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조 온조왕

2011-02-10     송은영 특약기자

 

[서울=동북아신문]온조왕(溫祚王, ? ~28년, 재위 : 기원전 18년 ~ 28년)은 백제의 시조이다. 아버지는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이며, 어머니는 동명성왕이 고구려 건국 후 혼인한 소서노, 비류와는 이부형제(異父兄弟)이다.

주몽이 졸본 땅에 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운후 큰아들 비류와 둘째 아들 온조가 태어났다. 그러던 중,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예씨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유리가 찾아오자 주몽은 유리를 태자로 삼았다. 신변에 위험을 느낀 비류와 온조는 그들을 따르는 많은 백성들과 함께 남으로 내려와 비류는 미추홀(지금의 인천)에 도읍지을 정하고 나라를 세우다 죽고,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지을 정하고 나라의 이름을 ‘십제(十濟)’라 했다. 미추의 백성들을 받아들인 온조는 뒤 따르는 백성이 많았다 하여 ‘백제’라 이름을 고쳤다. 백제라는 이름은 성왕이 남부여로 바꿀 때까지의 국호가 되었다. 기원전 17년 음력 3월 족부(族父: 왕의 7촌 형제) 을음(乙音)을 우보로 삼았다.                    

 기원전 16년부터 기원전 11년사이 말갈이 수차례 공격하였지만 번마다 대패했다. 그 군사력을 바탕으로 기원전 15년에는 동예와 동맹을 맺었다가 기원전 8년에는 동예의 국경에 목책을 세웠는데, 동예가 말갈과 함께 목책을 부수고 백제인 100명을 죽이는 사태가 일어나 백제는 동예와의 관계를 끊고 목책을 세웠다.

7년 음력 2월에는 왕궁의 우물이 넘쳤고 말이 소를 나았는데 머리가 하나고 몸이 2개였다. 온조왕은 그것이 길조라고 생각하여 합병계획에 들어갔고, 9년 음력 2월에는 마한을 기습 공격해 패망시켰고 마한은 원산성 등지에서의 최후의 저항을 끝으로 백제에 병합되었다. 10년 음력 7월에는 대두산성을 쌓았고 그후 탕정성, 고사부리성, 산성을 쌓았고 금현성을 수리했다. 공주 부여로 도읍지를 옮기면서 영토를 넓히는 등 나라를 발전시켜 갔다.

온조왕은 28년 음력 2월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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