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집거구 생활 양상 시야비야
2006-01-09 동북아신문 기자
흑룡강성 조선족중소학교 주변 조선족집거구는 사면팔방에서 모여온 사람들로 구성되였기때문에 ‘성분' 이 아주 복잡하다.
어제날 촌이라고 하면 본 촌 농가를 위주로, 도시라고 해도 제지방 직장인들로 구성되였기에 상대적으로 사회신분이 단일하고 가치관념, 도덕관념, 생활방식 등 면에서도 큰 차별없이 일치성을 보였지만 오늘에 와서는 농민, 직장인, 본 고장 사람, 타지방 사람, 국내외 로무경력자, 자식 공부뒤바라지를 위해 모여온 학부모 등 신분, 취향, 사회경력 등이 각이한 사람들로 구성되다 보니 그들의 생활 모습 또한 천태만상을 이루고 있다.
본보기 학부모 적어
조선족집거구 거주민들의 생활 양상을 론할라 치면 사회상에 떠도는 ‘속담에 과부집 문앞에 시비가 많다지만 어찌 조선족집거구에 비하랴'는 풍언 한마디를 서두에 꺼내지 않을수 없다. 그만큼 문제점이 많다는 말이 되겠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다고 해도 우선은 모든 학부모들이 우리 선조들이 빌어 먹어도 자식 공부를 시킨 우량전통을 잊지 않고 부모로서의 직책을 다해 자식 공부만은 정성껏 능력껏 시키고 있는점에 대해 충분히 긍정하고 또 이것이야말로 조선족집거구 전반 흐름의 주선이라는 점에 대해 객관적으로 지적하지 않을수 없는것이 사실이다.
학교주변 조선족집거구 거주민들을 놓고 볼 때 절대 다수 가정에서 가정식솔가운데 한두 명이 한국을 위주로 한 일본, 러시아 등 국외나 대련, 청도 등 연해도시를 비롯한 국내 대중도시로 돈벌러 나가 있거나 이미 돈을 벌어와 경제적으로 비교적 유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반면에 약 15%가량 되는 가정들에서는 외국 또는 외지에 나가 돈버는 사람이 없는데다 다른 소득원 없이 농사수입에만 의거하다 보니 자식 공부뒤바라지마저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같이 그들은 생활 수준면에서 심한 격차를 보이지만 자식 공부뒤바라지에서만은 조금도 다를바 없다. 생활형편이 넉넉한 가정에서 자식을 도시 학교에 보내 공부시키는가 하면 경제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도 자식을 도시학교로 전학시키는것이 보통이다. 그들도 자녀를 부근 한족학교에 보내 공부시키면 경제상에서 절반이상 부담을 덜수 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들은 자신이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좀더 고생할지언정 촌학교에 내버려 두려하지 않았다. 이건 단순히 자존심과 허영심때문이 아니였다. 앞날 자녀의 전도를 위해서였다.
이런 가정들은 도시에 나와서도 생활을 위해 열심히 뛴다. 오상시조선족중학교주변 집거구에는 자식공부를 위해 세집을 맡아 있으면서 기숙생을 받아들여 때식을 끓여준다, 빨래를 씻어준다 하며 잔돈벌이도 마다하지 않고 하며 집세를 뽑을뿐만 아니라 소비돈도 해결하는 가정이 10여가구 된다.
비록 이런 가정이 많지 않지만 기타 집거구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수 있다. 이런 적극적인 인생자세와 분발정신은 객관상에서 자녀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훌륭한 교육으로 되고 있다. 조선족집거구에는 이 같이 경제형편이 어려운 처지에서 부득불 열심히 뛰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경제형편이 넉넉하지만 허송생활하기 싫어 음식점을 앉힌다, 가게를 마련한다, 복장점을 꾸린다 하며 재간껏 일하며 삶을 보다 보람차게 가꿔가는 가정들도 적지 않다.
모순속에서 허송세월
이와 반대로 자녀 공부뒤바라지를 한다치고 학부모로서 자식을 촌에서 도시로 전학시켜 놓고 밥이나 해주고 옷이나 씻어주는 정도에 그치고 마작이나 술추렴으로 허송세월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비례를 차지한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무미건조하게 보내는 사람이 학교주변 조선족집거구의 반은 웃도는 상황으로 가장 돌출한 사회문제로 나서고 있다. 할일이 별로 없는데 이것마저 안하면 뭘 하는가 하는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처음엔 그들 스스로도 이렇게 허송세월해서는 아니 되겠다고 생각하고 돈벌이 보다는 심심풀이로라도 무엇이든 해보려고 시도하지만 괜히 서뿔리 손댔다가 밑천도 못 뽑을바엔 차라리 집에서 노는것이 돈 버는거란 생각에서 결국 그자리에 물러앉고 만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같기만 한것이 아니였다.
마작을 놀고 싶어도 놀아야 하고 놀기 싫어도 놀아야 했다. 할일 없이 집에 있는줄 알고 부르는데 가지 않자니 친구의 앞면을 봐주지않는것 같고 가자니 돈주머니가 무섭다. 마지 못해 가면 마작으로 시작한 놀음이 다시 술 추렴으로 넘어가고 그 다음 술이 한잔되면 저도 모르게 발길이 노래방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런 마작판에 돈없이 앉을수가 있는가? 술추렴도 공짜로 먹을순 없고 노래방에는 더구나 외상이라곤 없다.
돈도 돈이지만 명성도 좋지 않고 하여 그만 손씻으려고 생각해 봐도 할만한 일이 없어 겁부터 앞선다. 그래서 한번 두번 다니다나면 그 다음엔 안가면 손이 간지러워 못견딘다. 한 고향 사람, 한마을 사람, 한집안 사람, 동창생, 동갑모임, 전우모임 이렇게 오늘은 이쪽 패에, 래일은 저쪽 패에 휩쓸려 다니다 보면 어느새 물들어 버리는것이 일쑤이다. 그들 대부분이 자녀가 고중졸업할 때까지 이런 방식으로 생활하려 작심하고 있는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안타까운것은 그들 자녀들까지 어른들을 본따 쩍하면 명절이요, 생일이요 하며 구실을 달아 술상차리기에 기승을 부리는데 한번에 적어도 200~300원,보통 300~400원씩 쓰고 많으면 500~600원도 그만이다. 게다가 통도 제법 커져 이런 파티를 음식점에서 끝내는것이 아니라 2차로 노래방, 3차로 커피숍을 찾는단다.
‘애인현상' 돌출한 문제로 나서
다른 한 사회현상으로는 뭇사람들의 말밥에 자주 오르는 ‘애인현상' 이다. 각 지방 조선족집거구에 가면 현지 사람들로부터 ‘홀애비 마을'이요, ‘과부마을'이요, ‘애인거리'요, ‘사랑의 거리'요 하며 ‘애인현상'과 갈라놓을수 없는 얘기들을 어렵잖게 들을수 있다. 출국 등 원인으로 오랜 세월 갈라져 있는 부부 일방이 혹은 ‘지친 사랑'을 달래기 위해, 혹은 어길수 없는 ‘생리적 욕구'를 풀기 위해, 혹은 메마른 취미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혹은 호기심으로, 혹은 심심풀이로, 혹은 분풀이로 이성상대를 찾아 남몰래 또는 공공연하게 련인관계를 맺는 현상이 비일비재다. 그런데 이런 ‘애인현상'이 중국에서 언제부터 묵인되고 있는지는 몰라도 현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질책할 대신 ‘그것도 인생의 한가지 재미인데 가정을 파괴하지 않고 사회에 영향주지 않으면 무슨 문젠데', ‘새파란 나이에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년을 독수공방하라는것이 잘못이지'라고 하며 오히려 동정하고 리해해주고 있는것이 오늘날 실정이다. 바로 이런 사조의 영향으로 남들은 보고도 못본체 관용하는 태도를 짓고 당사자들은 꺼리낌없이 ‘애인'을 찾아 ‘재미'를 본다. 그래도 전에는 이런 일이 사회에서 수치스러운 일로 간주되여 남몰래 진행되였지만 지금은 실력이나 과시하듯 공개적이다.
아예 ‘애인' 두 사람의 가정이 한 집을 잡고 자식들을 데리고 동거생활을 하는 현상도 없지 않아 있다. ‘애인현상' 이 날로 보편화, 공개화, 합리화 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이런 ‘애인'관계는 항상 좋을수만 없어 일부 사람들이 이때문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는 경우도 있다. 누구는 ‘애인'이 싫어져 그만두려다가 대방이 놔주지 않아 대판 싸웠다는둥, 누구는 ‘애인'과 맞지 않아 갈라지자고 제기했다가 죽도록 얻어맞았다는둥, 누구는 자기 남편이 돌아와 ‘애인'관계를 끊으려다가 대방에서 ‘애인'관계를 계속 유지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바람에 마지못해 유지하다가 들켜 두 집사이에 칼놀음이 벌어졌다는둥, 누구네는 ‘애인'때문에 가정이 파산되였다는둥,이같이 ‘애인현상' 에 관한 얘기는 별의별것이 다 있다.
자녀 공부뒤바라지책임을 지닌 학부모로서 자신들의 이런 행위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져다줄것인가 하는것은 고려하지 않는다치더라도 자녀한테 어떤 영향을 끼칠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것은 최저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못말리는 과소비
조선족집거구 형성과 더불어 식을줄 모르고 치달아 오르는 과소비열은 또 다른 한 심각한 사회문제라 하겠다. 조선족집거구를 보면 어디나를 막론하고 과소비를 주도하는 부동산이 현지 기타 조건이 비슷한 주택구보다 약 10%가량 값이 높다.
건축개발상들이 조선족들은 한국에 갔다와 돈있다며 조선족집거구 주변에 집을 많이 짓고 집값도 잔뜩 올리지만 남아도는 집이 없다.
녕안시조선족중학교주변 조선족집거구옆에 새로 지은 ‘공안국 가족아파트'는 공정질감정에 통과되지 못한 저질건축물이지만 조선족들이 너도나도 사서 드는바람에 거의 다 분양 되였단다. 집값이 높은가 하면 곁따라 집세도 비싸다. 어떤 고장에서는 일부 약삭빠른 한족들이 가격차이를 리용해 헌집을 조선족한테 세내주고 자기네는 그 돈으로 도시에 들어가 조건이 더 나은 세집을 맡아 살며 돈도 남긴단다. 이들 못지 않게 택시기사들 또한 조선족의 혜택을 입어 경기호황을 누리고 있다. 조선족들은 돈을 통쾌하게 주고 깎지도 않는다며 택시기사들은 승차하는 조선족들한테 제자랑하듯 얘기한다.
얼핏 듣기에는 돈 빼먹으려고 얼리는 수작 같지만 조선족중학교 대문앞에나 조선족집거구 골목길옆에 전문 택시들이 줄지어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정경을 목격하면 대뜸 이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기실 조선족 학부모들은 더 말할나위 없고 학생들마저도 개별적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는 도시로 일보러 가거나 놀러가거나를 막론하고 무조건 택시를 잡아탄다. 택시를 옆에 두고 버스를 기다리는것을 낯깎이는 일로 여기기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경제형편이 되여 그러면 정상이라 하겠지만 다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처지에서 남의 눈이 무서워 ‘울며 겨자먹기'로 그런다고 하니 과소비현상이라고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흑룡강신문 고범룡 기자 12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