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 수필]다람쥐 3
<신길우의 수필 245>
[서울=동북아신문]산길을 가다가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었다. 사람들은 심심찮게 길을 따라 오간다.
50대 전후로 보이는 아낙네 둘이 제법 큰 짐을 지고 내려온다. 보기에 안쓰러워서 한 마디 건넸다.
“수고 많습니다. 쉬어 가십시오.”
그러자, 서로 얼굴을 바라보더니 건너 쪽에 짐을 벗어 놓는다.
“무슨 짐을 그렇게 지고 오십니까? 그냥 걷기도 힘드실 텐데.”
그러자, 한 여인이 대답한다.
“이게 다 도토리요. 지금 줍지 않으면 못 주워요. 금년에는 흉년이 들었는지 얼마 못 주운 거요.”
그러면서 그는 머리에 쓴 수건을 걷어 땀을 닦는다. 묵을 만들어 파실 거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팔기는요, 집에서 해먹기에도 부족한데. 한겨울에도 입맛이 없을 때 도토리묵이 얼마나 좋은 별민데요.”
하긴 그렇다. 별미 중의 별미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여인이 길가에서 무엇을 줍는다. 그러더니 올려다보고는 혼잣말처럼 말한다.
“가만있어 봐. 이거 상수리나무 아녀?”
그러더니, 산 쪽으로 들어가며 상수리를 줍는다. 대화하던 여인도 그를 따른다.
그러자, 다람쥐 한 마리가 얼른 상수리나무로 기어오른다. 얼룩무늬에 털이 다복한 꼬리를 가진 녀석이다. 잔 다리를 종종거리며 나무를 타는 모습이 참 귀엽다. 제법 높은 데까지 오르더니 다람쥐는 상수리를 줍는 두 여인을 내려다본다. 안심이 안 되었는지 계속 힐끔거리며 몇 걸음씩 더 위로 오른다.
두 여인이 간 뒤에, 내가 다람쥐에게 물었다.
“너는 뭐가 겁난다고 그렇게 높은 데까지 올라가니?”
그러자 다람쥐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럴 수밖에요. 사람들은 상수리만 줍는 게 아니라, 돌로 밑동을 치기까지 하니까 나마저 떨어질까 봐 걱정이 되죠.”
그래서, 가끔 아래쪽이 허옇게 벗겨진 나무들이 눈에 띄었었나 보다.
다람쥐는 나를 떠나며 한 마디 더 던진다.
“사람들은 별미 삼아 도토리를 줍지만, 우리는 살아갈 식량으로 줍는 거요. 열매 흉년이라도 들면 우리 다람쥐들은 수없이 굶어 죽는단 말예요.”
순간, 나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러면서 개구리가 한 말이 떠올랐다.
“너희들은 재미로 돌을 던지지만, 우리는 목숨이 왔다갔다한단 말예요.”
사람이 별미로 수집하고 재미로 던지는 일이 이들에게는 목숨과 연결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거워졌다.
사람의 행위는 의도가 없어도 남에게 해가 될 수 있고, 때로는 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2004년에 발표한 것인데, 그 뒤 한국에서는 야생 동물들을 위해 도토리 줍기를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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