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 수필 18> 함께 하는 삶

2014-01-01     [편집]본지 기자
[서울=동북아신문]옛 어른들의 삶을 가만히 되새겨 보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가 있다. 그분들의 언행(言行) 하나하나가 어린 시절에는 무슨 뜻인지 미처 알지 못하고 넘어가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그 뒤, 점점 성장을 하여 삶을 살아 오는 과정에서 그것들이 모두 깊은 의미(意味)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일상 생활에서의 한 마디 말씀이고 하나의 행위였지만, 그것이 그렇게 깊고 큰 뜻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을 때에 새삼 놀라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까치밥’만 해도 그렇다. 가을에 감을 딸 때에는 나무마다 몇 개씩을 꼭 남겨 두도록 하였다. 까치 같은 새들도 좀 먹어야 할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배나 사과를 딸 때에도 벌레 먹은 것이거나 시원찮은 것들은 그냥 놓아 두게 하였고, 고욤이나 대추도 반드시 그 일부는 남겨 두었다. 특히, 밤을 떨 때에는 절대로 다 떨지 못하게 하였다. 그것은 떨어진 밤을 줍거나 남아 있는 밤을 떠는 동네 아이들이나 다람쥐 같은 짐승을 생각하는 배려(配慮)에서였던 것이다.
 
농작물을 수확할 때에도 이러한 배려는 마찬가지였다. 감자나 고구마를 캘 경우에 작은 것은 흙속에 그냥 놓아 두었다. 그것은 마을 어린이들의 이삭줍기나 땅 속의 벌레를 생각하는 마음에서였음을 훨씬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남이나 다른 생물(生物)들을 배려하는 이런 일은 ‘고수레’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논밭에서 일하다가 먹는 새참이나 점심은 언제나 고수레를 하고 먹었다. 산나물이나 약초 같은 것을 채취(採取)하러 산에 갔을 때에도 번번이 고수레부터 하고 음식을 먹었다. 성묘를 갔을 때에도 제물(祭物)로 차렸던 음식은 도로 가져오지 않는 것이라면서 음복(飮福)하고 남은 것을 주변에 놓아 두거나 뿌리게 하였다. 산짐승이나 새, 벌레 등을 위한 배려였던 것이다. 고수레가 신에게 먼저 제물로서 음식을 바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하지만, 우리 선조들의 삶을 미루어 볼 때에 이는 다른 생물을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신념(信念)어린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남과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우리 옛 어른들의 생각은 가정 생활에서도 살필 수 있다. 어머니가 배가 아프다며 식사(食事)를 하지 않는 것은 자식들을 먹이기 위함이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번번이 밥을 남기는 것은 밥이 부족하여 굶을지도 모를 가족들을 생각함이었다. 손님으로 가서도 상에 오른 반찬이 맛있다고 하여 디 먹지 않고 반드시 남겼다. 조기 같은 생선을 한쪽만 들고 다른 쪽을 손대지 않는 것은 주인집 가족을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 때에는 누구나 가난하게 살던 어려운 시절이었으므로, 옛 어른들의 이런 행위 하나하나는 모두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고상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옛 어른들은 이런 마음 씀씀이로 “콩 한 쪽이라도 나누어 먹는다.”라는 속담처럼 남과 함께 하는 삶을 몸소 실천(實踐)하며 사셨던 것이다.
 
우리 옛 어른들은 그렇게 남을 생각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누가 멀리 길을 떠나기라도 하면, 서로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어서 그만 들어가라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동구 밖까지 나가 배웅을 하였다. 그리고 언제 온다는 기별이 있으면, 이제나 저제나 t;ㅍ아 일하다 말고 길 쪽을 자꾸 살펴보았다. 또, 아이들을 시켜 개울 건너 언덕에까지 나가 기다리며 마중을 하게 하였다.
 
이처럼, 우리 선조(先祖)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서로 ‘이웃 사촌(四寸)’이었다. 서로 간에 형이요 아우이며, 아저씨요 아주머니로서 지냈다. 일도 삶도 함께 하고, 슬픔도 기쁨도 함께 하였던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웃과 함께 바로 이런 삶을 살았기에 그분들의 삶은 푸근하고 정겨울 수가 있었다. 아직도 시골 아낙네나 아저씨들을 이따끔 대하면, 마치 가까운 친척(親戚)이나 친구(親舊)를 만난 것처럼 따뜻하고 다정함을 느낄 수 있음은 이 같은 생활의 정서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현대인(現代人)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남의 형편(形便)이나 처지(處地)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편의(便宜)만을 앞세우며, 남의 어려움이나 난처함 같은 것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 듯하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과 만나 서로 생각을 나누어 가며 함께 일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도리어 자기밖에 모르는 삶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퍽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때일수록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하는가 하는 삶의 지혜를 선조들의 삶에서 깨닫고 배워야 할 것이다. 사람은 물론이려니와 까치와 같은 생물과도 함께 하는 삶을 살아 온 우리 선조들의 생활 태도를 깊이 있게 되새겨 본받아야 할 것이다.
 
* 1993. 11. 30. 수필동인지 <조운수필> 제8호에 발표
* 1996. 9. 1. 교육부 국정국어교과서 중학교 <국어 2-2>에 수록
   이후 중학교 <국어 1-1> 및 검인정 국어교과서에 계속 수록됨
 
* 신길우: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상지대·중국 연변대 교수, 한국펜본부·한국수필문학진흥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조운수필>·서초문인협회 회장, 이중언어학회 총무 역임, 
현재 종합문학지 <문학의강> 발행인 겸 회장, 시집 <남한강 연가>, 수필집 <차 한 잔의 행복> <모기 사냥> <새와 인간> <화분 속의 청개구리>, 중국어역 수필집 <父親種下的樹> 등 10여권,  문화탐방집 <원주에 가면 문화가 보인다>, <언어와 문화> 등 저서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