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서빙하던 나날들(6)

2011-01-21     [편집]본지 기자

[서울=동북아신문]수기 쓰는 지금, 중국 천진이다. 40여일이 지나도록 겨우 눈 한번 살짝 내린 정도, 먼지 날리는 케케묵은 공기, 물 샐 틈 없이 막히는 도로, 어딜 가나 북적대고 소란스러운 사람들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왔지만, 바로 적응해버린 나다. 십여 년을 살았고 계속해서 살아 나가야 할 곳이므로, 모든 불편함도 당연지사로 여겨질 때까지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귀국해서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서인지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느새 까마득한 옛 추억으로 남는듯하다. 수기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데 기억력이 부실해 앞뒤가 콱콱 막힌다. 행여나 일기장을 펼쳤더니 눈에 안겨오는 글귀가 있다.

“7월 29일, 설악추어탕, 사모님이 개지랄!”허참, 역시 나는 스트레스에 약한 여자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병원에 수없이 드나드는 지금, 별 일 아닌 것에 불같이 화를 냈던 그때가 바보스럽다 해야 할가? 그날 가게 문을 들어서던 사모님이 살갑게 인사하는 나를 향해 고함쳤었다.

“아니, 거기 파출부는 아줌마밖에 없어요? 왜서 맨날 아줌마만 보내는 거야?”

분노와 혐오감이 이글거리는 사모님의 눈을 보면서 너무 황당하고 당황스러워 말이 나가지 않았다. 사모님은 남자처럼 쩍 벌어진 어깨를 들썩거리며 바로 카운터 의자에 깊숙이 앉아버렸고, 그제야 제 정신이 든 나는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 차는 격으로 걱정스런 눈길을 주는 주방언니에게 화를 쏟았다.

“제가 뭐 잘못한 거 있나요? 일 못한 거라도 있나요? 맘에 안 들면 가라고 하면 될거 아니예요? 제가 반나절만 할거니까 오후 반나절은 다른 일당 부르든지 하세요.” 주방언니는 눈짓 코짓 해가며 가만있으라고 난리다. 사모님은 가급적 일일파출부를 부르려 하지 않았고 주방언니가 참다못해 일당비 부담하겠으니 불러달라고 강하게 나오는 바람에 결국은 파출부에 사람을 부탁했다고 한다. 파출부에서는 보냈던 사람을 파견한 것뿐이다. 며칠 전 야간언니가 개인 돈으로 나에게 준 잔업수당 만원도 사모님이 알아버려 언잖아 하시며 청구해 주었다고 하니, 나를 보자 화가 치밀었는지도 모른다. 하긴 여유 있어 보이는 내 얼굴이 이유 없이 사모님 심기를 건드렸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으리라.

문득 마산아구찜집에 갔을 때 가게 벽에 붙여놓았던 고원 최치원의 시가 떠오른다. 야무지게 산들 뾰족할거 없고 덤덤하게 살아도 밑질거 없다. 속을 줄도 알고, 질 줄도 알아라.

덤덤하게 살고 당할 줄도 알아라. 좋은 말이다. 약간의 억울함도 견디지 못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며 살기에는 건강에 너무 큰 무리가 간다. 자신이 만든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병들어 버린다. 스트레스는 모든 병의 근원이라 했다. 사모님이 개지랄, 개지랄이 뭐냐? 그 사모님만 생각하면 만정 떨어진다고 치를 떨며 잔뜩 떠벌였던 나다. 스트레스에 약한 종자~

스트레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래도 일 할바에는 장사 잘되는 집 가서 화끈하게 몸 풀고 당당하게 돈 받는 것이 스트레스는 적게 받는다. 다행인 것은 그 후 내가 다녔던 식당은 바지가랑이에서 비파소리 나도록 뛰어다녀야 했던 곳이 많았다.

그 중 한곳으로 두 달 동안 고정일당으로 일했던 갈비집이 있다. 철판위에서 자글자글하게 구워지던 돼지갈비, 소스에 묻혀 상추나 깻잎에 싸서 먹으면~~ 생각만으로 군침이 꼴깍! 월요일, 화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임이 있었고, 감 내놔라 떡 내놔라 하는 할머니들 성화가 빗발친다. 젓가락으로 반찬 그릇 툭툭 치면서 “이게 뭐야? 이깟짓거 누구 코에 붙이라는거야?”하면서 화를 내신다. 더 달라고 말씀 곱게 하시면 누가 안 주나? 항상 저런 식으로 화를 내야만 자기 것으로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듯하다. 하긴 주방에서도 만만치는 않다.

“아니, 저 할머니들은 호박 벌써 몇 번째 달라는거야? 이번이 마지막이라 해. 많이 먹으면 똥꼬 막힌다 그래.”

“갈비 2인분 달랑 시켜놓고 꽃게만 자꾸 달라카면 어떻해? 안되. 못준다 그래.”

이럴 땐 홀서빙이 진퇴양난이다. 들이박고 치면서 유연하게 풀어나가는 요령이 없는 나는, 고참언니에게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에이. 그 잘난거 푹푹 주지 그래. 자기 집 것도 아니면서 뭘 아끼고 그래? 건데 언니 얼굴 오늘 좋아 보인다. 먼 좋은 일이라도 있어?” 나보다 8살 위인 고참언니,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나에게 있어서 당당하고 시원시원하고 직설적인 언니가 매력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그러나 어느 하루는 그런 언니 때문에 내가 가슴을 쓸어내린 적 있다. 점심전쟁 치르고, 휴식 취할 수 있는 오후 서너시쯤, 그날따라 우리 모두 방석을 깔고 누워 단잠이 들었는데 손님 한팀이 애들까지 주렁주렁 달고 시끌벅적대며 들이 닥쳤다. 후닥닥 일어서서 머리카락 가다듬으며 어서 오세요 소리치고 있는데 고참언니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엉거주춤 일어나서 잔뜩 짜증 난 눈길로 손님들을 째려보면서 그 표정을 너무 오래~ 너무 오래 가차 없이 표현하고 있어서 놀란 내가 헛기침을 해댔다. "언니, 언니, 일곱분이래요." 어디 그뿐인가, 설거지 언니가 장치 아저씨를 줄곧 장씨 아저씨로 알고 있다고 조롱을 아끼지 않는다. 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이 어쩌면 숯불장치라는 단어도 모르는가? 아무리 회사만 다녔다 해도 그 나이에 너무 하지 않는가? 똥기저귀 놓고 가는 엄마들에게는 가게 문 나서기 전에 바로 찔러버린다. "손님, 저기 저거 잊고 안 가져가시는거 아니예요?"

직설적인 성격도 도가 넘어 주변을 피곤하게 할 때 많지만 그래도 손님들을 화끈하게 모시는 데는 고참언니 따를 자 없는 것 같다. 꽃등심이나 소모듬구이가 나갈 때는 손님상을 떠나지 않고 서비스 들어간다. 매상 올려주는 거니까 비싼 고기 태우면 안 되는 거야. 물론 팁 잘 나온다. 팁 잘 받는 것도 재간이다. 손님이 팁 줄 기미라도 보이면 나는 도망쳐버린다. 돈 욕심 없어서? 아니다. 맹세코^^. 갖고 싶다. 내 새끼 사탕 한 알이라도 더 사줄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생각대로 잘 안 된다. 팁 문화에 익숙치 않고 거부감이 있다. 수치심으로까지 생각 될 때가 있다. 팁 주려던 손님들은 내 같은 여자를 재수 없게 생각한다고 한다. 팁에 관한 에피소드만으로도 수기 하나 쯤은 나올 거 같다.

어마어마하게 큰 보신탕집, 복날에 무거운 쟁반 들고 춤추듯 계단을 뛰어 오르며 산위 별관에까지 한 숨에 달리던 언니들, 그리고 야외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민물장어농원에서 손님들에게 장어 구워주고 술 얻어먹던 언니들, 하루에 나오는 팁이 일당비보다 더 많다고 하니 해볼 만도 하겠다. 그 장어농원에서는 사모님에게 꾸지람도 들었었다. 손님상에 붙어서 장어도 구워드리며 웃는 서비스를 못한다고 말이다. 제 생긴 꼴이 이렇게 되어 처먹은걸 어떻게 해요? 서비스업에 적성이 맞지 않는 줄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답니다. 손님 버글버글한 밥집에서 정신 나간 여자처럼 올리뛰고 내리뛰면서 쟁반이나 나르고 산더미처럼 쌓인 컵이나 씻고 하는 일이 그나마 나에게는 좀 맞을가?

한정식집에 갔던 그날, 바로 적성이란 문제를 생각하며 실소한 적 있다. 예쁜 유니폼 입고 리어카 밀면서 엉치 하느작거리며 사뿐사뿐 걸어야 하는 고급 음식점이다. 홀 매니저도 대학 졸업생이라고 한다. 청바지 입고 갔다가 홀언니에게 말 들었다. 일 다닐 때는 정장 바지 입고 다녀야지 청바지가 뭐야? 빌려 입은 바지가 자꾸 흘려내려 추켜올리며 일하느라 신경이 잔뜩 예민해 있는데 상 치우는 동작도 옛날 양반집 규수 같은 우아한 동작을 요구하니 "빨리빨리"하던 곳에서 일하던 내가 못해 먹을 곳이라고 머리가 자꾸만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식당 서비스업이 적성에 맞지는 않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 취업허용 범위 내 업종중 식당 일을 해보아야 할 필요성을 많이 느끼는 나다. 적지 않은 돈 벌면서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일터다. 가장 기본적인 화장실 청소는 갈비집 고참언니에게서 확실하게 배웠다. 청소 도구만 잘 구비되어 있다면 화장실 청소도 즐기면서 거뿐히 할 수 있다. 가장 빨리 식구들로부터 호감을 얻고 마음 편하게 일하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꺼려하는 일을 주동적으로 담당하면 된다는 것이 나의 철칙이다.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고 나서면 주변의 눈길이 틀려지는 건 당연하고, 몸이 좀 힘들지만 그 대신 마음은 편안해진다. 갈비집 언니 왈:“얘, 2층, 3층 화장실 청소 난 20분이면 다 할 수 있어. 건데 넌 40분이나 걸리냐?” 핀잔에 가까운 소리지만 눈길에는 사랑이 넘친다.

내가 며칠 할게, 너만 그냥 할 수는 없잖아.

아니, 괜찮아요, 제가 그냥 할게요.

그러나 화장실 청소가 괜찮지 않을 때도 있다. 한달 정도 다녔던 남원추어탕집, 내 인생의 철칙을 내세워 주동적으로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기로 했다.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언니들이 어느 날 부터인가 한 두마디씩 한다. “청소하고 마른 걸레로 다 닦어.” “손님 적으니까 지금 빨리 화장실 청소하고 와.” 뭐야? 날 바보로 알고 있나? 오늘은 언니가 화장실 청소 하세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킨다. 기분이 언잖아 풀풀대며 화장실 청소 끝냈는데 담배 피우고 나가는 여자 손님 왈: “아이고, 락스 냄새야, 아줌마! 화장실 청소 깨끗이 하지 못했네요.” 에씨 그저 콱~ 나가는 뒤통수에 대고 호스로 탁 갈겨 놓을가보다.

참자. 참자. 참는게 어른이랬다. 매일 매일 화장실청소 착실하게 하자. 착하면 복 받는다고 모두들 그러더라. 8시 타임 고참언니가 10시 타임으로 일하던 어느 날, 퇴근 전에 화장실 청소하러 가는 나에게 묻는다.

매일 니가 하냐?

녜. 매일 제가 해요.

아이구. 그런 법 어디 있어? 돌아가면서 해야지. 그것들이 참, 오늘은 내가 할게.

내가 바라는건 그런 말 한마디였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려 가는 것 같다.

아니요. 이왕 하던거 제가 그냥 할게요. 힘들지도 않는걸요.

그런 사람 한사람이라도 족하다. 말 한마디라도 족하다. 역시 이 세상은 그래도 착한 사람 많고, 그래서 살맛 나는 거였나?

어느 언니는 화장실 청소하면서, 역겨워 구역질 하면서 왜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야 하나 하고 눈물 흘리며 울었다는데, 또 어느 언니는 당연한 일인 듯 화장실 청소를 전담하고 있었다. 바로 내가 고정 일당으로 일했던 묵집에서 일요일마다 교회 다니시는 언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언니, 항상 귀 기울여 열심히 들어주는 나에게 어느 날인가 문득 날 충분히 세뇌시켰다고 흥분하시는 바람에 내가 놀랐었다.

아! 묵집~ 함께 일하던 언니들의 삶의 애환이 가장 절실히 느껴지던 곳, 그립다. 그리고 눈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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