴 때부터 선대들의 한국사랑에 대해 듣고 자라온 린튼 씨는 자신도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항상 느껴왔다고 한다.

- 린튼 씨는 콜럼비아대학 시절인 1993년 서울대학교 교환학생으로 2년간 한국을 방문하였고, 이후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한국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 알라바마주 대법원 변호사 등을 거쳐 한국에 다시 돌아와 2007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법무법인에서 법률자문역으로 근무하고 있다.

- 서울대학교 유학시절 린튼 씨는 한국어 및 한국문화에 더욱 친숙해지기 위해 한국인 친구 두 명과 함께 신림동의 원룸에서 자취를 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한국인의 ‘정(情)’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기였다고 한다.

❍ 그는 “평소 할아버지는 한국에 묻히길 바라셨다”며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한국이 발전한 것을 보셨다면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것” 이라며 ‘한국 사람들의 정(情)이 좋아’, ‘한국 사랑을 실천해 온 가족사 덕분에’ 한국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그의 가문 친척 중 스티브 린튼은 북한 주민들에게 결핵약을 보급해온 유진벨재단 회장, 한국 이름 ‘인요한’으로 더욱 유명한 세브란스 병원 국제진료센터 교수인 존 린튼은 그의 숙부이기도 하다.

※ 인요한 박사는 본인의 특별공로로 2012. 3. 13. 특별귀화허가를 받음

<린튼가문 가계도>

 

 

 

 

 

 

 

 

 

 

 

 

 

 

 

 

 

 

 

 

 

 

 

 

 

 

 

 

 

 

 

 

 

 

 

 

 

 

 

 

 

 

유진 벨

 

 

 

 

 

 

 

 

 

 

 

 

 

 

 

 

 

 

 

 

 

 

 

 

 

 

 

 

 

 

 

 

 

 

 

 

 

 

 

 

 

 

 

 

 

 

 

 

 

 

 

 

 

 

 

 

 

 

 

 

 

 

 

 

 

 

 

 

 

 

 

 

 

 

 

 

 

 

 

 

 

 

 

 

 

 

 

 

 

 

 

 

 

 

 

 

 

 

 

 

 

 

 

 

 

 

 

윌리엄 린튼

(증조부)

 

 

샬럿벨

 

 

 

 

 

 

 

 

 

 

 

 

 

 

 

 

 

 

 

 

 

 

 

 

 

 

 

 

 

 

 

 

 

 

 

 

 

 

 

 

 

 

 

 

 

 

 

 

 

 

 

 

 

 

 

 

 

 

 

 

 

 

 

 

 

 

 

 

 

 

 

 

 

 

 

 

 

 

 

 

 

 

 

 

 

 

 

 

 

 

 

 

 

 

 

 

 

 

 

 

 

 

 

 

 

 

 

 

 

 

 

 

 

 

 

 

 

 

 

 

 

 

 

 

 

 

 

 

 

 

 

 

 

 

 

 

 

 

 

 

 

 

 

 

 

 

 

 

 

 

 

 

윌리엄 린튼 2세

 

 

유진 린튼

 

 

휴 린튼

(조부)

 

 

로이스 린튼

 

 

드와이트 린튼

 

 

 

 

 

 

 

 

 

 

 

 

 

 

 

 

 

 

 

 

 

 

 

 

 

 

 

 

 

 

 

 

 

 

 

 

 

 

 

 

 

 

 

 

 

 

 

 

 

 

 

 

 

 

 

 

 

 

 

 

 

 

 

 

 

 

 

 

 

 

 

 

 

 

 

 

 

 

 

 

 

 

 

 

 

 

 

 

 

 

 

 

 

 

 

 

 

 

 

 

 

 

 

 

 

 

 

 

 

 

 

 

 

 

 

 

 

 

 

 

 

 

 

 

 

 

 

 

 

 

 

 

 

 

 

 

 

 

 

 

 

 

 

 

윌리엄 린튼 3세

 

데이비드 린튼 (부)

 

스티븐 린튼*

 

제임스

린튼

 

마리아

린튼

 

앤드류

린튼

 

존린튼

(인요한)

 

 

 

 

 

 

 

 

 

 

 

 

 

 

 

 

 

 

 

 

 

 

 

 

 

 

 

 

 

 

 

 

 

 

 

 

 

 

 

 

 

 

 

 

 

 

 

 

 

 

 

 

 

 

 

 

 

 

 

 

 

 

 

 

 

 

 

 

 

 

 

 

 

 

 

 

 

 

 

 

 

 

 

 

 

 

 

 

 

 

 

 

 

 

 

 

 

 

 

 

 

 

 

 

 

 

 

 

 

 

 

 

 

 

 

 

 

○○○○ ○○○ 린튼

(국적증서 피수여자)

 

 

 

 

 

 

 

 

 

 

 

 

 

 

 

 

 

 

 

 

 

 

 

 

 

 

 

 

 

 

 

 

 

 

 

 

 

 

 

 

 

 

 

 

 

 

 

 

 

 

 

 

 

 

 

 

 

 

 

 

 

 

 

 

 

 

 

 

 

 

 

 

 

 

 

 

 

 

 

 

 

 

 

 

 

 

 

 

 

 

 

 

 

 

 

 

 

 

 

 

 

연번 3)

한○○(57세, 여) : 한민족 학교 교장으로 항일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한 한경희(1881~1935,‘96년 애국장)선생의 손녀

❍ 중국 연변에서 4남 1녀의 넷째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교육을 하며 항일 운동을 하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정직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항상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 연변대학교 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35년간 조선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중국어를 가르쳤으며, 우리 조선족 동포들이 중국어를 쉽게 배울 수 있게 중국어 연구에 부단한 노력을 하며 지도하였다고 한다.

- 교직에서 퇴직하고 2009년 할아버지가 몸 바쳐서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고국을 방문하였으며, 한국에서도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다방면으로 알아보았으나 젊은 선생님만 필요하다고 하여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시간이 있을 때 마다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 큰오빠는 사망하였고, 둘째, 셋째 오빠는 이미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으며, 남동생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 둘째 오빠 한광준이 할아버지 사진을 간직하고 있어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께서 생전에 말씀하셨던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고 한다.

-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가 그토록 독립을 염원했던 대한민국에서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정신을 마음속에 간직 하면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독립유공자 후손 참석자 명단> 

연번

원국적

성 명

(연령)

직 업

비 고

1

중 국

유○○

(60세, 남)

유진동 선생(‘07 애국장)의 자

※ 광복군 사령부 군의처장 및 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하고, 백범 김구선생의 주치의

2

미 국

○○○○

○○○ 린튼

(43세, 남)

변호사

윌리엄 린튼 선생(‘10 애족장)의 증손자

※ 전주 신흥학교 교장으로 독립운동을 후원, 독립 운동 소식 외국신문에 기고, 대전대학 설립

3

중 국

한○○

(57세, 여)

식당 종업원

한경희 선생(‘96 애국장)의 손녀

※ 한민족 학교 교장으로 항일 독립정신 고취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3년 옥고를 치룸

4

중 국

노○○

(31세, 남)

회사원

양기탁 선생(‘62 대통령장)의 외증손자

※ 독립협회 및 만민공동회 간부, 신민회 창립, 임시정부 국무령 역임

5

중 국

김○○

(53세, 남)

회사원

(충전기 제조업체)

음성국 선생(‘00 애국장)의 외손자

※ 항일 민족교육 실시와 국민부 지방조직 확장 등 독립운동하다 체포되어 무순감옥에서 순국

6

중 국

김 ○

(28세, 여)

화장품

방문판매원

이 정 선생(‘63 독립장)의 외증손녀

※ 김좌진 장군이 조직한 북로군정서에 가담, 청산리 전투에서 전공을 올림

7

중 국

오○○

(37세, 남)

잡화상점

종업원

강인수 선생(‘90 애국장)의 외증손자

※ 김좌진 장군이 조직한 북로군정서에 가담 청산리 전투 참가, 한민족연합회 결성 등

8

중 국

김○○

(45세, 여)

식당 종업원

김영호 선생(‘11 애족장)의 증손녀

※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2년여 옥고 중 폐병으로 형집행정지를 받고 출옥 후 사망

9

중 국

김○○

(22세, 남)

김영호 선생(‘11 애족장)의 증손자

※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2년여 옥고 중 폐병으로 형집행정지를 받고 출옥 후 사망

10

중 국

이○○

(26세, 여)

면세점

임시직원

최관 선생(‘96 애족장)의 외증손녀

※ 대종교 활동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전개하다 체포되어 8년여 옥고를 치룸

11

중 국

이○○

(31세, 남)

자영업

이은영 선생(‘90 독립장)의 외현손

※ 의병자의 가족을 규합 독립의군부를 조직, 조선총독부에 항의서한 송부 등으로 옥고

12

중 국

김○○

(60세, 남)

건설 일용직

김술로 선생(‘12 건국포장)의 손자

※ 비밀결사 조직에 가입,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13

중 국

김○○

(52세, 남)

건설 일용직

김술로 선생(‘12 건국포장)의 손자

※ 비밀결사 조직에 가입,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14

중 국

김○○

(50세, 여)

식당 종업원

김술로 선생(‘12 건국포장)의 손녀

※ 비밀결사 조직에 가입,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15

중 국

남○○

(41세, 여)

회사원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조병일 선생(‘96 애족장)의 외증손녀

※ 만주지역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후원하다 일본군에 피살 되어 순국함

16

중 국

이○○

(42세, 여)

식당 종업원

이계준 선생(‘95 건국포장)의 증손녀

※ 유림 대표로서 독립청원서에 서명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옥고를 치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