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著]한국 전통문화의 허울을 벗기다 (1)
[ 본지는 오늘부터 장혜영 소설가의 학술저서 「한국 전통문화의 허울을 벗기다」를 연재한다.
소설가인 그는 「하이네와 앵앵」으로 문단에 데뷔한 후, 지금까지 「화엄사의 종소리」, 「그림자들의 전쟁」 등 중단편소설 70여 편을 발표하였고, 「붉은아침」 등 장편소설 10여부를 출간하였다.
학술저서 「한국의 고대사를 해부한다」는 2010년 한국 대학교재 인문학계열에 선정되었으며, 술의 기원과 예술과의 상호 발달에 관한 주제로 술에 관한 학술적 접근을 시도한 학술 저서 「술 예술의 혼」은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그는 민족적 정체성이 담긴 시각으로 한국의 역사를 문화, 사상, 풍속, 건축, 신앙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학술적 집도를 시도하였으며, 한국의 고유사상과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를 독특하면서도 대담한 사유방식을 통해 제기하기도 하였다.
다재다능한 장혜영 소설가의 왕성한 창작의욕과 탐구정신에 큰 박수를 보내며, 옥고를 보내주신 저자에게 본지는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 주 ]
1장. 주거문화 담론
인류를 별개의 생존방식을 영위하는 두 개의 민종民種으로 분류하는 막후조종자는 자연환경이다. 농경민과 유목민의 분화가 그것이다. 비옥한 토지와 수자원을 겸비한 중원의 자연환경은 농경정착민을 육성하는 자궁이 되었고 푸른 초원과 살찐 가축을 가진 북방은 유목민을 잉태하는 모태가 되었다.그런데 이러한 민종의 분화는 서로 다른 문화 환경에 의해 다시 변별적인 민족들로 세분화된다. 문화 환경이라 함은 구체적으로는 주거문화, 음식문화, 복식문화를 위시하여 풍속, 신앙 등의 생존양식을 말하는데 이들은 특정민족의 생체적성장과 성격형성, 심리구조를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소들이다. 우리는 문화 환경의 분석과 횡적비교를 통해 특정 민족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파악은 물론이고 미래까지도 예단할 수 있다.
본서 제1장 『주거문화 담론』에서는 한국건축의 총체적고찰보다는 주로 중국건축과 변별되는 한옥고유의 특징들만 선별하여 중국건축의 특징들과 심층 비교함으로서 한옥주거문화가 한국인에게 미친 역사적 영향에 대해 집중 조명하려고 한다.
한옥의 특징들로는 대외에 은폐된 대문, 낮은 담장, 다多창호, 넓은 마루, 온돌, 높은 굴뚝 등으로 열거된다. 중국건축양식과의 중복을 탈피한, 이들 한옥의 고유성이 한국인의 신체발달과 성격형성, 심리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일련의 문제가 본장에서 다뤄질 기본테마가 될 것이다.
1. 개폐기능과 기氣의 통로―대문
건축의 본질적 기능은 안전영역확보이다. 선사시대 움집에서부터 현대건축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주거역사는 세 차례의 획기적인 변화단계를 거쳤다. 그 첫 번째로는 위험이 존재하는 외계와의 차단을 목적으로 한 단순구조물에 의한 안전지대확보이다. 여기서 위험이라 함은 비, 눈, 바람, 도둑, 맹수를 비롯한 외적인 침해를 뜻한다. 그런데 가옥에 의한 외계와의 단절은 안전성이 실내에만 국한될 뿐 외곽지대는 여전히 위험지역으로 남는다. 이러한 주거형태에서 안전보장은 실내에 안주하는 방법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역설적이게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위험이 도사린 야외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도 긷고 나무도 쪼개고 식료채집과 수렵도 해야만 한다. 나물을 말리고 곡식타작도 하려면 허구한 날 방안에 들어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런 실제적인 수요로 인해 두 번째 주거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담장이다.
담장은 옥외의 기존 위험공간일부를 안전영역으로 확대함으로써 인류의 주거활동공간을 넓혀주는 획기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담장으로 인해 마당과 뒤뜰은 밖이면서도 안전한 장소이고 안이면서도 밖인, 주거완충공간이 탄생하게 되었다.
대문은 바로 이 담장과 함께 산생하여 발전, 소멸의 과정을 진행해 왔다. 대문의 기능은 담장에 의해 폐쇄된 안팎을 소통하고 차단하는 개폐역할을 담당한다. 대문을 닫으면 안전지대가 되고 열면 단절되었던 내외가 소통된다. 담장과 연대하여 발전하던 대문은 잦은 전란과 외침으로 인해 급기야는 거대한 성벽을 축조하기에 이른다. 만리장성이 가장 좋은 사례이다. 이렇듯 지난 날 담장이 효과적인 방어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지大地에 비해 천공天空은 상대적으로 위험요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표에 견고한 장애물만 설치하면 공중으로는 외세침입이나 위험침투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현대문명과 전쟁으로 인한 무기의 발달로 인해 천공도 더 이상의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대포, 비행기 앞에서 담장은 물론이고 철옹성 같던 만리장성도 방어기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도리어 자신을 협소한 공간에 가두는 역작용만 놀았을 따름이다. 게다가 근대로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인구증가와 도시화의 촉진은 대문 밖의 비안전지대가 안전영역으로 대폭 확장됨으로써 대문은 담장과 더불어 그 의미와 작용이 점차 퇴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주거환경의 세 번째 변화이다.
대문의 기능은 방어, 출입, 소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의 건축에서 대문이 전통적 기능은 풍수지리설에서 유래되었다. 즉 가옥 안팎으로 횡단하는 기의 흐름을 통제하는 장치로서도 기능을 수행한다.
중국인의 관념 속에서 대문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문의 실제 기능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의 풍수관념과도 관련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대문은 주택의 인후이자 건축물이 안과 밖을 소통시키는 숨길이기도 하다. 풍수설은 위로는 하늘의 기운과 통하고 아래로는 땅의 기운과 접하며 또한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대문의 위치선택과 제작은 주택의 총체적인 구성과 성패와도 관련될 뿐만 아니라 주거의 길흉과 화복과도 관련된다.
중국의 전통주택인 「사합원」은 바로 이러한 전통풍수설의 영향을 받아 대문의 위치를 설정하고 있다. 대문이 좌향(방향)을 가지게 된 계기는 주택이 일반적으로 남향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추운 북쪽을 등지고 따뜻한 남쪽을 향함으로써 득온, 채광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대문도 주택의 정면인 남, 동남, 서남에 내게 된 것이다. 지형원인으로 동향을 선택했을 경우에 대문은 동남쪽으로 냈을 것이다.
대문의 개폐기능은 문을 닫으면 기의 흐름을 주택내부로 모아들이고 문을 열면 흩어지도록 통제한다. 그러나 한옥에서는 담장이 낮아 대문의 개폐와는 상관없이 항상 기가 흩어지기만 할뿐이다. 기의 흐름은 방위에 따라 길흉이 분리된다.동남쪽이 풍수에서는 기를 받아들이기에 가장 양호한 위치라고 한다.
건(乾. 서북)과 곤(坤. 동남)이 가장 길한 방위라는 풍수설에 근거해 주택의 대문 위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로의 북쪽에 위치한 주택에서 대문은 남동쪽 구석에, 도로의 남쪽에 위치하는 주택에서 대문은 북쪽구석에 위치해야 한다. 또한 북동쪽은 그 다음으로 좋은 방위이므로 이곳에 우물을 설치하거나 부엌을 두는 것이 타당하고, 필요하다면 대문을 설치할 수도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한옥의 대문이 대부분 막다른 골목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다.
99간 집이라는 대규모의 집인데도 대문은 막다른 골목 안에 있었다. 대구의 보본당(報本堂)이란 최씨댁도 그렇고 단성(丹城)의 이씨댁도 그렇고 보은(報恩)의 선(宣)씨댁도 달성(達成)의 문(文)씨댁도 대문이 골목 안 막다른 데 있었다.……
옛집은 무엇이 그리도 수줍은지 일부러 후미진 골목을 꼬불거리게 만들어 그 안에 대문을 세웠던 것이다.
한옥의 대문이 오불꼬불한 길 뒤에 은폐된 이유는 우선 한국의 지형과 관련이 있다. 한국의 마을은 보통 골짜기나 산비탈에 위치해 가옥과 연결된 길이 꼬불꼬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적인 현상은 나중에 유교적인 해석과 포장으로 인해 전통한옥의 특징으로 정형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대문을 통해 내외출입을 하는 행위는 유교적인 시각에서 볼 때 남녀성행위를 방불케 한다. 그럴 경우 대문은 여자의 하문 또는 옥문을 상징한다. 유교관념에서 성기와 성교장면은 반윤리적이고 수치스러운 치부이므로 은폐대상에 속한다. 더 나아가서 대문접속자의 성행위를 제3자의 시선에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도 다분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한옥대문의 또 하나의 특징은 높은 대문과 낮은 담장이라는 기이한 현상이다. 이런 기현상은 좌식생활에 맞춘 낮은 담장과 섰을 때의 신장에 맞춘 높은 대문의 구조에 기인한다. 그 결과 대문을 닫았을 경우에는 외부와의 완벽한 차단이 불가능하고 열었을 경우에는 상시常時개방상태를 중복할 따름이라는 기奇현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폐쇄를 통한 외부위험의 차단과 기를 모으고 흩트리는 대문의 통제기능이 퇴화하고 단순한 출입기능만 활용된다는 문제를 야기한다.
대문을 “후미진 골목”에 은폐시킨 원인을 보명保命수단으로 여기는 견해도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 낮은 담장이 외부로부터의 위험침투를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문을 은폐한다고 해서 구조적인 허점을 대체할 수는 없다.
대문의 기능은 사합원의 경우 영벽影壁에까지 연장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영벽을 내외 분리기능을 이유로 담장과 연계시키는 학자들도 있지만 담장은 폐쇄적인데 비해 영문은 폐쇄와 개방의 기능을 포괄하고 있기에 대문의 기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영벽에 의한 내외 분리 (당방의 기능)는 폐쇄에 그치지 않고 개방성을 통해 우회적 소통기능을
수행한다. 그 소통의 주체는 풍수설에서 일컫는 이른바 기氣의 흐름이다. 그러니까 영벽의 구조는 개폐기능보다는 소통, 조절, 통제기능을 담당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온돌좌식생활의 습속으로 변화된 시선에 맞춘 낮은 담장과 입식출입에 맞춘 높은 대문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기이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기氣는 중국의 철학용어로서 모든 존재현상은 취산聚散 즉 기가 모이고 흩어짐에 따라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생명 및 생명의 근원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기의 원뜻은 “호흡을 뜻하는 숨息, 공기가 움직이는 바람風”이었다. “기가 철학용어로 사용된 것은 노장철학에서 우주의 생성변화를 기의 현상”이라고 한데서부터 시작되었다. 한자해석에서는 공기, 냄새, 바람, 날씨, 자연현상, 기체, 가스 등의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중의학에서 기의 내원은 선천지정기先天之精氣(부모에게서 전수)와 수곡지정기水谷之精氣(음식물에서 획득) 흡입지정기吸入之精氣 등 세 갈래로 분류하는데 이 중 흡입지정기는 자연의 맑은 기운 즉 바람, 기체 등 호흡과 관련된 기를 말한다. 영벽은 인간의 생명유지에 필수인 바로 이 흡입지정기를 모으고 흩어지게 하는 조절기능을 가진 주택의 구조물이다.
문 앞의 영벽과 원院내의 영벽은 기류氣流로하여금 영벽을 돌아 통과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가 모이면 흩어지지 않는다.
영벽의 작용은 무엇보다 먼저 외부의 불결한 기류의 차단이다. 중국풍속에서 외부의 기는 귀사지기鬼邪之氣라하여 기피한다. 기라는 것은 바람의 움직임 즉 기류이다. 외부의 기를 일컬어 귀사지기라함은 그 기류가 자연 상태 그대로임을 의미한다. 냉기, 열기, 습기, 온기, 오기汚氣(오염된 불결한 바람), 야기野氣(거친 들바람), 광기狂氣 등은 절제와 순화의 여과과정이 결여된 정화되지 않은, 광활한 대자연속에서 거침없이 광분하던 기류이므로 그대로 흡입할 경우 인간에게 해롭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국인들은 기괴奇怪한 기는 직행自來自去한다고 여겼다. 『龍經』의 “자래자거”에 대한 『漢字詞典』의 해석은 “오고감에 있어서 중도에 우회하지 않고 한 곳에 멈추지 않음을 뜻한다.”라고 되어있다. 역으로 나쁜 기운을 멈추거나 우회하면 그 사기邪氣가 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냉기는 북쪽에서 흘러내려온 기류로서 생물의 성장을 억제하기에 북쪽은 죽음의 땅으로 상징된다. 열기 또는 화기는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역시 적정 도를 넘으면 인간의 생존에 해를 끼친다. 습기는 균의 온상이며 질병의 원인을 제공한다. 건기는 생명체의 성장을 저해하며 오기는 외부에서 오염된 기류여서 불순하고 야기와 광기는 야생의 광막한 산과 들에서 날뛰고 뒹굴며 거칠어지고 광적인 기류이다.
영벽은 바로 정화되지 않은 외부의 이런 사기를 통제하는 작용을 한다. 사기는 영벽에 의해 그 직행의 광기를 멈추는 순간 순화되고 정제된다. 냉기는 따스해지고 열기는 식고 습기는 마르고 건기는 눅눅해지며 오기는 먼지 등 불순물이 가라앉고 야기와 광기는 온순해진다. 영벽에 막혀 그렇게 순화되고 길들여진 기운은 다시 영벽 안으로 흘러들어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된다. 영벽은 원 내에 집결된 좋은 기를 발산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그러나 한옥에는 외부의 길들여지지 않은 기류를 정화하는 완충시설이 없다. 나쁜 기운-직풍直風은 낮은 담장을 넘어 건물 안으로 난입하고 벽체가 없는 마루를 직통하며 광기를 지속한다. 기는 외부에서와 마찬가지로 통과만 할 뿐 멈추지 않는다.
영벽의 내외 시선차단과 사생활보호기능은 봉건국가의 사회구조와 관련이 깊다. 봉건제도의 유기체적중추를 구성하는 뼈대는 혈통이다. 여기에 지연과 인맥을 더하면 봉건사회라는 패러다임이 형성된다. 그런데 혈통의 근본은 가족이다. 당시의 사생활공간범위는 가족공동체 내에 한정되어 있었다. 군신, 지인, 이웃을 포함하여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의 교제는 예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은밀한 사생활을 공유하거나 노출할 수 없었다. 가족 외의 타인, 옥외의 사람들에게는 실내에서 평상복을 입고 긴장이 풀린 일상의 느슨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으며 그 속에서 진행되는 사적교제 역시 비밀에 부쳐졌다. 문인들은 사적인 시서詩書를, 무인들은 가내전통무술을 사저私邸밖의 타인들에게 노출시키기를 꺼렸다. 시서, 무술은 모두 가족 내에서만 세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평야지대인 중원의 사합원에서는 광야에서의 막힘없는 흐름으로 거칠어지고 광적이 된 기류를 길들이고 세勢를 꺾기 위하여 담장, 대문, 영벽과 같은 통제기능을 수행하는 구조물들이 발달하였던 반면 산악지대인 한반도는 기류가 산세에 막혀 어느 정도 세가 꺾인다는 천연 통제기능만 믿고 차단구조물이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邪氣가 비록 지세에 의해 얼마간 세가 꺾였다고 할지라도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인간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건강에 해로울 수밖에 없다. 상서로운 기운이 모이지 않고 항상 불순한 기운에 노출되는 공간에서의 생존은 건강유지 차원에서도 불리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대문을 통해 고찰한 한옥구조에 단점이 발견됨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