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70후’ 작가의 선두주자, 재중동포 김인순씨
장편소설 ‘춘향’으로 中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 수상
준마상은 1981년에 제정, 중국작가협회와 국가민족사무위원회에서 공동으로 주관해 4년에 한번씩 시상하는 상으로 ‘모순문학상’, ‘로신문학상’, ‘전국우수아동문학상’과 함께 중국 국가급 4대 문학상중 하나로 꼽힌다.
준마상 수상으로 크게 알려져
10기 준마상에는 김인순 외에도 재중동포인 김호웅이 보고문학 ‘이 세상 사람들 모두 형제여라-조선족교육가 림민호평전’으로, 심승철이 번역작품 ‘불멸의 영령-최채’로 수상했다.
김인순은 우리 민족의 고전 ‘춘향전’을 번안한 장편소설 ‘춘향’으로 준마상을 수상했다. 그는 ‘춘향’으로 길림성의 최고문예상인 ‘장백산문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제10기 ‘준마상’ 장편소설부문에는 무려 70여편이 출품돼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재중동포인 김인순이 수상자로 선정되어 조선족 문단의 높은 수준을 전 중국사회에 알렸다.
‘준마상’ 심사위원 랑위는 “나는 이 장편소설이 특별한 점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생활을 서술하는 작자의 방식은 동방고전의 시적인 정취와 함께 현대예술의 운치를 풍기고 있습니다. 초심 토론시 나는 이 작품을 심시위원들한테 정중히 추천했습니다. 예술상 정교한 이 장편소설은 모든 심사위원들의 인정을 받았고 최종 ‘준마상’ 수상작품중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라고 그 선정 경위를 밝혔다.
김인순은 신작 ‘춘향’에서 한민족의 불후의 고전을 국경과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대인들의 시각에 맞추어 재구성하고, 춘향의 회고로 된 일인칭 시점 등 파격적인 문체를 선보였다.
장편소설 ‘춘향’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김인순은 “상을 받게 돼 기쁘다. 이는 나와 나의 작품에 대한 긍정이라고 본다. 사실상 춘향의 선재는 특수하다. 심사위원들이 이를 받아들인 것은 그들이 큰 포용심을 갖고 있음이 아닌가싶다. 고전 ‘춘향전’을 읽고 나서 ‘춘향’을 쓸 결심을 했다. 우연히 고전 ‘춘향전’을 돌이키며 주인공 ‘춘향’을 하나의 인물로 사고할 경우 여성의 형상은 이런 ‘인형’형상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간이야기가 보여주는 전통적인 것을 완전히 다르게 엮어보면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쓰게 되였다. 춘향전이 중국 고전에 비해 스토리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선족으로서 고전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확장하는 소설을 써보자고 생각했다. 내 작품은 원전과는 전혀 다르다. 작품의 결말에서 춘향은 리몽룡과의 혼인을 거절하고 기생이 된다. 자유를 위해서이다”라고 말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견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춘향’
중국 언론들은 김인순의 ‘춘향’을 ‘로미오와 줄리엣’, ‘서상기(西廂記)’에 견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극찬했다.
김인순은 데뷔 이래 줄곧 중문으로 창작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다년간의 창작과정을 거쳐 중국 문단에서 ‘70후’ 대표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70후’는 1998년부터 문단에서 하나의 사조를 이루었고 광주, 소주, 하남 등 남방에 대표적 작가들이 있다. 김인순은 ‘북방대표’로 불린다.
중국문단에서 ‘70후’작가들은 ‘60후’작가들을 뛰어넘고, ‘80후’작가들을 껴안으며 문단의 중견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몇 해 전 중국의 한 주요잡지가 10명의 ‘70후’ 실력파 ‘미녀작가’를 선정했는데 그 중에는 용모와 실력을 구비한 김인순도 포함되었다. 그 중 김인순은 유일한 소수민족 출신 작가였다.
그의 당선 이유에 대해 작가들은 “김인순은 ‘70후’ 작가 군에 새로운 숨결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침묵 속에서 폭발하거나 침묵속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김인순의 폭발을 기다린다”고 밝힌바 있다.
김인순은 1970년 길림성 백산시에서 출생, 길림성 희극학원에서 희극문학을 전공했다. 4남매중의 막내로 아버지는 문화계통의 일군이었고 어머니는 소학교 교원출신이었다.
아버지가 극장의 주임으로 있을 때 김 작가는 밥 나르는 심부름을 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질 수 있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책을 많이 사주어 어려서부터 독서에 빠졌다. 그녀는 “후에 소설을 쓸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작품을 투고했는데 원고료가 한 달 생활비보다도 더 많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김인순은 대학에서 미대 지망생이었다. 그는 길림예술학원 미술시험을 보러 왔다가 그냥 좋아하던 영화생각이 나서 연극문학학부에 입시원서를 내 합격했다. 그 후 1학년때 우연히 숙제로 쓴 소품이 동북3성 공연에서 2등상을, 길림성정부 장백산문예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캠퍼스에서 꽤 알아주는 ‘작가’가 되었고 대학과정 중에 10여편의 소설을 쓰게 되다. 졸업후 잡지사 편집으로 배치 받으면서 다시 문단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2002년 김인순이 잡지 ‘작가’에 발표한 단편소설 ‘물가의 아디야(水边的阿狄雅)’가 영화 ‘녹차(绿茶)’로 각색, 제작되었다. ‘녹차’는 강문, 조미 등 중국 연예계 톱스타들이 주연을 맡아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이로써 김인순은 중국문단에서 문명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계에도 명성을 날렸다. ‘녹차’가 영화로 히트 하자 ‘그녀의 소설에서 갖는 시장효과의 비중은 얼마 만큼인가’ 하는 물음들이 제기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김인순은 “나는 글을 쓸 때 시장효과를 종래로 염두에 두지 않는다. 시장효과는 영화 텔레비전이 많이 이끌어낸다. 어떤 영화 텔레비전 작품은 문학엔 아무런 기여도 없지만 시장엔 기여가 아주 클 수 있다. 한편의 영화나 드라마 때문에 작가가 크게 뜰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후 그의 또 한편의 작품 ‘시체멋 선생(时尚先生)’도 영화로 각색되었다.
김인순은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창작을 시작, ‘사랑의 냉기류(爱情冷气流)’, ‘백일몽처럼(仿佛一场白日梦)’ 등 지금까지 백만자에 달하는 소설과 산문을 창작했다. 그가 창작한 많은 중단편소설은 중국문단의 주요 문학지들인 ‘수확’, ‘작가’, ‘화성’, ‘종산’, ‘대가’, ‘소설선간(小说选刊)’, ‘소설월보’, ‘중국문학’, ‘단편소설선간’ 등에 발표되었다.
그중 소설 ‘기(伎)’는 ‘20세기 중국 단편소설선집’에, ‘물가의 아디야’는 ‘2002년 중국 최고 단편소설’에, ‘해변의 풍경은 아름다워라(人说海边好风光)’는 21세기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평선에 당선되었다. 2009년에는 문화유적지 돈황을 찾은 한쌍의 신혼부부의 이야기로부터 물욕의 시대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 메스를 들이댄 작품 ‘돈황’으로 21세기 중국문학대계 ‘2009년 단편소설선’에 선정되었다. ‘돈황’은 중국작가협회 주석, 철응, 저명한 소설가 한소공 등 10여명 중국문단의 유명 작가들과 나란히 소설선에 수록되었다. 이외 산문집 ‘백일몽처럼’, ‘달빛아 달빛(月光啊, 月光)’ 그리고 드라마 ‘엄마의 장국집’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내놓았다.
김인순 (金仁顺) 프로필
1970년 길림성 백산시 출생, 길림예술학원 희극문학(戏剧文学) 전공, 잡지사 편집 근무, 8년째 장춘시 문련 전직 작가로 활약.
2002년 단편소설《물가의 아디야(水邊的阿狄雅)》로 중국소설학회 단편소설 순위 제4위, 제1회 길림문학상 수상.
2004년 화극《타인(他人)》중국 제8회 종목상, 감독상, 표현상, 조직상 수상.
2005년 시나리오 《녹차(绿茶)》 제1회 장춘문학상 금상 수상.
2008년 단편소설《상호(彼此)》 중국소설학회 2007년 단편소설 순위 제1위.
2008년 단편소설《소나무진(松树镇)》《중국소설격년상》수상.
2010년 단편소설 《돈황(敦煌)》 21세기 중국문학대계 《2009년 단편소설선》에 선정.
2010년 장중문(庄重文) 문학상 수상.
2011년 장편소설《춘향(春香)》장백산문예상 수상.
2011년 단편소설《벽오동(梧桐)》작가출판그룹상, 민족문학년도상 수상.
2012년 장편소설《춘향(春香》제10회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준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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