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 수필]양(羊)
<신길우의 수필 240>
[서울=동북아신문]목장에서 언덕을 올라가는 한 무리의 양떼를 만났다. 그 뒤쪽에서는 소년 하나가 긴 막대기를 좌우로 옮겨들며 양들을 한 방향으로 몰아갔다. 양들은 무리 전체가 마치 커다란 한 마리의 아메바처럼 선두를 중심으로 언덕을 넘고 있었다.
그런데, 선두 가까이에서 양 한 마리가 무리를 조금 벗어나 방향을 틀었다. 이어서 옆에 있던 다른 양들이 그리로 따라갔다. 그러자, 소년이 달려가서 긴 막대기를 들고 제지하였다. 그런데도 그 양은 꿈쩍을 않는다. 소년은 막대기로 양들을 때리며 몰아 본래의 방향으로 가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양은 옆쪽으로 계속 나아갔고, 다른 양들도 계속 그쪽으로 몰려와서 합쳐지게 되었다. 소년은 막을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올라가게 두었다.
언덕을 넘어간 양떼들은 새로운 풀밭으로 몰려가 풀을 뜯었다. 한참을 그러던 양들은 제각각 적당히 흩어져서 풀을 되색임하며 한가로이 강산을 구경하였다. 널따란 푸른 초원 위에 하얀 양들이 자연스레 퍼져 있는 모습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는 맨 처음 옆길로 나간 양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왜 가라는 길로 안 가고 딴 길로 갔니?”
“그 길은 늘 다니던 길이라 잘 미끄러지지요. 그래서 옆길로 간 겁니다.”
“그렇다고 못 갈 것도 없는데 맞아가며 다른 길로 갈 건 없잖았니?”
그러자, 양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주인이 가라는 대로 가고, 때린다고 안 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판단해서 갑니다. 어린 목동이라 아직 그런 걸 모르는 거지요.”
나는 양의 그 말에 ‘목동이 아무리 몰아도 양들이 가지 않는 쪽 너머에는 목초가 없다’는 히말라야 고산족의 속담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다.
“양들이 무리지어 가는 것은 막대기를 든 목동의 힘 때문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양들의 감응력(感應力)에 따라 어느 쪽으로 가게 되어 있는 양들의 말없는 합의(合意)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숙달된 목동은 범위를 벗어나는 양들만을 추스를 뿐이지 이동의 추세를 억지로 바꾸려 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을 부리고 부림 받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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