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 국적 찾겠다는데
2003-11-25 운영자
내가 섬기는 교회엔 요즘 손님 600여명이 머물고 있다. 이들은 8개 개신교회에 분산 입소해 14일부터 금식기도회를 갖고 있는 2400여 중국 동포 중 일부다.
‘중국 동포 금식기도회-돌아와 살 수 있게 하옵소서’
처절한 문구의 현수막이 걸린 기도실에 머물면서 대부분 식수만으로 연명하면서 소망이 이뤄지기를 간구하고 있는 이들은 지난 13일 법무부에 ‘국적 회복 신청’을 했으며 그 중 일부는 이튿날 ‘국적 부작위 위헌 소송’을 내고 이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금식기도회를 일제 단속의 공포 속에서도 강행하고 있다.
사태의 발단이야 비교적 단순하다. 정부가 중국 동포 12만명을 비롯해 체류 기간이 지난 이주 노동자(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해 시한을 정해놓고 자진 출국을 권유한 후,기한이 만료돼 단속을 시작하자 남은 중국 동포들이 단체 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낸 국적 회복 신청과 국적 부작위 위헌 소송이 상당한 타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독립 운동이나 생계를 위해 만주로 떠났던 동포들은 당시 일본 국적을 갖고 상하이 임시 정부에 세금과 독립군 자금을 납부하는 조선인 신분으로 살았다. 그러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을 시도하지만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는 바람에 통로가 막혀 현지에 주저앉게 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이후 이들과 그 후손은 자연히 중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는데,‘법무법인 정세’의 정대화 변호사 등의 말에 따르면,재중 동포는 법리 상으로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 따라 한국 국적자인 동시에 중국 국적을 지닌 이중 국적자다. 따라서 자신의 원국적을 회복코자 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동포 5000여명의 국적 회복 신청서를 접수한 법무부의 검사 상당수도 개인 의견을 전제로 타당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지난 92년 우리 정부는 한·중 수교 때 이 부분에 대해 어물쩍 넘어감으로써 문제의 소지를 잉태한 후,이후에도 내정 간섭 등 중국 정부와의 외교 문제를 이유로 이를 기피해 오고 있다.
중국 동포들은 설령 대한민국 국적을 잃었다 하더라도 재외 국민의 보호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2조 제2항의 정신에 따라 조건 없이 국적 회복을 허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국 동포 국적업무 처리 지침’이라는 차별적 하위 지침을 마련해 이를 막고 있다면서 국적 부작위 위헌 소송을 낸 것이다.
우리 정부가 그토록 신경을 쓰는 중국의 경우 두 차례에 걸쳐 자국민에 대한 국적 회복을 실시한 바 있다.
60∼7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중국은 아시아 각국에서 거주국 국적자로 박해를 당하던 화인(華人)들을 대거 귀국시키고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부여했다.
이어 78년 덩샤오핑의 개방과 개혁 드라이브가 시작되면서 이번엔 화교(華僑:주로 대만 국적자)들에 대한 대대적 국적 회복 시책을 펴고 내국인 이상의 특혜까지 부여한다. 우수한 화교 인력과 거대한 화교 자본을 겨냥한 실용주의 방침의 결과였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10월 말 현재 청년 실업률이 7%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통계에도 불구하고 3D 업종과 허드렛일 자리를 채우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세계화’라는 거창한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국가 간 임금 격차에 따른 노동력의 이동이 일상화한 지금,산업의 공동 현상을 막아주는 이주 노동자,그 중에서도 중국 동포들을 우리 스스로 내치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동포는 한민족 특유의 손재주로 숙련도가 높을 뿐 아니라 고학력에,무엇보다 언어가 통하기 때문에 제조업은 물론 안전사고가 빈발하는 건설 현장과 서비스 분야에서도 0순위 채용 대상이다.
오늘로 재중 동포들의 금식이 열이틀째에 이른다. 이미 100여명이 탈진 상태에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목숨을 담보로 국적 회복을 간곡히 제기하는 그들의 낮은 목소리를 정부는 경청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우리 국민’이기 때문이다.
윤재석 편집국 부국장 jesus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