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산 수필]모종에 대한 생각

2013-05-01     박수산

지친 몸을 달랠 수 있는 하루의 휴식을 얻었다
가슴이 확 트이는 시외로 나가 시원한 공기를 한껏 마시며 쌓였던 피로를 확 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창원 시내를 벗어나 시외로 나왔다.

눈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끝없이 펼쳐진 산천,
폐부까지 확 시원하게 해주는 시원한 공기,
마음속으로 갈망했지만 기실 시외는 넓은 들과 시원한 공기를 나에게 주지 못했다.

그저 고층건물이 없고 산이 있고 하천이 있고 듬성듬성하게 하우스가 있고 산기슭에는 손바닥만 한 뙈기밭이 보일 뿐이다.

그래도 나무와 풀들은 자연의 힘을 입어 짙은 녹색으로 물들이고 있으며 가끔 여기저기서 야생화가 울긋불긋 피어 자연의 운치를 돋구어준다

한창 외경으로 지친 몸을 풀고 있는데 하천 둔덕 뙈기밭에서 할머니 한 분이 밭일을 하는 것이 보인다.

호기심에 자전거를 길가에 세워놓고 뙈기밭 쪽으로 걸었다
뙈기밭은 한 20평이 되나마나 했는데 흙보다 돌이 더 많은 밭이었다.
할머니는 작은 호미로 밭두둑에 구멍을 보기 좋게 판다. 그리고는 영양단지에 한 포기씩 심어 키운 고추 모를 구멍마다 하나씩 놓고 돌덩이는 골라내고 보드라운 흙을 꼭꼭 눌러 덮는다.

이렇게 모종 하면 한 포기도 죽는 것이 없이 다 살 것이다.
영양단지 안에 모종에 필요한 영양, 수분, 그리고 잔뿌리가 상하지 않았으니 금방 왕성하게 살아날 것이다.

고추 모종을 내는 할머니를 보는 순간 나는 지난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소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지금처럼 영양단지가 아니라 포기 체로 잔뿌리가 끊어진 오이, 가지, 토마토 모종들을 한 아름 사왔다. 그리고 집 앞 밭에다 거름과 물을 준비 해놓고 모종을 하려고 하였다

그날은 주말이라 밖에 나가 친구들과 놀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도와주기로 했다.

어머니는 작은 호미로 밭두둑의 굵은 흙덩이를 보드랍게 깨고 적당한 간격으로 모종 할 구덩이를 판다. 나는 뒤따라가면서 삽으로 거름을 한 삽 퍼서 꼬챙이로 구덩이마다 조금씩 놓는다. 그다음 어머니는 물을 구덩이마다 조금씩 붓는다.

그리고는 어머니는 구덩이마다 모종을 하나씩 놓고 흙을 덮고 손으로 꽁꽁 눌렀다. 나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다시 물을 포기마다 조금씩 더 준다. 마지막으로 뙤약볕과 바람에 시들지 말라고 어머니는 헌 책을 뜯어 종이 한 장으로 고깔모자를 만들어 포기마다 하나씩 씌워 준다.

이렇게 정성 들여 심어서 그런지 그해 모종들은 너무나 잘 자라 오이며 가지며 토마토며 너무 많이 달려서 집에서 다 먹지를 못해 동네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느라 어머니와 나는 무척 바빴다.

그 옛날 어머니와 모종을 내던 일을 생각하니 왜서인지 오늘 마음이 서글프다. 고국에 온 우리 동포들의 처지가 어쩌면 모종과 비슷하니 말이다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고국에 온 우리,
구덩이를 깊숙이 파고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건실히 자라야 할 우리,
물론 고국에 와서 정착을 잘한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도 제대로 정착을 못 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헤매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또 앞으로 여기 와서 정착하려 하는 사람들로 줄을 서고 있다.

그러면 우리 중국동포들이 모종처럼 적당한 자리에 구덩이를 파서 자리를 잡게 할 이는 누구이며 거름과 물을 준 다음 흙을 보드랍게 깨서 잘 덮어주게 할 이는 또 누구이며 땡볕과 바람에 시들지 말라고 종이로 고깔모자를 씌워줄 이는 또 누구이겠는가?

물론 한 핏줄이고 형제인 대한민국 국민이고 정부이며 정치를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국동포정책이 많이 좋아졌긴 하지만 아직은 완전히 긍정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이겠는가?

모종은 그 자체에 손과 발이 없다. 또 머리로 사고 할 줄 모르는 식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 동포들은 튼튼한 손과 발이 있으며 중국에서 문화수준이 제일 높은 소수민족으로 자라났다.
더욱 고향에서 소수민족으로 살다 보니 처지가 같은 사람끼리 잘 뭉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글을 끝맺는 이 순간까지도 나는 우리 동포들을 키워줄 이가 누구이겠는가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

2011년 5월 21일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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