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옥타는 중국동포기업인이 세계와 교류할 수 있는 좋은 무대”
[인터뷰]남용해 월드옥타 상임집행위원
[서울=동북아신문]강성봉 기자= 2010년 10월 수원에서 열린 월드옥타의 제15차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서 옥타의 역사가 새로 씌어졌다. 중국동포인 남용해 상임이사가 중국동포 최초로 옥타의 부회장인 10명의 상임집행위원에 진출한 것이다. 이는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한중경제교류와 한국기업의 중국 진출에 기여한 중국동포 경제인들의 업적에 대한 평가와 인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첫 부회장을 배출한 2010년 이래 월드옥타에서 차지하는 중국동포들의 비중은 더욱 커져 지난해 말 선출된 김우재 회장 집행부에는 남용해 상임집행위원, 이광석 상임집행위원, 이렇게 2명의 중국동포 부회장을 배출했다. 4월 16일부터 19일까지 전북 부안에서 열린 월드 옥타 제15차 세계대표자대회&수출상담회에서 남용해 월드옥타 상임집행위원을 만나 그 동안의 활동과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2010년 상임집행위원으로 선출된 이후 하신 활동 중에 기억에 남는 활동을 꼽는다면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한중 양쪽의 기업이 서로 교류하고 합작하며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한중경제포럼을 2011년 연길에서, 2012년 서울에서 한차례씩 개최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연길에서 개최할 때는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중국에 진출한 한인 경제인들과 전세계의 한인경제인들이 모여 한국기업들이 중국을 진출할 때 겪게 되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논의했습니다. 서울에서 개최할 때는 한민족 경제 활성화 등을 목표로 중국의 조선족 기업인, 세계 각지의 한인 경제인들이 참여했습니다. 또 월드옥타 북경 및 천진지회 주최로 지난해 6월15일부터 17일까지 천진 빈해일호온천호텔에서 중국경제인대회를 개최한 것이 기억에 남네요.”
월드 옥타가 중국동포 기업인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저는 1998년부터 옥타 활동에 참여했는데요. 초창기에는 중국동포 기업인이 20여명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중국경제가 성장하면서 중국동포 기업인들도 성장해 돈을 벌었지만 세계로 진출할 무대가 없었지요. 옥타가 바로 그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라는 커다란 용광로에서 배우고 익히고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어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 거지요. 2006년 경 부터는 중국동포 기업인이 옥타에 대거 참여하게 됩니다. 옥타 집행부의 노력으로 한국 정부도 출입국에 편의를 봐주는 등 중국동포 경제인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많이 해주고요. 아주 잘한 일이지요. 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정책적 배려를 잘 한 일이라고 감사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께도 국회에서 뵀을 때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옥타에서 중국동포 비중이 너무 큰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던데…
“G2로 부상할 정도로 중국경제가 성장하고 있고, 한중경제교류가 커지고 있어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만 중국동포 회원수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나라의 회원수가 전체 회원수의 3분의 1을 초과할 수 없다’고 정관에도 명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동포 중에서 회장도 나와야 되는 것 아닌가요?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중국동포 기업인들이 참가하면서 옥타가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국동포 기업인들이 옥타에 참여하는 이유는 옥타를 통해 좀 더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중국 조선족 문화는 중국식 가족문화입니다. 중국 교육체제의 영향으로 그렇게 되었겠습니다만 중국동포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동포기업인들이 빠른 시간에 성장한 이유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대국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으로서 중국동포들은 표현은 잘 하지 않지만 눈치로 많은 것을 합니다. 또 중국 대문화에서 소수민족으로 지원을 받고, 동포로서 모국인 대한민국의 지원도 받기 때문에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생존의 길이 더 많다고나 할까요.
전세계적으로 경기 불황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의 활로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한국에게는 전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북한이라는 처녀지가 있습니다. 북한에는 이미 중국기업들 뿐 아니라 남북을 모두 잘 알고 중국까지 아는 중국동포 기업인들이 들어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남한이 동포 기업인들을 활용해 북한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남북과 중국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일일 것입니다.”
기업인으로 현재 하시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서비스업체 위주로 부동산 임대 및 관리 사업, 불량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해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5~6백 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대형사우나도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업을 운영하시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저는 문인출신 사진작가입니다. 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작가로서 쨍쨍했습니다. 작품으로서 모든 것을 털어 넣고 평생을 가려 했는데 어쩌다가 기업인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서울과 평양에서 개인전도 열었구요. 연길에서도 작품전을 열었습니다. 2003년에는 연변자치주 촬영가협회 주석을 맡기도 했습니다. 1993년부터 청도에 진출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기업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든다면?
“저는 스스로를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옳은 것을 옳다고 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욕심 내지 않고 긍정적 사유를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인맥, 문화적 역량 등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스스로를 탈바꿈시켜서라도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작권자(c) 평화와 희망을 만들어가는 동북아신문, 무단복제-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