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 최후의 아내-아말 알 사다

2011-05-08     [편집]본지 기자

[서울=동북아신문]1일 새벽(현지시각)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아보타바드 오사마 빈 라덴의 거처에 미국의 네이비실 대원들이 들이닥쳤다. 대원들은 빈 라덴이 있던 3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고 한 젊은 여성이 자신들에게 달려들자 그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 여성은 얼마 후 빈 라덴이 사살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한때 빈 라덴의 인간 방패로 알려졌던 다섯째 부인 아말 알 사다(Amal al Sadah·29)였다.

5일(현지시각) 미국의 CNN에 따르면 알 사다는 9·11테러 1년 전인 2000년 아프가니스탄에서 43세였던 빈 라덴과 정략 결혼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18세였다. 빈 라덴은 자신 아버의 고향이었던 예멘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예멘 출신 신부감을 찾고 있었다. 알카에다의 간부였던 이스마일(Ismail)은 2008년 예멘 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제자였던 알 사다와 빈 라덴의 결혼을 주선했다”고 했다.

당시 알 사다는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에 심취한 10대 소녀였다. 다른 부인들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을 만큼 젊고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에도 맞았다. 빈 라덴이 태어난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은 같은 아랍어를 쓰기 때문에 말도 통했다.

예멘의 공무원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자였던 아버지는 아랍 풍습에 맞춰 사위로부터 현금 5000달러(약 540만원)를 받고 딸을 시집보내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빈 라덴은 젊은 아내를 맞는 기쁨에 결혼식에서 시를 낭송하고, 자동소총으로 공중사격해 축하하기도 했다고 한다. 알 사다는 빈 라덴이 가장 사랑한 여인으로 알려졌으며 둘 사이에는 3명의 자녀가 있었다. 현장에서 “빈 라덴의 죽음을 목격했다”고 파키스탄 당국에 진술한 12세 소녀 사피아(Safiyah)가 그의 딸로 알려졌다. 빈 라덴은 9·11 테러 직후 태어난 딸의 이름을 유대인 첩자를 죽인 이슬람 성자의 이름을 따 사피아라고 지었다고 한다. “장래에 이슬람의 적들을 무찌를 아이”라는 뜻이다.

네이비실 대원들은 빈 라덴의 마지막 여인이었던 그를 빈 라덴의 시신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미군기지로 옮기려 했지만, 헬기 한 대가 기체 고장으로 이륙하지 못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알 사다는 파키스탄 군 당국에 의해 수도 이슬라마바드 인근의 군 병원에 옮겨졌다.

알 사다는 최근 10년간 빈 라덴과 알카에다의 행적을 꿰뚫는 ‘열쇠’ 같은 존재로 평가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파키스탄에 그를 직접 신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파키스탄으로부터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 라덴은 알 사다 이전에 4명의 부인이 있었으며 20명이 넘는 자식을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아들이 11명이며 딸의 숫자는 확실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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