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 바꿀 '귀중한 길트기'
이윤택(한국인) 칼럼
[서울=동북아신문]언제부터인가 한류란 말이 일본,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문화가 국경을 넘어 전파되면서 생긴 조어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류란 이름으로 해외에 전파되고 있는 한국 문화는 주로 젊은층의 대중문화와 패션·의류·전자제품·자동차 등 소비산업 측면의 유행을 반영한다.
원래 유행에 민감한 대중문화의 속성은 일시적인 흐름이고, 소비산업 또한 국제경제 정세의 상승과 하강 곡선을 타기 마련이다. 그 점에서 지금 불고 있는 한류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일시적 문화산업의 현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한류는 정말 대단한 전파력을 보여준다. 일본 와세다대학 뒷문에 위치한 유서 깊은 우동집은 교수나 정치인이 와도 막말을 하는 일본 음식문화의 자부심 그 자체이다. 그 우동집에 들어서면 배우 배용준의 사진이 일본 전통 신사의 신단 속에 모셔져 있다. 우동집 할머니는 배용준의 사진과 눈길이 마주치면 두 손을 합장하고 절을 해댄다. 한국의 영화배우가 일본 전통 풍속의 신이 돼 있던 것이다. 한일 간의 해묵은 역사적 앙금도 이 일상적 친화력 앞에서는 무장해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이 한류의 흐름이야말로 한민족 정신사에 절호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일본 열도는 고대로부터 한류의 수혜를 지속적으로 받은 곳이었다.
한류는 신석기시대 북방 아시아 초원을 가로질러 온 기마 유목민의 이동성 문화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한류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한 우상에 대한 '사로잡힘' 현상이다. 이 대중적 '사로잡힘'은 고대 샤먼의 사회적 우상 역할과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일본은 고대 샤먼의 현신(천황)이 지금도 존재하는 국가다. 그만큼 일본인은 대중적 '사로잡힘'이 강하고, 외부에서 불어오는 문화적 흐름을 적극 수용해 온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해 조선반도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폐쇄적인 자기방어 의식에 갇혀 있었다. 조선의 유교 정책이 중국의 속국의식에서 비롯됐고, 그로 말미암아 북방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애써 막았다. 그러나 조선반도는 원래 북방 초원에서 순록을 따라 남하하는 기마 유목민의 자연스런 이동경로였다. 이 기마 유목민의 풍속과 문화가 일본에 전파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조선반도는 조선시대에는 중국, 식민시대는 일본, 해방 이후에는 미국과 러시아 등 인접 강대국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성을 높이 쌓고 자기방어적인 틀 속에 갇혀 살았던 셈이다.
사실 우리 민족만큼 폐쇄적인 습성을 지닌 민족도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순수 혈통주의를 중시하는 사회적 관습이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 사고로 드러나고 있다. 다인종·다문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점에서 한류는 한민족의 자기폐쇄적인 관습을 극복하는 귀중한 길트기가 될 수 있다. 대중문화 산업 측면에서 불고 있는 한류의 바람에 평화와 공존의 '열린 사고'를 실어 보내는 일이 먼저다. 그러면서 조선반도를 서로 다른 체제와 문화가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는 아시아의 관문으로 열어 나가는 것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우수성이 기마 유목민의 손재주에서 비롯됐고, 한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 또한 발빠른 이동성 유목민 근성이 십분 발휘된 결과라면, 이 발빠른 유목민적 사고와 체질을 국가동력으로 극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한류를 일시적인 대중문화산업적 현상으로 제한하지 말고, 정치·외교·경제·문화·사회 전반에 걸친 조선반도의 새로운 정신사로 확대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조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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