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룡정시 락연공원에 한락연동상 세워져
[서울=동북아신문] 지난 7월 30일, 중국조선족이 낳은 걸출한 혁명가이며 인민화가인 한락연(1898.12.8ㅡ1947.7.30)선생의 혁명정신과 예술업적을 기리는 당창건 90돐 경축 및 '한락연기념활동'이 선생의 고향인 용정과 연변대학에서 진행되었다.
용정시당위와 룡정시인민정부에서 주관하고 연변대학에서 주최한 이번 경축활동과 기념활동은 기념활동개막식, 한락연동상제막식, 한락연예술전, 연구포럼 등 활동으로 이틀간 진행됐다.
한락연선생 타계 64주기를 맞으며 조직된 이번 활동 개막식에는 원 전국정협부주석 조남기, 전국정협 상무위원이며 원 중공중앙통전부 부부장,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 리덕수, 연변주당위 상무위원, 선전부 부장 이흥국, 원 연변대학교 교장 박문일, 연변대학당위서기 이용 등 지명인사들과 한락연연구회성원 및 한락연선생의 유가족과 상해염보항사회공익기금회 리사장 염명광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온 42명 전문가와 학자들이 참가하였다.
전국정협 상무위원이며 원 중공중앙통전부 부부장,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 이덕수는 연설에서 "한락연동지는 중국 20세기 걸출한 정치활동가이며 인민예술가"라고 평가하면서 인식을 높여 진일보로 한락연동지를 기념하는 중요한 의의를 명확히 하고 선전폭을 넓혀 한락연동지의 숭고한 정신풍모를 널리 선전하며 소수민족지구의 문화번영발전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1898년 12월 8일 용정시에서 출생한 한락연(원명:광우, 자:락연)은 1919년 《3.13》운동에 참가한 초기 고려공산당원이다. 중국공산당 창시자의 한사람인 채화삼의 영향으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그는 최초의 조선족 공산당원이며 동북지구 초기 공산당 창시자, 령도자의 한사람이다. 1929년 당중앙의 동의를 얻고 서양회화예술을 배우기 위하여 프랑스로 류학을 떠나 구라파의 10여개의 나라를 전전하면서 서양회화예술을 배우는 한편 세계반파쑈운동에 뛰여들었다. 1937년 프랑스에서 돌아온 한락연은 주은래의 동의를 거쳐 무한 동북항일구국총회 지도사업에 참가하였는데 1938년 11월 20일, 제3청 예술가연안방문단 일원으로 연안에 간 한락연은 모택동의 접견을 받기도 하였다.1940년 6월초 서안을 거쳐 중경으로 가는 도중 국민당헌병에게 체포되여 섬서성 당부 특종구류소에 수감되였다가 당조직의 활동하에 1943년에 가석방된 그는 예술가의 신분으로 국만당고급장령들사이에서 통전공작을 하면서 항전승리와 대서북의 해방사업에 탁월한 공헌을 한다. 1947년 7월 30일 비행기사고로 세상을 하직했는데 그해 그의 나이는 49세였다.
한락연은 1956년 중앙정부에 의해서 혁명렬사로 인정되였고 그와 전부인 최신애사이에서 태여난 딸 한인숙은 지난 2005년도에 한국노무현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한락연의 회화예술도 중국미술계의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걸출한 화가'의 한사람으로 꼽혔다.
한락연동상제막식에서 한락연선생의 딸 한건립은 "아버지가 타계 64주년만에 고향 룡정에 동상으로 돌아왔다"면서, "이러한 기념활동을 조직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며 아버지의 혁명정신과 예술업적이 길이길이 고향사람들을 고무격려해줄 것"을 기원했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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