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사회에 진정한 지식인은?

진정한 선비는 먼저 천하의 근심을 하고 후에 천하의 낙을 누리라!

2006-03-31     동북아신문 기자

 

 

 

나의 양심이 또 다른 나를 송곳질 하고 있어 요즘은 더더욱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하늘을 향해 울어보아도 답을 찾을 수가 없어 이렇게 또 반 치 붓끝을 놀려서 자괴에 떠는 내 양심에 일말의 위안을 얻고 싶은 것일까. 자신도 잘 모를 일이다.

진정한 선비는 먼저 천하의 근심을 하고 후에 천하의 낙을 누리라는 옛 성인의 가르침도 있건만 오늘날 중국동포사회에 지식인의 구실을 하는 지식인은 한 사람도 없다. 아직은 지식인이라 불리우기엔 너무 부족한 나 자신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지식인으로 불리기도 하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서.

그럼 오늘날의 우리 동포사회의 지식인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
백성의 가질 몫까지 더 앗아가져서 지식인이라 불리는 우리들이지만, 정녕 우리는 이렇게 얻어온 지식을 도저히 천하의 근심을 먼저 하는 데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지금 나는 나의 지식을 더 높은 월급 더 좋은 거주환경을 찾기 위한 담보로만 사용하고 있음에, 가끔은 밥술을 뜨다가도 밥알이 목에 걸릴 때도 있다. 우리 백성의 설움을 대변하고 그 근원을 파헤치며 해결책을 제시하고 호소해야 할 지식인의 사명을, 이 나라의 오늘과 미래를 우려하여 충언을 아끼지 않는 우국충신이 되어야 할 사명을, 우리는 저버리고 살고 있다.

혹자는 일신의 영광을 위해 매필한다, 혹자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굴필 한다, 혹자는 예상되는 개인의 불이익을 위해 입에 맷돌을 달아맨다, 혹자는 아예 내가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타에는 관심이 없다. 백성은 지식인의 부모라고도 하거늘, 그 부모가 울부짖고 있는 소리에도 태연하기만 한 오늘날 지식인의 떼 먹힌 양심이다.

떼 먹힌 양심, 그 양심이 붙어있었던 가장자리가 때로는 나를 누르는 듯,,,
눈앞의 이 현실, 구경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현실만을 본다면 지식인이라 할 수 업거늘, 이 참담한 현실을 뚫고 미래를 보아야 하거늘, 그래서 미래에 대한 꿈과 방향을 가지고 오늘날에 타협하지 말아야 하거늘, 이 민족의 독립은 현실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했지만 미래를 보고서 독립의 길을 견지했던 우리 선인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독립의 큰 뜻 품었었지만 참담한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는 독립의 길을 포기하고 투항했던 선인들도 우리는 알고 있거늘, 오늘날 우리 중국동포사회가 가고자 하는 이 길은 험난하기만 한데...
그래도 우리는 미래를  <민족화합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걸어가야만 하는데..

나 자신도 가끔 발걸음이 휘청거릴 때에는 울음이 터지기도 한다.

서울이 곧 수도라는 관습헌법은 알지만, 이 나라의 자손들은 이 나라 땅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수천 년 유구한 전통과 그 위에 구축된 이 나라 건국이념과 성문헌법을 모르는 남쪽의 무리들, 오늘도 경비대 수사대 온갖 대 총동원하여 합동단속을 해대고 있다, 총박죽 휘둘러대며 한 무리들을 이 땅에서 기어코 잡아내고 쫓아내려는 다른 한 무리들, 구경 누가 내려준 단속권리이며 누가 쥐어준 수쇄족쇄란 말인가..
쫓기고 얻어맞으며 울고 있는 무리도 우리 어버이 우리의 백성들이고 쫓아내려고 바둥대는 무리도 이 나라 어느 집의 귀한 자식들임에 더 통탄스러운 이 현실, 이 앞에 동시대에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나는 큰 죄인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저 총박죽을 휘둘러대는 무리들이나 쫓기우는 무리들이나 내 나라의 내 백성 내 형제가 아닌 남 나라의 무리들이라면...
눈앞의 이 현실은, 내 붓끝에서 한낱 역사기술체로 묘사될 수 있을 것을.

어느 외국인의 붓끝에서 묘사된 임진왜란처럼.

< 눈앞에 보이는 서울의 모습은 비록 타국의 모습이라지만 처참하기 그지없었고 중국국적을 가지고 살다가 서울로 건너온 한 무리 한국인들의 쫓겨 다니고 잡혀 갇히는 참상에 서울의 하늘도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중국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50여 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단속별동대들에 잡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지만 여러 갈래의 대오로 구성된 한국합동단속대의 치밀한 포위공격 하에 남녀노소 속속 잡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잡히면 일단 수쇄 채우고 죄수복 입혀 보호소라는 감옥에 수용되며 얼마 후 곧 배편으로 강제송환당하게 된다. 잡혀서 한국땅에서 추방되면 살길이 끊어진다고 발버둥치면서 중국 죽어도 못 돌아간다고 울부짖는 이들의 눈물에 한국의 바다도 흐려지는 듯 했고 아예 강제송환하는 배머리에서 난간에 몸을 싣고 바다로 추락자살하는 여인도 있었으니, 외국인인 나의 눈에도 보고 있을라니 눈물이 나고 있었다. 이 사건이 바로 후일 한국사에서 두고두고 유명한 <중국동포강제추방 및 한국거주권박탈사건>의 한 장면이다.


그 후로 중국동포사회와 한국은 완전한 결렬을 하게 되었고 숙적으로 그 후의 많은 세월을 싸우고 있었다. 동시에 한국의 중국동포사회와의 결렬에 많은 이익을 덤으로 얻은 것은 중국이었고.. 한국은 이 대추방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는지 모르고 잃은 것은 중국동포사회를 적으로 돌려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후세의 사학가들이 아무리 연구하여도 당시의 한국은 어떤 계산으로 민족공동체로 굳게 뭉쳐진 200만 중국동포사회에 이런 정책을 펼쳤는지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밥 그릇 들고 공짜로 먹여달라는 200만도 아니었는데, 200만중에 50만이 한국노동력시장을 위협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한국국토에 4천만 국민이 이미 포화상태여서 국민이 50만명 불어나는 것은 공동멸망이라는 판단 때문에 이들을 떼여내고 침몰되어 가는 한국이란 배를 살리려 했던 것일까? 역사의 수수께끼이다. >

오늘날의 이 난을 후세들은 정확히 평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일까?
한국영사관 앞에 가서 <중국동포 강제추방 반대>를 일인시위로 외쳐보는 것일까? 아, 또 한무리 쫓기는 우리 백성들을 위해서 중국영사관 앞에 가서 <탈북자 강제송환 반대>를 일인시위로 외쳐보는 것일까? 진정한 지식인들이 목소리를 조금만 합친다면, 우리가 쫓기는 그들 앞에 이다지 부끄럽지는 않으련만...

나는 당신들 앞에 죄인이고 이 시대 오늘의 역사 이 페지 앞에 죄인입니다..

 

박춘 chunqing@hanmail.net
前 꽃망울 회장
뉴욕의대 박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