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던 한국

차옥순

2006-03-10     동북아신문 기자


내가 한국과 서울에 가보고 싶은 것은 1983년부터였던것 같다. 그때는 대학교때였는데 중국과 한국이 여자배구시합인가를 했다. 나는 스포츠에 관심할줄 모르는 사람이라 그러거나 말거나 했는데 우리반 친구들은 그게 아니였다. 다른 학급에선 잠잠한것 같은데 유달리 우리 반급은 학업을 중지하고 학교 강당인 영화관에 텔레비죤 하나를 댕그러니 얻어다 놓고--티비도 귀할때니까-- 우리 반 30명 학생이 그 앞에 오구구 모여 앉아 흥분하여 그 시합을 보았던것이다. 그때 나는 누구와 누구의 시합인것만 겨우 알고 그게 그렇게 흥분할 일인줄 몰랐다.

친구들은 티비를 보지만 나는 맨 뒤에 앉아 티비에서 언뜻언뜻 지나가는 사람 그림자나 보고 주요하게 열띈 친구들을 쳐다보았는데 그게 더 재미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어느 쪽이 한알 졌는지, 아니면 이겼는지 와~! 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한결같이 <중국 쟈~유(화이팅)! 중국 쟈~유!>하는 것이였다. 나는 갑자기 피가 뒤통수로 솟구치는 감을 느끼며
<야~! 니들 대체 누구 편인데...?>하고 한마디 소리쳤다. 별로 말을 잘 하지 않는 내가 그렇게 소리치는 바람에 자신도 놀랐지만 친구들도 눈이 휘둥그래져서 뒤를 돌아보며 갑자기 소리가 뚝~, 조용해지더니 <그래, 맞다...> 하며 일제히 <한국 쟈~유! 한국 쟈~유!>하고 우렁차게 응원하였다...

그때 나는 새삼스레 (나는 조선사람이다, 한국은 우리와 한 겨레이다)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만은, 그리고 민족사업에 선택받은 우리들만은 먼저 조선사람이 되여야 하지 않는가? 북경에서 특히 민족대학에서 우리는 어디 가나 코리아다. 문안에서도 문밖에서도 우리는 먼저 한족, 위글족, 몽고족...과 구별되는 조선족이였으니까. 우리가 <한국 쟈~유!>한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였고 그래서 한순간에 일제히 목소리가 바뀔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다른 나라와 시합을 하면 또 달라지겠지만...

그때 한국은 베일에 가린듯 희미했고 그나마 일그러진 형상으로 우리 맘에 심어졌다. 조금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은 자본주의가 팽창하고 조선 영화 <금희와 은희>란 영화에서 본것처럼 사람을 팔고 사는 나라, 그리고 날마다 데모하여 사람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수 없는 무시무시한 나라였다. 그렇지만 한국이란 나라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보고 싶고 궁금했으며 더구나 서울이란 이름은 듣기에도 너무 아름다운 곳이였다.

그때는 도저히 꿈도 꿀수 없는 현실이였지만 그래도 너무 가보고 싶었고 묘연하게나마 언젠가는 꼭 가볼수 있을것만 같은 신념같은 것이 생겼다. 그렇다고 꼭 가야 할일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그후 기적같이 중국과 한국의 국교가 건립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드나들고 한국이란 이름은 우리 생활에 푹 젖도록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와 있지만 나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20여년이 지난 금년에야 구미 YMCA의 초청과 김희자선생님의 추천으로 평생교육의 일원이 되여 한국땅을 밟아보게 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청주해관에 들어서자 나는 엄마의 젓내 같은것을 느꼈다. (밖에 나가보니 그것은 이상한 비린내였지만 말이다.)해관에서 날카롭게 생긴 사람이 까다롭게 심사하여 물어오는데 공식적인 장소에서 우리가 익숙한 한국어로 말한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정답게 느껴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나는 들려오는 말들을 그대로 다 먹고 싶었다.

아~! 이게 내 조상의 나라 한국이구나! 나는 말할수 없는 야릇한 흥분과 감동을 느끼며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하며 맘이 참 푸근하고 좋았다.

좋은 느낌도 잠시 해관에서는 우리가 중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얼굴에 힘을 주고 죄인을 심문하듯 도고하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기가 눌려 무슨 탈이라도 잡혀 넘어가지 못하고 되돌아 가게 되면 어쩌나 하고 공연히 가슴이 활랑거린다. 신문에서 친척방문으로 왔거나 시집간 딸 보러 왔다가 혹은 돈 많이 쓰고 일하러 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나가지 못하고 되돌아 간 이야기가 자주 보도되군 했다. 우리야 걸릴것두 없구 되돌아가도 별일 없지만 그래도 첨으로 오는 나는 계속 긴장하다. 얼굴이 까맣게 탄 두 노인이 크고 작은 짐을 가득 들고 사무실로 들어간다...우리 대오의 다른 선생님이 쉽게 나가자 조였던 가슴이 조금씩 진정이 되고 한시간이 좋이 걸려 해관을 나오게 되였다.

내가 중국에서 중국말을 해도 나는 조선사람이요, 한국에서 한국말을 해도 나는 중국사람이니 나는 대체 누구인가...?! 제 부모 등에 업히고 제 부모 품에 안겨 살아온 두 나라 사람들은 자기 고국땅을 밟아보고 싶고 자기 동족이라고 만나보고 싶어하는 우리 맘을 어찌 알수 있으랴. 안다고 한들 어찌 느낄수 있으랴.

하지만 구미 YMCA와 그리고 만나본 좋은 분들을 통해 한국의 사랑은 내가 생각한 민족과 나라의 사랑만이 아닌 인간적이고 전 인류적임을 알게 되였다...

밖에서는 한시간전부터 평안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려준 멋진 두 젊은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