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술을 사랑하는 이유
[서울=동북아신문]열네살부터 시작한 아버지의 술은 칠십에 가서야 종지부를 찍었다. 술은 아버지일생에서 어머니 다음으로 가는 믿음직한 동반자였다.
1983년 12월 2일, 내내 건강하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와 안해는 부랴부랴 룡정에 가서 아버지를 뵈였다. 어머니는 일주일째 의사의 요구대로 술을 못 마시게 하고 점적주사를 맞혔는데 죽물조차 넘기지 못한다고 한숨을 쉬였다. 주치의사를 찾아 물었더니 큰 병원에 가야 한다면서 도문철로병원으로 이미 전원수속을 해놓았다고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병원에 주원하면 술을 못마시게 할터이니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술 한모금만 마셔보겠다고 지청구를 들이댔다. 어머니는 요구대로 평시에 늘 쓰던 《얼량접시》에 60도 흰술을 담아드렸다. 아버지는 안주도 없이 단꺼번에 굽을 냈다. 죽물도 못 넘긴다던 아버지는 술만은 술술 잘도 넘기였다. 아버지 얼굴에는 반가운 기색이 떠올랐다.
담가에 누워 조양천으로 갈 때까지 아버지는 주위사람들과 이야기도 똑똑히 하였다. 술기운이였을가? 그런데 조양천에서 도문으로 향할 때는 갑자기 달라졌다. 우파모자를 쓰고 쫓겨난후 24년만에 찾아가는 곳이였다
아버지! 아버지! 불러봐도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는 광복후 자기가 친히 수건하고 복구하신 화룡선 려객렬차를 타고 영영
떠나갔다. 떠날 때 일전 한푼 쓰지 않고 약도 특수대우도 다 싫다고 했지만 술술 넘어가는 흰술만 마시고 돌아갔다.
룡정 일송정 산마루에 아버지산이 놓여있다. 27년간, 아버지산은 우리 가문의 《홍색유람지》《애국주의 교양기지》로 되였다.
2010년 4월, 비암산의 묘지들을 옮기라는 《이묘통지》가 날아와 우리는 아버지산을 헤쳤다. 헌데 희한한 광경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아버지 유골 머리쪽 작은 틈으로부터 샘물이 거침없이 새여나와 아래로 술술 흘러내리고있었던것이였다.
산신도 27년간 이 충실한 애주가에게 제일 반가워하는 《술》을 끊지 않고 대접시키고있었다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천지가 만들어낸 신기하고 맑고 깨끗한 대자연의 《흰술》이였다.
아버지와 일생을 동반하고 저승에 가서도 자연과 함께 아버지를 동반한 술, 나는 그래서 술을 사랑하고 또 즐긴다. [길림신문 / 글 용정 태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