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와 혁명가의 아내'
박수산의 생활스케치
제목을 이렇게 달고 나니 어딘가 모르게 너무 좌적인 것 같기도 하고 우적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머리를 쥐여 짜도 좋은 제목이 안 떠오른다. 그래서 이글의 제목을 원래 생각하는 데로 "'혁명가'와 '혁명가'의 안해"로 하고 싶다.
지금 독자들은 이해능력이 높아서 자기가 스스로 상상해서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어제 일이다. '중국동포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을 촉구하는 시민행진'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중국동포교회를 방문했다.
중국동포교회의 5층 강당에는 많은 성도들이 모인 가운데서 이선희 목사님이 한창 설교하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이선희 목사님의 말씀이 귀에 속속 들어오겠는데 오늘따라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무엇을 말씀하는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휴대전화기만 만지작 그렸다. (내가 보낸 메시지의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더 알기 쉬운 단어로 풀어서 매시지를 보낼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휴대전화기를 여는 순간이었다.
전화가 왔다. .진동으로 놓았으니 다행이다. 지금 이선희 목사님이 열심히 설교하고 있는데 소리가 나면 얼마나 미안한가?
너무 좋아서 휴대전화기를 열고 받을까 망설이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미안해서 다시 휴대전화기의 버튼을 눌러 통화를 끄고 문자를 보냈다.
"죄송한데요. 문자 주세요."
좀 있으니 휴대전화기가 부르르 떤다.
"누구세요?"
문자가 왔다.
"누군가가 중요 한 것이 아니고요. 중국동포정책이 중요하지 않을까요?"라고 나는 문자를 보냈다.
좀 있으니 휴대전화기가 또 부르르 떤다.
"그런 뜻이 아니고요. 지금 어디십니까?"
"중국동포교회의 5층 강당인데요."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좀 있으니 또 휴대전화기가 부르르 떤다.
"그 곳으로 가자면 어떻게 가죠?"
"구로공단 오거리에서 구로 디지털 역의 방향으로 올라오다 보면 육교가 있습니다. 바로 그 육교 옆에 중국동포교회가 있습니다."라고 나는 문자를 보냈다.
이때였다. 왜서인지 갑자기 이선희 목사님의 말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여러분은 이번 행사에 다 참가해야합니다. 꼭 참가할 거죠?"
그렇게 높고 맑고 깨끗한 말소리가 내 귀로 쏙쏙 들어왔다.
"김해성 목사님과 서경석 목사님, 그리고 중국동포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죽기 내기로 싸워서 제외동포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는지 3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저런 구실을 대가며 아직도 제외동포법을 시행하지 않습니다. 중국동포만 생각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을 생각하고 미래의 강대한 대한민국을 생각해서 중국동포들에게 자유왕래와 자유취업을 하게 해줘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번 행사에 꼭 참가해야합니다. 여러분 꼭 참가 할 거죠?"
나는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나서야 금시 문자 보낸 것이 생각났다.
다시 휴대전화기를 쳐다보았다.
문자가 세 번이나 왔다.
아까 그 사람이 내가 어느 곳에 있는가고 묻는 문자다.
나는 부랴부랴 출구 쪽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틈새에 끼워 5층 강당에서 1층 정문으로 나왔다.
그 사람은 나를 먼저 알라보고 나의 손을 잡았다.
그 사람은 이전에 어느 한 건설현장에서 만나 같이 며칠 일한 적이 있어 안면이 있었다.
나는 너무도 고마워서 다시 그 사람의 손을 꼭 잡았다.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이번 행사에 나는 많은 사람들을 참가시키자고 아는 전화번호를 다 뒤져서 이번 행사에 꼭 동참해 주시라고 문자를 몇 번이나 보내지 않았던가?
그리고 내가 보낸 매시지의 뜻을 더 잘 알아보라고 매세지의 행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을 넣어서 보내려고 얼마나 정성을 쏟았던가?
그런데 기껏 답신이 온다는 것이 누구세요가 아니면 어디에서 축구경기를 하는 가고 물으니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이번 행사에 참가 하겠다고 한 사람이라도 왔으니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우리는 버스정류소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행사에 많은 사람이 모여야 하겠는데요."
내가 말했다
"그렇지요">
그 사람도 나와 동감이었다.
좀 지나 그 사람은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말소리가 낮더니 점점 음성이 격해졌다.
"야, 이번 행사에 꼭 참가해라/ 다 우리 중국동포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너 한 사람이라도 힘을 보태서 우리 중국동포정책을 좋게 하면 얼마나 좋나? 야 빨리 오라/ 오늘 일 안 가고 쉬는 날이 아니냐?".음성이 점점 높아졌다
"야/ 집구석에 처박혀서 술이나 처먹지 말고 빨이 나오라"
그 사람은 몹시 흥분한 것 같다.
내가 미안해서 살며시 쳐다보았다.
그 사람의 얼굴에는 주름이 잔잔히 흘렀다.
금시의 흥분으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버스가 왔다.
버스에 올랐다.
그 사람은 사람들이 내리는 문 쪽에 않고 나는 좀 떨어져서 그 사람과 대각선 쪽으로 않았다.
그 사람의 뒤모습이 훤히 보였다.
내 눈에는 비록 그 사람의 덩치는 작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도 웅장하고 름름헤 보였다.
그 사람은 또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내서 전화를 했다.
나는 그 사람과 사이가 좀 떨어져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안 . 들린다.
오늘따라 버스에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달리는 버스에 않아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다.
(만약 이 버스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이번 행사에 참가시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엉뚱한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버스는 한 역에서 멈추어 섰다.
그 사람은 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소리가 좀 컸다.
"이번 차에 빨리 올라 타"
그 사람의 큰소리에 나는 놀라 사람들이 올라오는 문 쪽으로 보았다.
한 사십 대 중반의 여인이 올라왔다.
그 여인은 버스에 올라와서 그 사람의 곁으로 다가와 그 사람과 뭐라고 이야기를 한다.
버스는 계속 달였다.
우리는 버스가 구민희관앞에 도착하자 버스에서 내렸다.
그 사람은 내게 그 여인을 자기 안해라고 소개하였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구십 도로 허리 굽혀서 인사를 하였다.
행사장으로 가는 길에는 안내원들이 뜨겁게 우리를 맞아주고 있었고 길가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모든 사람들이 행사장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행사장에 도착해서 행사장 중간에 서있었다.
나는 그 여인에게 또다시 고맙다고 인사했다.
"사모님 잘 오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남편을 할끗 쳐다보고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원래 창피해서 안 올려 했는데 신랑이 자꾸만 오라해서.."
그 여인은 말로는 그렇게 했지만 실지로는 오기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그 여인은 또 말을 이었다.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이 많이 모였네요."
집사람이 웃으면서 자기를 쳐다보자
그 사람은 뽐내듯이 안해의 손을 잡고 흥이 나서 말했다.
"봐라, 내가 집에서 말을 하지 않았나 이번에는 사람들이 많은 모인다고."
그 녀인은 행사장을 둘러보면서 말을 했다.
"이번에 정책이 더 좋아졌으면 얼마나 좋은가."
행사장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을 이루었다.
주석 대의 정면에는 '제외동포법에 규정한 자유왕래, 자유체류,- 자유취업을 보장하라.'라는 큼직한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주최 측인 서울조선교회와 중국동포교회의 서경석목사와 김해성목사는 손님들을 맞아들이느라고 바삐 서두르고 있었다.
행사에 참가하는 국회의원과 손님들은 속속 주석단에 올라가고 있었다.
30여 명의 기자들은 연방 카메라의 샤트를 누르면서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구민회관의 사방 길목에서는 사람들이 물밀듯 속속 들러오고 있었다.
삽시간에 행사장에는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다.
이제 곧 행사가 시작 될 것이다
나는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소원이 곧 이루어 질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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