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해로를 실천한 사람 ― 앙드레 고르와 도린 케어

[신길우의 수필 220]

2011-08-08     [편집]본지 기자

   2007년 9월 22일, 프랑스의 저명한 언론인이며 철학자인 앙드레 고르(Andre Gorz)가 아내 도린 케어(Doreen Keir)와 동반자살을 하였다. 고르는 84세, 아내는 83세. 침대 맡에 놓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화장한 재를 둘이 함께 가꾼집 마당에 뿌려 주시오.”

   노부부의 자살 소식은 온 세계로 퍼졌고,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20년이 넘도록 불치의 병에 걸린 아내만을 위하여 살아오던 고르가, 아내의 죽음이 눈앞에 닥쳐오자 극약을 주사하여 함께 죽은 것이다.

   아내만을 위해, 아내에게 들려주려고 쓴 글들이 죽은 뒤에 출판되자, 프랑스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깊고 자상한 사랑과 헌신적인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구구절절이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말로만 들었고 입으로만 했던 ‘백년해로(百年偕老)’의 진솔한 삶을 만났기 때문이다.  

   앙드레 고르(1923~2007)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목재상을 하는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살에 스위스 로잔에 갔을 때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아버지는 그에게 돌아오지 마라고 했다. 나라도 잃고 돈도 없는 그에게 망명생활은 무척 힘들다.

   이때 고르에게 뛰어든 사람이 영국인 도린 케어(1924~2007)였다. 1947년 초라한 셋방에서 시작된 그들은 죽을 때까지 60년을 원앙처럼 살았다.

   발랄한 도린을 처음 봤을 때 고르는, ‘넘볼 수 없는 여자’로 생각했다. 더구나 자신은 무일푼의 유태인이었기에 더욱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둘 다 외로웠다. 아버지가 일찍 죽자 어머니는 도린을 대부에게 맡기고 가출했다. 전쟁 중에 도린은 배급 받은 식량을 고양이와 나눠 먹으며 혼자 살았다. 전쟁이 끝나자 그녀는 유럽을 방랑했고, 로잔에서 고르를 만난 것이다. 외로운 사람끼리 만났기에 그들은 쉽게 통했다.

   1974년 도린이 근육위축병에 걸리자, 고르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그녀와 함께 지냈다. 1983년에는 척추수술 후유증으로 거미막염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리자, 고르는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시골로 내려가 아내의 간병에만 전념하였다.

   불치의 병간호 20여년, 아내의 죽음이 가까이 다가옴을 느끼자 고르는 2006년 봄부터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하였다. 병석의 아내에게 들려주려고 글을 썼다.

   “우리가 함께 한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나는 많이 울었습니다. 나는 죽기 전에 이 일을 해야만 했어요. 우리 두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우리의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글을 대중들을 위해서 쓰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아내만을 위해 썼습니다.”

   하지만, 그의 글들은 아내에게만 들려주고 말 수가 없었다. 그의 편지가 책으로 출판되자, 프랑스와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당신은 곧 여든 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나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편지의 마지막에는 그가 아내와 함께 죽을 것을 결심한 듯한 구절이 들어 있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가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 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그들은 마침내 작은 도시 보농에서 함께 목숨을 끊었다.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 대로, 그들은 같은 날 저 세상으로 떠났다.

   시신은 이틀 뒤 발견되었다. 유언에 따라 그들의 집 뜰에 그들의 재를 뿌렸다.

 

   사람들은 결혼할 때 흔히 ‘백년해로(百年偕老)’라는 말을 많이 한다. 부부가 화락(和樂)하게 오래오래 함께 늙어가면서 산다는 뜻이다.

   그러나 부부가 백년해로를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함께 오래 살기도 힘들지만, 화락하게 살기란 더욱 어렵다. 원앙이나 잉꼬부부로 소문이 난 사람들도 실제로는 다투거나 싸우지 않고 살지는 못한다.

   그런데, 앙드레 고르와 도린 케어는, 부부생활 60년, 불치의 병이 들고 간병하기 20여년을, 오로지 서로를 위하며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살았다. 그리고 원했듯이, 그들은 한 날 한 시에 함께 세상을 떠났다.

   진솔한 사랑과 고귀한 삶 백년해로, 아무도 해내지 못하는 그것을 고르 부부는 실제로 보이고 갔다. 극진한 사랑과 저승에도 함께 가는 그 숭고한 삶에 감동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