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학교주변조선족집거구형성에 대한 조명
2006-03-09 이성주 기자
따라서 원래 매하구시에는 시내호적을 가진 조선족이 200여호밖에 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소학교주변에 2300여호, 중학교주변에 900여호가 집거하여있는것으로 집계되면서 조선족들이 집중되여 생활하는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자리잡았다.
조선족집거구에 규모화된 조선족상권 형성
학교주변의 조선족집거구의 형성은 상대적으로 독립된 상권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조선족경제권을 형성하고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조선족 주민들의 성분을 보면 학생 뒤바라지를 위해 농촌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위주이다.
그중 아빠트까지 사놓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출국으로 돈을 번 사람들. 또 많은 가정은 아직도 한사람이 외국에서 로무중이고 대부분 직장없이 외국에서 부쳐오는 돈으로 생활하는 소비족들이다. 학교주변 조선족집거구가 깃을 내린지 10여년이 되면서 경제실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지금은 초보적인 규모를 갖추었다. 학교주변에는 조선족이 꾸리는 식당, 미용원, 떡집, 커피점, 온수난방회사 등 가게들이 일어서면서 상당한 규모의 조선족상권이 형성되고있다.
지금 매하구시조선족실험소학교 주위에는 조선족이 경영하는 식당 7개가 새로 들어섰고 조선족중학교 주변에는 조선족식당이 21개, 미용원이 4개, 떡집 1개, 커피점, 온수난방회사가 각각 1개 들어섰다.
매하구시 서시장에는 조선족이 경영하는 김치매대, 떡, 순국수를 파는 전문매대도 자리잡아 초보적인 상권체계가 형성되였다.
현재 매하구시에 노래방만 30여집, 그중 조선족이 경영하는 노래방이 7집이나 되는데 저녁이면 초만원을 이루고있다.
조선족들의 과소비와 헤픈 씀씀이에 대해 시야비야 말도 많으나 조선족집거구 형성의 기회를 포착하고 자신의 신근한 로동으로 삶을 영위하면서 조선족경제를 발전시켜가고있는 사람들도 있어 그나마 안위가 되고있다.
또 결과적으로 조선족집거구가 도시진출 조선족이 오구작작 모여 생활하는 새 터전으로 만들어진다는데 장원한 의의가 있는것이다.
중도에서 류산된 정부주도의 조선족집중촌
매하구시의 경우처럼 많은 도시에서의 조선족집거구의 새로운 형성은 학생공부 뒤바라지, 해외로무에서 돈 번 사람들의 도시이주로 자연적인 형태하에서 형성되였다. 따라서 원래 호적지인―촌과 향을 떠나면서 대부분 지금 살고있는 도시호적이 아니기에 이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기구도 없고 문의하는 사람도 없다.
매하구시에 와서 생활하는 조선족들을 보면 매하구시 각 조선족농촌과 린근지역인 류하현, 휘남현, 동풍현, 반석시 각 조선족농촌의 조선족들이다. 학교주변의 아빠트와 조선족을 대상으로 전문 개발한 아빠트들은 고향사람, 친척관계, 동창관계, 친구관계 등 연줄로 아빠트를 구입한 사람들이 입주하고있다.
따라서 이곳에는 당지부도 없기에 당원들은 원 촌당지부에 당비를 바치면서 당생활을 해야 한다. 확실한 주소가 없기에 우편물도 학교에 배달되여 학교에 가 찾아가고 있다.
2003년 매하구시민족종교사무국에서는 매하구시 현직 조선족간부와 조선족농촌간부들을 이끌고 3차례나 심양시의 만융촌과 소가툰의 조선족집중촌을 견학하고 매하구시 경제, 문화,교육, 생활 등 여러면에서 규모를 갖춘 조선족집중촌을 건설하여 농촌조선족과 타지방 조선족을 받아들여 새로운 조선족집거구를 꾸릴 타산을 했다.
현급시에서 조선족집거구를 꾸리자면 반드시 학교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 조선족들의 생활터전이 마련되여야 하기에 매하구민족종교사무국에서는 먼저 소학교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후에 중학교를 옮겨간다는 새로운 조선족집중촌 건설방안을 토론에 붙였다. 많은 조선족간부들은 이 방안이 정확한 방안이고 조선족사회 생존의 장원한 견지에서 볼 때 가야 할 길이라는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이 방안은 집거구 많은 조선족거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소학교의 많은 교원들이 농촌학교 도시로의 합병으로 학교주변에 집을 금방 샀고 주변의 200여호되는 학부모들도 학교주변의 아빠트를 사면서 집값이 잔뜩 높아져있었다.
일단 조선족학교가 자리를 옮길 경우 집값의 하락으로 경제적인 손실이 있게 되며 집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다.
그들의 견결한 반대로 정부적차원에서 인도하는 조선족집중촌 건설방안은 결국 류산되고말았다.
현급시의 조선족집거구의 형성은 학교를 중심으로 자연적으로 형성되였기에 거주민들의 경제기초가 박약하고 집단의식이 약하다.
대부분 조선족들은 학생공부 위주로 모여들었기에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집거구형성 모체인 학교의 운명을 관심하고 학교와 호흡을 같이하나 일단 학생이 졸업하고 떠나면 그들도 아빠트를 팔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수가 상당수를 차지하여 조선족집거구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다.
조선족집거구에서 들리는 불협화음들
현급도시의 조선족집거구 거주민들을 보면 대부분이 학생뒤바라지가 위주여서 대부분 가정에서 한두명의 식솔이 한국 혹은 타국에 나가 있거나 국내 대도시에서 돈을 벌고있다.
매하구조선족중학교의 1500여명 학생가운데서 70%이상이 편부모가정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학생뒤바라지를 위하여 세집을 잡고있는 조선족집중 아빠트를 《과부아빠트》라고 부르고있는데 학생들의 입에서도 집이 어디냐고 물을 때 과부아빠트란 말이 거리낌없이 나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곤혹을 느끼게 할 때가 있다.
현재 이 집거구에는 평생을 농촌에서 고생하다가 외국에서 돈을 벌어 도시에 아빠트를 사놓고 새로운 창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알뜰가게를 꾸리는 사람도 있으며 정든 마을을 떠나 도시에 세집을 잡고 식당에서 일하거나 부업을 하면서 학생 뒤바라지를 열심히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와 반대로 조선족집거구의 타락된 도덕현상은 언녕부터 화제에 오르면서 눈살이 찌프러지고 있다.
마작놀이에서 술추렴, 이어지는 노래방, 그다음에 나타나는 《애인현상》은 조선족집거구의 공동한 병페로 되고있다.
지금에 와서 누가 노래방이요, 애인현상을 운운한다면 오히려 실없는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애인이 없는 사람을 무능하고 모자라는 편으로 보고있다. 어떤 남자가 공안국 외사과에 가서 려권을 신청할 때 직위를 물으니 《과부촌 촌장》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안이 벙벙하게 하였다는 말까지 돌고있다.
오늘은 어느 애인이 명브랜드양복을 사주었다, 넥타이는 누가 사주었고 구두는 누가 사주었다고 자랑하는 남자들은 애인이 하나도 아닌 여럿이 있음을 자랑으로 떠벌이고 다니고있다. 전에는 애인현상을 손가락질당하는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였으나 지금은 오히려 실력과시로 전변되였다.
외국에서 피땀 흘려 돈을 벌어 부치면 집에 있는 사람은 돈을 애인에게 몽땅 날려버리는 현상을 심심찮게 목격할수 있는데 외국에서 돌아온후 리혼이라는 가정파산이 뒤따르고 돈 잃고 사람 잃은 나머지 울화를 참을길 없어 목숨까지 끊는 현상도 간간히 나타나고있으니 더는 홀시할수 없는 사회적문제로 되였다.
조선족집거구 주위는 모든 물건값이 비싸다. 식당료리값도 다른 지역보다 비싸고 시장의 채소값과 고기값도 비싸다.
아빠트값도 조선족들이 학교주변으로 몰려들면서 하늘로 치솟고있다.
새로 개발하는 아빠트는 개발이 시작되자 분양이 끝나고 10년전에 개발한 낡은 아빠트도 새 아빠트 가격으로 판다. 조선족들이 잘 살기에 한족들은 학교주변의 낡은 아빠트를 고가로 조선족들에게 팔아버리고 목돈을 챙긴다.
그러기에 《한국에서 조선족이 한명 돌아오면 열명의 한족이 부자가 된다》는 말까지 심심찮게 들린다. 타현이나 도시와 멀리 떨어진 조선족촌의 조선족들이 학생공부를 위하여 도시로 몰려드는 것은 리해가 가나 시중심구역과 3리길밖에 떨어져있지않은 조선족들도 한국에서 돌아와 농촌의 집을 버리고 거리에 아빠트를 사서 입주하면서 아빠트값을 부추기고 있다.
시내뻐스가 집앞까지 통하고 뻐스값이 1원밖에 안되는 편리한 교통편이 있는데도 친구따라 강남 가듯이 무작정 도시에 밀려들어오는 맹목적인 사람들도 적지않다.
길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