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수필]적선(謫仙)과 망년지교(忘年之交)

<신길우의 수필 229>

2012-01-06     [편집]본지 기자
 [서울=동북아신문]  친구는 대개 비슷한 연령으로 맺어진다. 그런데 40년이 넘는 차이로 막역한 친구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시작품을 보고서 탄복하여 시우(詩友)가 되고, 술벗이 되어 금거북 도장까지 잡히며 술을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글벗의 망년지교(忘年之交)인 것이다.

   이백(李白, 701~762)은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10살 때부터 시에 능하여 평생 1000여 수나 되는 많은 시를 남겼다. 그는 시선(詩仙), 또는 적선(謫仙)이라 불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백은 300잔이나 마실 만큼 술을 무척 좋아했다 해서 주태백(酒太白), 주선(酒仙)으로도 알려졌다. <李白 상>

   이백의 조상들은 감숙성 진안에 살다가, 선조가 수나라 말엽에 죄를 지어 중앙아시아 쇄엽(碎葉)으로 이주하였다. 당시 쇄엽은 당의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 소속의 안서 4진(安西4鎭) 중 가장 서쪽의 진인데, 이백은 여기서 출생했다. 5살 때 아버지를 따라 오늘의 사천성 강읍현으로 이사했다. 가정이 부유해서 어려서부터 유학 경전과 백가(百家)의 학설을 배우며 자랐다. 20살부터 사천성의 명승고적을 유람하며 산천을 노래하고 시를 지었다. 26살 때부터는 여러 지역을 방랑했다.

   42살 때 조정에 들어간 벗 오균(吳筠)의 추천으로 서울 장안(長安)으로 갔으나, 현종(玄宗)은 이백을 모르고 만나주지도 않았다. 이백은 태자(太子)의 빈객(賓客)인 저명한 문인 하지장(賀知章, 659~744)을 알게 되어 자극궁(紫極宮)으로 찾아갔다. 자기 시「오서곡(烏栖曲)」을 보여주자, 하지장이 “이 시는 귀신도 울게 할 시”라고 호평을 했다. 시「촉도난(蜀道難)」을 보고는, “신선의 재주[仙才]다” “이 세상에 귀양 온 신선<謫仙>이다” 하고 극찬을 하였다. 이에 이백은 ‘시선(詩仙)’ ‘적선(謫仙)’으로 소문이 나면서 장안에 그 명성이 자자하게 되었다.

   이백은 하지장을 비롯해서, 여양왕(汝陽王) 진(璡)과 최종지(崔宗之) 등 여러 문인들과 어울려 술을 즐기며 지냈는데, 이때 이들 8명을 ‘주중팔선(酒中八仙)’이라 불렀다. 당시 하지장은 84세였고 이백은 42세였으니 할아버지와 손자의 나이 차였다. 그런데도 둘은 친구로 자주 만나고 가까이 사귀었다.

   한번은 하지장과 이백이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돈이 떨어졌다. 이에 하지장이 지니고 있던 도장 금구인(金龜印)을 맡기고 술을 계속 마셨다고 한다. 가히 나이를 초월한 교유[忘年之交]라 할 것이니, 문인의 세계가 아니면 보기 드문 일이다.

   하지장은 이백을 현종에게 천거하여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었다. 이백을 ‘이 한림’ ‘이 공봉’으로 부르는 것은 이때의 벼슬에 연유되는 말이다. 44살 때(744) 이백은 고력사(高力士), 장게(張垍) 등의 참소로 한림공봉 직을 물러났다.

   그는 봄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했는데, 가을에 강남 월주(越州)에 이르러 하지장을 찾았다. 하지장은 사직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미 별세하였다. 뜻밖의 사실에 이백은 놀라서 시 2수를 지어 애도하였다.

         四明有狂客 風流賀季眞 長安一相見 呼我謫仙人

         昔好杯中物 今爲松下塵 金龜換酒處 却憶淚沾巾

         狂客歸四明 山陰道士迎 勅賜鏡湖水 爲君臺沼榮

         人亡餘古宅 空有荷花生 念此杳如夢 凄然傷我情

                                                   ― <對酒憶賀監>

 

         사명(四明) 땅에 미친 이 있으니 풍류인 하계진이라

         서울 장안에서 처음 만나 적선(謫仙)이라 불러주었네.

         옛날 술로 나누던 이 오늘은 솔 아래 누운 먼지라

         금도장 맡겨 술 먹던 것 그리움의 눈물 수건 적시네.

         하지장이 사명으로 돌아가자 산음 도사들 환영하였고

         하사받은 경호땅 그대 위한 누대와 연못 더욱 빛나네.

         사람은 가고 옛집만 남아 연꽃이 피어도 보는 이 없으니

         생각하면 꿈처럼 아득하고 처연함 내 마음 아프게 하네.

                                   ― <술을 앞에 두고 하지장 비서감을 생각하며>

          * 사명(四明)은 하지장의 고향에 있는 이름난 산인데, 그의 「용서궁기(龍瑞宮記)」에
             하지장은 스스로 사명광객(四明狂客)이라 하였다. 계진(季眞)은 그의 호이다.

 

   시(詩)로 감동시켜 실력을 인정받고, 술을 즐겨 할아비와 손자의 거리를 친우(親友) 사이로 만든 이태백, 하지장이 시선(詩仙)으로 이름하고, 두보(杜甫)가 주선(酒仙)으로 노래했으니, 신선(神仙)이 되고서도 시와 술을 즐김은 버리지 못할 것이다. 후세 시인들이 시와 함께 술을 좋아함이 어쩌면 이백(李白)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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