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북한 문화통일시대의 개막
[서울=동북아신문]이글은 이승률 평양/연변과기대 대외부총장이 남북국제문화예술총연합회의 창립총회에서 행한 초청강연 원고를 위기에 처한 남북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아 본지에 전문 게재한다.<편집자>
먼저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발족하는 남북국제문화예술총연합회의 창립총회를 온 마음으로 축하드립니다.
1. 평양과기대 소개
본인은 남북합작으로 설립된 북한 최초의 국제사립대학인 평양과학기술대학(이하 평양과기대) 대외부총장으로 재임하며 지난 10여년 간의 평양과기대 설립 및 운영을 통해 경험한 남북 교류의 한계와 개선방안을 통해 남북문화예술의 발전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한중수교(1992년) 직후 한국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사장 곽선희 목사)이 설립한 연변과학기술대학(이하 연변과기대)이 중국 내 100대 중점대학으로 성장하며 중국 사회주의체제하에서도 국제대학으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이자, 북한 김정일 정부는 연변과기대 설립자인 김진경 총장에게 이와 같은 국제대학을 평양에도 설립해 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북한 당국이 평양 인근 요지에 제공한 백만제곱미터의 대지 위에 한국의 초교파 교단과 해외 교포 등 세계 각국의 뜻있는 기독단체와 개인들의 재정 후원으로 2001년 3월 북한 교육성의 설립 허가, 2001년 6월 통일부의 남북교류협력사업 승인으로 건축공사가 개시되었고 마침내 2009년 9월 개교한 이래 2010년 10월 25일 첫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급격히 악화된 남북관계 가운데서도 2013년 6월까지 총 일곱 번째 학기의 교학이 수행되고 있으며, 현재 미국, 영국, 독일 등 6개국 출신의 외국인과 한국인 교포 71명의 교수진이 가르치고 있으며, 북한 교육성에 의해 선발된 학부생 400명, 대학원생 70명이 재학 중입니다.
한국이 북한에 세운 유일한 교육기관이며 또한 상주하는 기관으로서도 유일한 평양과기대는 민족 간 화해 및 통합을 유도하여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고, 남북한 교류협력의 창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으며, 더욱이 북한의 국제화를 견인할 수 있는 인재양성과 기술관료를 배출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북한 개방화의 희망적 대안이며, 나아가 한반도 통일의 디딤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본인은 평양과기대 기획단계의 부지 선정부터 건축공사, 개학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실행과정을 지켜보면서 남북한 차이, 한계를 절감하기도 했지만 분명한 것은 남북한이 공통으로 보유하고 있는 문화적 가치를 기반으로 해서 교류협력을 증진시키면, 앞으로 자라나는 신세대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민족 화해 및 통합을 이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다시말해 평양과기대는 한국에 있는 학교재단 및 후원 시스템, 북한의 지식인들과 청년들, 그리고 외국인 교수들과의 조합을 통해 이루는 미래지향적인 국제인력개발공동체로서, 남북분단의 한계로 빚어진 이념적 충돌과 대립을 융화시키는 남북한 교육문화협력의 기본 모형이 된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2. 문화의 단절과 합류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유명한 법어를 남겼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개체 존재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간의 정체성을 깊이 이해하는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여기에서 좀 더 사회화(社會化)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산과 물이라는 상반된 개체가 만나고 융합하면 거기서 새로운 창조의 세계가 열리고, 이러한 과정 가운데 조성된 생활환경의 변화와 기술발전의 터전 위에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각종 문화 현상을 빚으면서 인류의 역사를 진보시켜 왔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산과 물이 만나면 숲이 되고 강을 이루게 되고, 바로 그 교집합 지점 위에 마을이 생기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여러가지 문화가 새롭게 생성되어 온 것입니다. 즉 인류의 역사는 각각의 존재 가치를 지닌 민족 단위의 개체가 분리 상태로 있다가 언젠가 때를 만나 상호 소통하고 이해하고 협력하는 융합과정을 거치면서 변증법적인 ‘분리와 융합’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새로운 유형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산물의 총합체라 정의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비록 남과 북이 오랫동안 분단되어 다른 생활양식과 규범을 통해 상이한 문화를 학습하고 있지만 분명 우리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정신문화는 동일한 틀(역사성) 안에서 하나의 큰 흐름을 지향하고 있다고 봅니다. 덧붙여 말씀 드리자면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단절현상의 차이를 극복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을 진작함으로써 남북한 문화의 합류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맡겨진 역사의 책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확대발전 시킬 수 있는 한국의 전통적 가치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특질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본인은 특히 외국인 관점에서 본 한국문화의 특징적 가치를 기(氣), 흥(興), 정(情)으로 상정해 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독일인으로 한국에 귀화한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정의한 것인데, 그는“한국의 매력이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에 있으며 그것은 바로 자연, 문화, 역사, 사람 속에 살아 있는 철학으로, 정신문화와 에너지”라고 밝히며 그 에너지는 “기(氣) 흥(興) 정(情)”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독특한 파워, 영험하고 신비로운 기(氣), 신명나는 에너지 흥(興), 한민족의 다정하고 감성적인 에너지인 정(情), 바로 이 세 가지가 한민족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국 출신이지만 한국인으로 귀화할 만큼 한국을 깊이 사랑하고 한국의 문화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준 좋은 사례가 된다고 봅니다. 이런 전통적 문화의 특질을 남북한 문화의 공동가치라 인정하고 그 기초위에 남북한 문화통일의 새로운 장(場)을 열어 가는 일이 매우 시급하고 중차대하다고 생각합니다.
3. 남북한 문화통일 대장정
오늘 우리는 문화의 단절과 합류 현상을 이해하면서, 한민족 문화의 공통적인 특질을 기반으로 하여 남북한 문화통일 대장정의 길을 준비해야 될 때입니다.
현재 남북은 이념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극심한 대치상황에 놓여있습니다. 6.25전쟁 이후 60여년을 지나는 동안 분단 고착이 심화되어 왔고, 최근에 이르러 북한은 핵무장으로 선군정치체제를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남북간에 더 큰 불신과 불화를 초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개방성에 비해 북한은 주변 국가들과 극단적인 단절 및 폐쇄정책을 통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북한 내부에 스며들고 있는 한류문화 현상입니다. 한국의 드라마, 영화, K-POP 등이 중국인, 조선족, 탈북자 등을 통해 CD, USB, 인터넷 등으로 북한에 대량 유입되고 있으며, 이것은 단순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준을 넘어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동경심, 동화현상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문화예술의 역할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외교·안보의 장벽, 군사적인 대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족 화합의 매커니즘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요소가 바로 문화예술이라는 점 입니다. 문화예술부문의 교류협력이야말로 남북한의 오랜 단절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공통의 감성과 민족 동질성을 이끌어 내는 가장 강력한 매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같이 작금에 나타나고 있는 한류 문화의 세계화 현상을 잘 활용하여 남북한 문화의 새로운 트랜드를 형성함으로써 21세기적 문화합류현상의 한 중요한 흐름을 창출해야 할 때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 남북국제문화예술총연합회의 사명이 있다고 봅니다. 나아가 이번 행사를 기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창조문화의 합목적적 부흥이라는 측면에서 국가경쟁력의 새로운 상승효과를 기대해 보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 창조경제와 창조문화를 융합하는 과정을 통하여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증진시키는 새롭고도 위대한 ‘블루오션’을 창출하는 남북한 문화통일 대장정의 서막을 열어야 한다는 신념입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문화를 ‘19번’이나 언급하며 ‘21세기는 문화가 국력인 시대’라고 강조했고, 나아가 ‘문화융성’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미국 의회 연설에서 '비무장지대(DMZ)'에 세계평화공원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힌바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DMZ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중무장된 지역’이지만 동시에 평화에 기여하고 있는 공간으로서 가치가 인정되어 평화를 갈망하는 여러 사람들이 활용방안을 모색해온 바가 있습니다. 특히 그 가운데 이성림 회장께서 10년 전부터 DMZ문화예술센터를 건립할 것을 제안하여 선각자적 대안을 내 놓으신 일은 우리 모두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문화기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남북한 만의 협상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국들과의 협력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미, 중, 일, 러, 일, 아세안 국가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국제평화협력의 매체가 될 때 비로소 한국이 동아시아의 중심축 국가(pivot state)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주변국들로부터 합의점을 찾아내고 갈등을 해소하고 상호협조를 유도해 공생할 수 있는 주도적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나아갈 길입니다.
이런 대안들과 함께 한국이 갖고 있는 우수한 인력자원, 즉 교육, 산업, 경제, IT기술, 지식재산 등을 망라하는 국가경쟁력을 부양하여 R&D시대로부터 I&D시대로 전환하는 과정에 우리 문화계가 그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해외에 있는 700만명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세계 곳곳에 한류문화와 창조경제의 성과를 합치해 나간다면 그곳에는 생물다양성 만큼이나 다양한 한민족 문화산업의 다양성 즉, 새로운 한류문화경제유형을 창출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을 세계 일류 선진국가로 만들고 선진통일 시대로 이끄는 선도자,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어야 할 것인데, 이 일에 적임자는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한반도 평화 뿐만 아니라 국제평화를 위해 문화예술이라는 망을 깔고 그 기반 위에 기술산업 발전을 통한 경제협력, 나아가 안보협력의 수순을 밟아간다면 남북한 통합과 나아가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초창기에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 경제 성과만 올리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화의 뿌리를 모르면서 어떻게 경제의 열매를 딸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교훈을 찾아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먼저 상대방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고 수용하면서 그런 기반 위에서 인간적인 우의와 협력관계를 맺어가며 자신의 목적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상도라 여겨집니다. 국가적인 경제협력과 외교안보의 협상도 똑같은 원리라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어느 누구 보다도 문화예술인들의 선구자적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오늘과 같은 남북문화예술인들의 총화의 자리를 본인은 ‘ONE KOREA FESTIVAL’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남북한 문화 융합과 한반도 통일의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하는 사명을 갖는 남북문화예술인들의 축제가 되고 이 축제의 현장을 통하여 펼쳐지는 한반도 문화통일의 마당놀이가 마침내 백두대간을 타고 평양으로 이어지도록 하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4. 내 꿈은 사랑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보통 인간을 세 타입으로 구분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기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진 self oriented person, 다른 하나는 타인을 의지하고 환경과 여건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other oriented person, 마지막으로 신념과 비전을 가진 faith oriented person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상은 세 타입 중 어느 것일까요. 본인은 신념과 비전의 사고방식을 가진 faith oriented person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상이라고 믿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남북한문화예술인들이 남북한문화 통합이라는 신념과 비전을 가진 위대한 선구자적 초상으로 거듭나길 요청합니다. 무엇보다 문화예술인은 창조적 역량을 갖춰야 하는데, 창조는 소통과 공감과 융합과 생산이라는 4단계를 통해 나타나지 않습니까. 마치 남녀가 만나(소통) 데이트하고(공감) 결혼하여(융합) 가정을 이루는 단계를 거쳐 자녀를 낳는(생산)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창조적 단계를 남북한 문화 교류에 적용해 보시길 바랍니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 이라고 했습니다.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미래를 창조하는 최선의 지름길입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고 반성했을때 영국과 프랑스가 이들을 용서하고 포용함으로써 유럽공동체라는 인류역사상 가장 훌륭한 정치경제적 융합체를 탄생 시켰습니다. 이러한 서구 기독교 사회의 ‘회개와 용서’라는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도 남북문화통일의 청사진을 제시할 때 가장 중요한 신념으로 ‘용서’와 함께 ‘사랑주의(Loveism)’를 펼치는 인도적 역량을 창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하는 마음과 사랑주의의 기초 위에 설립된 평양과기대가 남북문화예술 통일교육의 통로로 쓰여지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남북한 주민들이 동질의 문화가치를 공유하는 동일한 민족구성원으로써 한민족 새역사의 동역자로 거듭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러한 신념과 비전이 한국을 그저 좋은 나라로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나라로 거듭나게 하는 'Good to Great Korea'로 나아가는 길이고 믿습니다.
오늘 남북국제문화예술총연합회 대회를 통하여 남북한 문화통일의 새시대, 위대한 한민족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는 꿈과 희망을 가지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그 길목 한 가운데 서 있는 남북한 문화예술인들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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