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한류의 선도자, ‘리장주’

김범송 흑룡강신문 논설위원

2011-04-01     [편집]본지 기자

 [서울=동북아신문]지난 1990년대 말부터 한국 대기업이 중국의 축구프로팀 스폰서로 등장했고, 한국 프로팀 감독들이 중국 프로리그에 진출하면서 축구한류 붐을 일으켰다. 일찍 중국축구계에 심각한 공한증을 심어준 한국축구의 특유한 스타일과 저력은 슬럼프에 빠진 중국축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 축구한류의 선도자로, 1998년 이후 중국의 여러 프로팀에서 성공한 한국인 이장주 감독을 꼽을 수 있다. 

이장수는 한국축구팬에게 익숙한 이름이지만, 최근 10년간 중국축구 프로팀 감독으로 성공한 ‘리장주(李章洙)’로 더욱 유명하다. 그는 ‘한국인 이장수’를 넘어 중국에서 최장수 선임기간(10년) 외국감독이다. 일찍 충칭(重慶)과 칭다오(靑島)에서 성공하여 축구한류의 대표주자로 명성을 떨친 그는 2007년 베이징 궈안(國安) 감독으로 초빙되었다. 당시 구단 측이 특정선수 선발 기용을 요구해왔지만, 그들의 소극적 훈련태도와 전술수요로 기용하지 않은 것이 구단과의 갈등 원인이었다. 

중국축구계는 외국감독 영입에는 적극적이지만, ‘외국감독 무덤’으로도 유명하다. 1998년부터 중국축구계와 인연을 맺은 이장수 감독은 충칭과 칭다오를 FA컵 정상으로 이끌면서 외국인 최고의 영예인 ‘명예시민’과 2000년 중국축구협회 ‘최우수 감독상’을 획득했다. 특히 지난해 2부리그 광저우 헝다(恒大)팀을 슈퍼리그에 진출시키면서 재도전에 성공했다. 특유의 한국축구의 정수를 중국축구에 접목시키는데 성공했고, 그의 지도력은 중국축구계에서 또 다시 인정받았다. 

이장수 감독의 높은 인기는 그의 도전정신도 한몫하고 있다. 광저우 헝다팀 감독으로 부임된 첫해에 17승6무1패(승점 57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갑급리그(2부)에서 우승했고, 헝다팀은 1년 만에 슈퍼리그로 승격했다. 중국 CCTV 류잰훙(劉建宏) 아나운서는 “2009년 베이징 궈안이 창단 후 처음으로 우승한 데는 ‘리장주’ 감독이 99%를 기여했다. 또한 감독 부임 후 8개월 만에 생소한 헝다팀을 우승시킨 것은 ‘리장주’ 감독의 능력과 리더십이 새롭게 증명된 것이다”고 평가했다.

얼마 전 경남 마산에 전지훈련을 온 헝다팀의 추명 코치 소개로 만난 이장수 감독이 초면부지 필자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던 겸손한 모습에 놀랐었다. 저녁식사 후 중국 티탄저우보 마더씽(馬德興) 기자와 커피를 마시면서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장수 감독과 담소를 나눴다. 이 감독이 전지훈련 중 부모님을 잠깐 찾아뵌 후, ‘서울 집에는 한 번도 안 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축구지도자로서의 프로정신에 감복되었고, 그가 ‘성공한 감독’이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장수 감독에게는 중국 슈퍼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는 주관적·객관적 요인들이 있다. 한국축구의 독특한 훈련과 공격전술, 팀워크로 뭉쳐진 코칭스태프, 구단 측의 대폭적 지지와 절대적 신뢰, 우수한 용병과 대표팀 수준급으로 구성된 주력멤버 등이다. 특히 용병인입에 들인 1억위안이 넘는 구단 투자와 감독의 리더십 및 두터운 선수층을 생각해보면, “슈퍼리그 및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목표로 한다는 광저우 헝다팀의 새로운 도전이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축구무대에서 10년간 활약하면서 성공한 이장수 감독은 한국인의 자랑이며 축구한류의 전파자이다. 현재 축구협회 고위층의 뇌물수수와 승부조작 등 각종 비리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중국축구에게 필요한 것은 ‘리장주’와 같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지도자의 신념’과 치열한 프로정신이다. 한국인 이장수는 중국축구 프로리그에서 성공한 외국감독 ‘리장주’로, 특히 ‘축구한류 선도자’로서 중국축구팬과 한국인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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