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 토종을 지켜가는 사나이

고영섭씨 생태토종닭 생산, 가공, 판매 일체화로 승부

2011-05-19     송은영 특약기자

[서울=동북아신문]많은 사람들이 시체 멋을 따르며 신식을 추구하고 있을 때 묵묵히 우리 민족의 신토불이를 고집하는 사나이가 있다. 그가 바로 룡정시 하서가두 유신사회구역(봉림3대)에 10여헥타르에 달하는 연변봉림골생태토닭사양기지를 세우고 전매점을 통해 자기가 생산한 닭과 닭알을 직매하고 있는 고영섭씨(47살)이다.

연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등지고 해외나 대도시로 진출했고 귀향했다 해도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생활환경이 좀 더 나은 도시에 가서 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농촌에서는 토종닭 등 재래종 집짐승들이 적지 않게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를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던 고영섭씨는 토종으로 창업의 승부수를 띄우고 "토종지킴이"로 자진해 나섰다.

양식부문에서 오fot동안 사업하다 2001년에 퇴직한 고영섭씨는 그후 여러 사영업체를 전전하다 2008년에 드디어 창업을 결심, 유기화학비료공장, 연변유기입쌀회사, 토종닭사양장 등 세 가지 대상을 놓고 고심하던 그는 결국 토종닭사양을 선택하게 된다. 토종닭을 사양해본 경험이 전무하고 나라안팎에서 조류독감이 돈다고 시끌벅적했지만 우리 민족의 토종을 지키려는 갸륵한 마음이 결국 이런 선택을 하게 한 것이었다. 원예농장, 주동물방역소, 농학원 동물학부의 전문가, 교수들의 조언도 토종닭을 키우려는 그의 결심을 굳혀주었다. 연변은 여름철이 짧아 병균번식과 전파에 제한성이 있고 토종닭이 양계닭과는 달리 워낙 적응력이 강해 키우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양장부지 선정이 문제였다. 나서 자란 고향에서 자신의 첫 창업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화룡은 워낙 골이 깊어 토종닭 생태사양에 적합하지 않았다. 또 친환경시대에 닭 사양장은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또 생산, 가공, 판매를 일체화하려면 시장이 큰 연길시와 가까워야 했다. 수개월간의 세밀한 답사를 거쳐 결국 여러 조건을 두루 갖춘 봉림을 선택하게 되였다. 토종닭 종자도 주내 30여개 부화공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알심 들여 비교분석하고 선택했다.

2009년 3월 첫 부화를 시작해 20일 간격으로 두 번째, 세 번째로 부화를 연달아 했다. 이와 동시에 닭장를 짓기 시작해 보름만에 280평방메터 되는 닭장를 완성했다. 닭을 닭장에 넣은 후 사양장에 붙어있다 싶이 하며 닭을 보살폈고 한밤중에도 손전등을 들고 닭장에 들어가 닭의 숨소리를 들으며 관찰하기도 했다. 또한 짬만 나면 인터넷에 접속해 자료를 찾고 전국 각지의 기술자들과 상담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닭은 탈 없이 잘 자랐고 알도 잘 나았다.

고영섭씨는 이렇게 생산한 토닭과 토닭알을 시장에 넘겨줄 것인가를 생각했지만 가짜가 난무하는 때라 양심을 저버린 되거리장사아치들이 가짜를 섞어 팔아 봉림닭 브랜드에 먹칠할 가 봐 직접 전매상점을 꾸리기로 했다. 이렇게 그는 2009년 10월, 한신아빠트 동쪽에 46평방미터 되는 "연길시봉림골토닭알상점"을 세운데 이어 연길시공원시장 맞은 켠에 또 두 번째 전매상점을 세웠다.

지금까지 60여만원을 투자해 1100평방메터의 닭우리 5개를 갖추고 알낳이닭 6000마리, 병아리 1만 2000마리를 키우고있는 고영섭씨는 아직도 소비자들의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500평방메터 규모의 닭장 두개를 더 짓고 알낳이 닭도 3만마리로 늘일 타산이라고 했다. 또 토닭곰집도 직접 운영해 토종닭 생산, 가공, 판매를 일체화하련다고 했다.

고영섭의 야심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있다. 앞으로는 또 검정토종돼지도 1000마리 정도 키워 사라져가는 연변의 토종닭, 토종돼지를 지켜나갈 타산이다.(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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