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업에 혼신을 바쳐가는 최경선교사
김정섭 글
[서울=동북아신문] 중국 길림성 룡정시 룡정중학교에는 24년간이나 영어과 교수와 담임교사로 혼신을 다바쳐온 교사가 있으니 그가 바로 최경선 (46세)교사이다.
최경선은 룡정3중을 졸업하고 길림성 교육학원(본과)을 졸업한후 연변대학 전문학과를 마치였다. 그는 1987년 2월부터 지신중학교에서 영어과를 가르치였으며 2004년 2월부터 룡정중학교에 전근해 온후 계속 영어과임을 맡고서도 7년간이나 학급담임을 맡았으며 24년 간이나 굳건히 교단을 지켜내였다.
최경선선생은 1991년에 초중1.2학년의 영어과를 맡았고 그런데도 초중3학년 담임을 맡게되였다. 그와중에 1월말 해산달이기도 하였다. 당시 학교엔 대과를 하라는 조건도 없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학습에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해산후 한달만 휴식하고는 출근하였다.
당시 학급에 최XX학생의 가정경제 조건은 비교적 어려웠다. 부모들은 장기환자이다보니 학생의 아버지는 자식이 학교에 나가 공부하는것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학생가정 부모를 설복하기 위해 최선생은 학교에서 5리나 상거한 학생의 집을 여러차례나 방문하면서 설복교육을 진행하여 학부모들은 결국 학생을 학교에 등교하도록 하는데 동의하였다. 그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초중을 졸업하고중점고중에 진학하게 되였다. 조XX학생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는데 가정부담은 모두 그 학생이 담당하여야 하였다. 그 학생의 가정부담을 경감시켜주기위해 최선생은 학생들을 조직하여 주말이면 그 학생을 도와 터밭도 다루어 주고 집안팍일과 청소도 해주어 그학생이 안심하고 학교에 등교하게 해주었다.
김X학생은 고아원으로부터 학교에 다니다보니 어려서부터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에 성격이 조폭하고 다른 학생들과 늘 모순이 생기였다. 그리고 각방면의 활동에서 태도가 소극적이였다. 이런 학생의 전변을 위해 최경선 선생은 경상적으로 개별담화를 하면서 속심을 나누면서 내심한 교육을 진행하면서 그학생의 생활을 보듬어 주었다. 학용품도 사주고 먹을것도 사주면서 정성을 몰부었다. 어느 한차례 학교에서 과외 유람을 가게 되였다. 최선생은 그가 다른 학생들처럼 준비를 하지못할것을 념려하여 아침 일직 시장에 가서 여러가지 맛나는 음식을 사서 장만하여 그 학생에게 주었다. 그리하여 그 학생은 함께가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게 되였다. 그학생은 졸업후로 할머니 곁으로 돌아와 할머니에게 의지하여 어려운 생활을 하는것을 목격한 최선생은 도처에 수소문하여 어느 한 식당에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 생활난을 덜어주기도 하였다.
한X학생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없이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였다. 그런데 영양부족으로 인하여 그런지 피로해 하고 상과 시간이면 집중하지 못하고 정신을 추지 못하엿다. 그런 학생의 모습으 안타깝게 생각한 최선생은 자신의 돈 670원으로 보건품을 사서 그학생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그 학생은 순리롭게 고중입시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고중에 진학하게 되였다.
지X학생도 부모가 리혼하고 어머니가 출국하여 돈벌려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외의 사고를 당하게 되여 부득불 외할머니가 출국해야하였다. 하여 홀로 남게된 학생은 경상적으로 지각하고 등교도 잘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성적이 떨어지고 정서가 저락되였다. 고중입시를 얼마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의 이런 모습은 최선생의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자기 딸애가 얼마지나지 않으면 고중입시 시험을 치게되는 상황에서도 그 학생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한달이 지나니 매일 최선생의 지도를 받은 이학생의 학습성적은 현저한 제고를 가져오게 되였다. 이런 정황을 알게된 한 학부모는 이불짐을 챙겨메고 최선생의 집으로 찾아왔다. 자식에 대한 기대에 감동된 최선생은 2중3중 압력을 느끼면서도 그 학생을 또 받아 들였다.
이리하여 최선생은 고중입시를 앞둔 2명학생을 자기집에 맡아 두고 화식도 잘해주면서 밤시간 지도도 세밀히 해주었다. 졸업반 담임으로 앞뒤로 뛰여 다니면서 온갖 심혈을 다기울였는데 끝내 한 학기가 지나 갔다. 이집에 와 있던 두 학생은 끝내 리상적인 성적으로 고중입시 시험에 합격되였으며 후에는 대학입시에도 좋은 성적으로 입학하였다.
최경선 선생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농촌에서 생활하고 시아버지가 당뇨병으로 오래동안 고생하고있었다. 15년래 그는 늘 돈을 보내 드리고 약을 사서 보내 드렸지만 병세는 도무지 호전되지않았다. 병은 결국 말기에 이르렀다. 담임교사로 출근하랴, 시아버지를 돌보랴 그고생이 막심했지만 그는 종래로 가무일로하여 출근과 사업에 지장 준적이 전혀없었다. 그는 다년가 보수한푼없이 련휴일과 밤시간에 학생들에게 영어과 교수를 수없이 지도해 주었다. 최경선선생은 룡정실험 소학교에서도 영어 교연조 조장책임을 맡았으며 영어과 지도를 잘하여 학생들이 전국영어 경연에서 좋은 성적을 따내였으며 룡정 중학교에서도 영어교연조장과 영어교연조의 당지부서기 책임을 맡고 있다.
최경선교원의 24년간의 교육생애에서 그가 바친 노력은 수많은 성과와 영예를 안아왔다. 그는 시급, 주급, 성급, 국가급 간행물에 수많은 론문을 발표했는데 “현대교육기술을 운용하여 우량한 영어 과당 교수질을 제고하자”는 론문은 국가급 간행물에 발표되였다. 또 교수중에서 국가급 과제 연구도 완수 하였다. 그는2000년도에 시 민족단결 모범으로 표창 받았으며 1992년, 1997년, 1999년, 2003년까지 4차나 시우수교사로 표창 받았으며 1997년 9월에 입당한 그는 2003년, 2005년, 2008년, 2010년 까지 4차나 시우수 당원의 영예를 안아왔다.
새일대를 육성하는 룡정중학이라는 이 성스러운 교정에서 최경선 교사는 촛불정신으로 오늘도 쉬임없이 한 중년녀성의 기개를 떨쳐나가고 있으며,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당의 취지를 명기하고 오늘도 쉬임없이 동분서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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