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표현예술가 웃음의 빈 자리

—고 중국 조선족 문화거장 표연예술가 리영근선생을 추모하여(발취)

2010-12-29     송은영 특약기자

[서울=동북아신문]새해 벽두을 앞두고 웃음의 왕별을 기다리는 시청자들은 언제면 한번 더 그이가 출연하는 연극소품이나 일인극을 다시 볼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앞 설 것이다. 하지만 전국을 들성케하였고 예술계의 인기를 끌었던 우리의 웃음의 자리는 비였다. 웃음의 왕 별은 다시는 무대나 영상에 새로운 작품 속의 인물형상을 부각할 수 없고 빈 자리만 조용히 남기고 2010년 9월 2일 장춘에서 저 세상 별자리로 옮겨 가셨다.

리영근선생님은 1930년 12월 20일(양력 1월19일) 룡정에에서 부친 리승룡과 어머니 현금선의 아들로 태여나 훈춘에서 첫돐생일을 쉬었다고 자서전에 밝혔다. 그이는 1937년 2월부터 1942년 12월 사이 훈춘현일완전소학교에서 소학시절을 보냈고 1943년 2월부터 1946년 10월 5일까지 훈춘현립중학교에서 중학시절을 보냈다.

중학시절 그는 벌써 자체로 극본을 써서 연출을 보고 직접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그때 그 학교에는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배선생이 그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선생은  스피어극을 학생들에게 맡게 수개하여 연습시켜서 주위의 농촌을 다니며 연극하였기에 그에 대한 소문은 동네방네에서 어린것이 연극을 잘 논다는 칭찬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1946년 11월부터 1947 년 7월 사이에는 훈춘현 보안단문공대의 김홍철선생이 찾아와서 연극을 함께 해보자며 이끌어 주어 집에서 배를 곯지 말고 밥도 준다는데 해보겠다고 따라 나섰다. 이때로부터 리영근선생의 연극인생의 길이 펼쳐진다.

그이의 데뷔작은 연극《혈채》였다. 극중에서 그는 돼지몰이 역을 감당한다. 이 연극이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받은 전문단체 연극 대본이자 연극 전업인생 첫 걸음이었다. 그 후 그는 배우 겸 창작조 조장을 맡고 연극예술인생을 더 높은 차원으로 올리려고 많은 세계명작들을 탐독한다.

그이는 연극《마도의 려명》에서 역을 맡으면서 또 한층 진보한다.
이어 문공대(훈춘연극단)에서는 그에게 문예부 부장직을 주면서 극구 만류하여 계속 연극에 몰두한다.
1951년 11월 29일부터 1956년 1월 29일까지 연변문공단 배우로 극본(삼로인)도 쓰면서 종자배우로 인기배우로 관중들의 사랑을 받는 배우로 성장한다. 당시 연극과 “삼로인” 극이 어찌나 환영을 받았는지 1년에 하향공연이 200여일도 더 되였다고 한다.
그이가 연극전업단체에서 불태웠던 60여년간 참여한 극목만 헤아릴수없이 많다. 그중 주요한 극목들만 살펴보면《혈채》,《춘양전》,《심청전》,《뻐국새는 또 운다》,《장백의 아들》,《초유록》,《네온등 아래에 선 초병》,《털없는 개》등 70여 부이고 단막극으로는《사위감 점고》,《바람》등 20여부이며 “삼노인” 창작작품과 출연된 작품으로는《새로운 장정》, 《며느리 자랑》등 30 여부였고 주요창작, 출연된 소품으로는《심각한 검토서》,《우리 집 문제》,《임시선수 2번》등 20여부이다.

그외 만담《개구리 오락회》,일인극《보고전의 보고》와 같은 작품은 해학적이고도 유머가 넘치는 기량을 보여 주었었다. 이상의 작품들은 모두다 그이가 친히 창작하고 출연한 작품들로서 사회의 공명을 일으킨 작품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첫봄》중 그이가 맡은 배역은 반면 1호 인물 리귀남이다. 그이의 독특한 연기는 지금까지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고있다.

특히 그이가 환갑을 앞두고 참여한 희극《털 없는 개》중의 주인공 성구형상은 조선족 사회는 물론, 전국과 해외에까지 돌풍을 일으켜 큰 센세이 쇼 환락에 빠지게 했다. 이는 연극사의 일대 격변이였으며 60여년 전업연극사의 일대 변혁이었다. 지금도 “성구”라는 극속의 인물을 떠 올리면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1984년으로부터 1988년사이 그이는 중앙희곡학원 조선족 연극학부 표연반 대사 교사를 맡으며 사업하시는 동안 조선말 대사과교학을 위하여 70여만자나 되는 교재를 편집, 집필하여 교학에 사용하셨다.
 
중국 조선족 연극계는 훌륭한 프로정신의 선구자를 잃었고 관중들은 웃음의 왕 별을 잃었다. 하지만 그이가 남긴 사업정신과 인생관은 영원히 후세에 길이길이 남을 것 이다.
고 리영근선생의 지상에서의 웃음의 빈자리는 비였어도 살아 생전에 남긴 유머와 웃음소리는 계속 전해갈것이다.
선생이 가시는 곳에서도 항상 웃음소리 넘치리라 명복을 빌겠습니다. 고 리영근선생께서 가시는 그 어떤 곳도 항상 웃음소리 끝없을것입니다.
선생님의 표연기교는 행복의 웃음소리 펼치여 갑니다.
선생님의 터치워 놓은 폭소의 향은 만고장존 할 겁니다.
선생님의 웃음의 빈 자리에 애절한 침묵이 흐릅니다.
선생님의 웃음의 빈 자리에 비애를 넘어 짙은 향이 날립니다……
고 리영근선생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빕니다!


글: 김학송 (전 연변극단 서기 겸 업무단장, 현재 연변가문단 창작실, 편극, 문학편집, 서류당안실 주임, 행정당지부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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