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를 품에 안고 새해 소망을 빌다

‘감동이 있는 여행! 여행톡’과 함께 한 대왕암 해맞이여행(상)

2014-01-07     강성봉 기자

[서울=동북아신문]새해 첫 해맞이를 대왕암이 있는 경주 감포 앞바다에서 하기로 한 동북아신문 식구 5명은 2013년 12월31일 밤 10시30분 서울 교대역에서 ‘감동이 있는 여행! 여행톡(대표 이성주)’의 해맞이 여행팀과 합류했다.

일행은 30여명. 버스가 출발하자 이성주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뜻 깊은 해맞이 여행이 되길 빈다”며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이번 여행에서 경주의 역사유적에 대한 안내를 해줄 사람이라며 경주 출신 친구인 인디드투어의 김종희 사장을 소개했다. 일행은 숙면을 취하기에는 불편한 버스임에도 불구하고 새벽 일출을 더욱 뜻 깊게 맞이하려는 듯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잠을 청했다.

버스는 중간에 한번 쉬고, 달리고 달려 이번 여행의 첫 기착지인 ‘철의 도시’ 포항 영일만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일행은 한 시간 여 휴식을 취한 뒤 멀리 환하게 불을 밝힌 포스코의 야경과 파도치는 영일만의 밤바다를 뒤로 하고 새해 첫 해맞이를 위한 우리의 최종 목적지 경주 양남 감포 앞바다로 향했다.

누군가가 해가 “몇시에 뜨느냐”고 묻자 “7시31분에 뜬다”고 또 다른 누군가가 대답했다.

버스가 한 시간 여를 달려 감포 앞바다에 도착한 것은 새벽 6시쯤. 멀리 어둠속에 문무왕의 넋과 혼이 어려 있는 대왕암이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냈다. 해가 뜨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대왕암은 한민족 최초의 통일국가인 신라의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문무왕은, 통일을 이룬 후에도 적지 않은 근심거리를 떠안고 있었다. 바로 시도 때도 없이 동해 바닷가에 상륙해 노략질을 일삼고 수도 경주까지 위협하는 ‘왜구’의 침입이었다.

왜구를 완전히 진압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 문무왕은 ‘죽은 후에라도 왜구를 진압하겠다(欲鎭倭兵)’ 서원하고 자신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화장해 동해상의 큰 바위, 즉 지금의 대왕암에 장사를 지내라는 유언을 남기게 된다. ‘죽어 용이 되어서라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뜻이었다. 이리하여 세계최초이자 세계유일의 해중릉 대왕암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곳 대왕암은 최초의 주인공 문무왕을 비롯, 효성왕, 선덕왕 등 통일왕국 임금들의 시신이 불교식으로 화장되어 뿌려진 신라 왕실의 공동 묘역이자 으뜸가는 성역이었다.

버스에서 한 시간여 휴식을 취한 일행은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해변으로 나아갔다. 여기저기 촛불을 밝혀놓고 새해 소망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굿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굿을 하며 작두를 타는 모습도 보았다”고 했다. 하도 굿을 하는 사람이 많아 촛불을 켜놓고 소망을 비는 사람은 다 무당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감포 앞바다가 영험이 많은가? 그렇다면 그것은 저 멀리 신라시대부터 동해바다를 지켜온 문무대왕의 넋 때문이리라.

새벽 바람은 차가웠다. 그러나 바닷가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춥다’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새해 첫 ‘해’를 맞는다는 설렘과 기대가 사람들의 얼굴에서 묻어나왔다.

일출시간이 가까워 오자 새해 첫날의 태양이 떠오르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사람의 눈이 동해 바다 끝으로 향했다. 두 손을 비벼가며 동쪽바다를 향해 연신 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조용히 주문을 외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해는 7시31분이 지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일출 예정시간보다 10여분이 지난 7시43분. 드디어 새해 첫 태양이 감포 앞바다의 구름을 헤치고 힘차게 솟아올랐다. 여기저기서 탄성과 함께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새해 첫 태양을 바라보며 묵묵히 새해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기원했다.

다음 행선지인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주상절리 둘레길로 향하는 차중에서 경주 출신인 김 사장의 해설이 이어졌다. 그는 “이 지역의 주상절리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자연문화유산으로 영국의 주상절리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주상절리 군락”이라며, “군부대의 이전과 함께 일반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주에 여러 차례 와봤지만 주상절리 군락이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주상절리(柱狀節理)는 화산폭발 때 용암이 흐르다가 바다와 만나면서 굳을 때 용암이 굳는 속도에 따라 수축되고 암석 간에 서로 당기는 힘이 생겨 육각이나 오각 또는 사각기둥모양으로 굳어져 생기는 것으로 쪼개지는 방향에 따라서 판상(板狀)절리와 주상절리가 있으나, 단면의 모양이 육각형이나 삼각형의 장주상(長柱狀:긴 기둥 모양)으로 세로로 세워져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행은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여유롭게 주상절리 둘레길을 탐방하다 중간쯤 세워진 한 정자에서 ‘여행톡’ 이성주 사장을 만나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이 사장은 “조금 더 가면 부채꼴 주상절리가 나오는데 거기가 클라이맥스(절정)”라고 말했다.

마침내 이 사장이 말한 곳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정말 주상절리가 부채살처럼 펼쳐져 있었다. 일부러 사람이 만들지 않고도 어떻게 저런 모양이 가능할까? 신비로웠다. 조금 더 가자 ‘가로로 누워있는 주상절리’가 나타났다. 이 또한 사람이 일부러 돌을 오각형으로 깎아 쌓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자연의 오묘한 솜씨에 그저 머리가 숙여질 뿐이었다.

둘레길 끝에 하서항이 있다. 우리 일행은 하서항 주차장으로 이동해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다음 행선지는 경주 남산.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써서 국내에 역사유적 탐방 붐을 일으켰던 유홍준 교수가 “남산을 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 하지말라” 했던 바로 그 남산이다.(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