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서빙하던 나날들(4)
전향미 수기
[서울=동북아신문]식당 일일 파출부, 나에게 생소한 체험이여서 불안하고 걱정스럽지만,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는 가슴 뿌듯한 즐거움이 따랐다.
그 즐거움을 남편이란 남자와 공유하려 했더니 그렇게 화를 낼 줄 몰랐다.
떠돌이처럼 떠돌아다니면 돈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계획한 한국취업 3년 생활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이제는 남편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거 같다. 3년 동안 빈틈없는 적금계획을 남편이 철저하게 밀고 나갔으니, 나는 돈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불평을 해대면서도 그럭저럭 호흡을 잘 맞춰왔다.
삶의 보람을 모르는 냉혈동물이라고 맹비난했던 남편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까지, 일일 파출부라는 힘든 체험 중,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얻은 값진 소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돈은 벌만치 벌었으면 됬고, 이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더 소중하고, 값진 것들이 있지 않는가! 입에 침방울 묻혀가며 열변을 토하려 하면, 두말도 못하게 잘라버리는 남편,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악착스레 돈을 벌어야 하는 위기의식을 질식할 정도로 불어 넣어주며, 계획된 3년 동안 힘이 닿는 만큼 최대한의 부를 축적하려 노력했던 남편이다.
돈에만 집착한다고 남편을 비하했던 그 당시, 화를 내는 남편 앞에서 마음은 그만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식당 월급쟁이 일을 그만둔 이튿날, 파출부 파견업체에 회원가입비 3만원 내고 등록했다.
"한달에 사나흘 정도만 쉬고 계속 일 나가야 되요."
일거리 안 줄가봐 걱정이다. 그러면 남편에게 뒤지게 욕먹고 다시 월급쟁이로 들어가야 한다.
파출부 소장님은 예순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함과 원숙함이 묻어나는 인자한 얼굴이지만 안경너머로 보이는 두 눈에서 영악함도 읽어볼 수 있었다.
"언니, 일당 다니려면 힘들거예요. 월급쟁이들이 텃세 부린다 해도 말대꾸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요."
내가 성질 더럽게 생겨 보이는지 꾹 참고 일하라고 간곡히 이르신다.
이튿날, 수요일 아침, 휴대폰과 볼펜, 메모지를 베개머리에 놓고 누워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버스 타고 10시까지 안양에 있는 설악추어탕에 가라고 한다.
식당이 도로변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24시 운영이라 그 시간에도 손님이 두세 테이블 있었는데, 주방 쪽에 대고 인사를 했더니, 주방언니가 힐끔 쳐다보더니, 말 한마디 없이 주방 뒤쪽으로 나있는 문으로 나가버린다.
가게에는 식사하시는 손님 외, 누구도 없고, 옷은 어디서 갈아입어야 되는지도 몰라 그런대로 벽에 걸려있는 식사 차림표를 보면서 가게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주방언니가 나간 문 쪽에 작은 개 한 마리가 비실거리며 왔다 갔다 하고 있다가 나하고 눈길이 마주쳤다.
"안녕, 개야."
멍멍이도 아니고, 강아지라 불러도 적절하지 않을 듯, 나이 짐작을 할 수 없을 앙증맞아 보이는 개였다. 멍청해 보이기도 했다.
한참 지나서, 주방언니가 앞치마 하나를 들고 쑥 들어오더니
"한참 찾았어. 깨끗한거로, 화장실 가서 옷 갈아입어요."했다.
옷 갈아입고, 상부터 치우려 하니, 화장실 청소부터 하란다.
그런데 화장실 청소도구가 너무 부실하다. 이곳저곳에서 찾아내어 내 손에 쥐어주면서 청소하라는데, 락스 칠을 한참 하다나니 고무장갑이 새는 듯 손이 눅눅하게 젖어든다. 물청소는 호스 길이가 짧아 남자화장실까지 물길이 가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호스입구 한쪽을 막아 물줄기를 세게 해보았으나 역시 역 부족이였다.
이런 집이 장사나 잘 되겠나? ㅉㅉ 혀를 차며 투덜대면서 그럭저럭 청소를 마쳤다.
점심시간이 되어오는데도, 꾀 큰 가게에 손님들이 시원찮다.
손님이 적어 주방언니가 혼자 홀과 주방 두루치기를 하는데, 점심에는 사모님이 잠깐 나와 도와주신다고 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바로 그때 남자처럼 딱 벌어진 어깨, 탄탄한 체격의 사모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사하는데 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뭐야? 여기 사람들은 인사성이 너무 없구나. 이래구서야 장사나 되것나? ㅉㅉ 손님이 너무 적다. 혼자 두루치기 해도 땀 좀 뺄 정도로 뛰어다니면 충분할거 같다. 그러면 일당은 왜 불렀을가? 돈이 좀 남아도나보지.
주방언니는 왔다 갔다 하며 쉴 새 없이 혼잣말을 해대고 웃기도 했다. 문득 가게 분위기가 저런 정신 이상한 여자도 쓰겠다 싶어 눈여겨보니, 가느다란 이어폰인지 하는 것을 귀에 걸고,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장편연설을 하고 있었다.
단골 인듯한 남자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어슬렁어슬렁 주방 쪽으로 오시더니, "송이야, 뿅이야" 하면서 다정하게 개를 부르니 개가 꼬리를 흔들어대며 좋아 난리다. 주방언니도 연설을 마치고 합세하여 송이야 나비야 사랑스런 눈길로 개와 노닥댄다. 카운터에 계시던 사모님도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서둘러 주방 쪽으로 오신다. 개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내 눈에는 틀림없이 칠칠맞지 못한 개로 보일 뿐이다.
어이구야, 손님들에게도 별 표정 없는 분들이, 묶어놓은 개에게는 살갑기 그지없구려~
어서 오세요,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생태찌개집에서 잘 훈련받은 씩씩하고 명랑한 내 목소리뿐이다.
카운터에서는 손님이 내미는 돈만 쳐다보지 말고, 손님과 눈을 맞추면서 밝고 친절하게 웃으라고 한다. 계산마치고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는 기본인사다. 그런데 카운터도 이상할 정도로 너무 조용하다. 돈 내고, 돈 받고, 돈 낸 손님은 신발 신고 가면 그뿐이다.
화끈하게 개를 사랑하듯이, 가게 분위기를 살짝 바꾼다면 매상이 조금이라도 더 오르지 않을가?
손님이 적으니 눈치가 보여 하루 종일 구석구석 청소를 했다. 때 자국이 알른거리는 테이블과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코팅된 메뉴판을 깨끗이 닦고, 들깨가루와 잰피가루를 담아놓은 종지도 빛이 나게 행주질 했다. 에어컨, 선풍기까지 닦고 먼지 앉은 화초 잎을 닦으니, 주방언니가 웃으며 맥주 들고 오신다.
맥주 묻혀 닦으면 반들반들 윤이 나게 잘 닦인다고 한다.
신발장, 창문유리까지 다 닦고, 할 일없어 밖에 있는 화초 잎까지 닦으려 하니, 들어와 쉬라고 난리를 한다.
지내고 보면 친절하고 다정한 언니다. 웃으며 조곤조곤 말씀도 잘하신다.
여름이라 손님이 적어 혼자서 두루치기 해도 괜찮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젠 힘들어 못하겠다야, 사모님이 아무리 잠간 돕는다 해도 우리가 하는 일 절반도 못하시지.
우리 밥 먹자. 너 순대국 먹을래? 추어탕 먹을래?
추어탕에 국수와 부추를 넣고 잘게 썬 청양고추 듬뿍 넣어 얼큰하게 잘 먹었다.
아무래도 개천에서 잡아온 미꾸라지로 엄마가 시래기랑 넣고 끓여주던 얼얼한 매운맛의 추어탕과는 비할 바 못된다.
저녁 9시가 되자 주간언니가 퇴근하고 야근언니가 오셨다. 예순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였다.
10시가 되어 내가 퇴근할 때 되었는데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 젊은 남녀들이 대여섯팀 우르르 들어왔다. 야간학원이 끝나 허기진 배를 달래는 손님들 같았다.
추어탕, 순대국 뿐만아니라 수육, 곱창볶음, 돈까스, 통추어튀김, 여러 주문이 쏟아졌다.
야간언니는 갑자기 당황해 하셨다. 혼자 주방과 홀을 헐레벌떡 뛰어다니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너 11시까지 해 줄 수 없겠니? 내가 만원 더 줄게."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일당이라도 퇴근하라고 등을 밀지 않는 이상 칼퇴근 못하는 것인데 돈까지 준다니 못할 것도 없다.
만원은 야간언니가 개인 돈으로 주는 것이니, 입 밖에 내지 말아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
그렇게 저녁 11시까지 일하고 외딴 버스정류소에 혼자 서서 아무리 버스를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는다. 택시는 돈이 아까워 못타고 있는데, 섬뜩한 기분이 드는 시꺼먼 승용차 한 대가 조용히 굴러오더니, 술 취한 듯한 남자는 내려서 내 옆에 서고, 요염해 보이는 여자는 천천히 산보하는 모습을 보이며 내 뒤를 어슬렁거린다. 나는 바짝 긴장하다가, 마침 달려오는 빈 택시 앞에 용수철 튀듯 뛰쳐나갔다.
집까지 무사히 오고 나니 맥이 탁 풀린다.
식당 파출부 첫날, 연장근무까지 해서 7만원 받았다. 여기서 오천원은 식당에서 파출부에 내는 것이니 훗날 내가 모아서 전달하면 되고 천원은 호출비로 빼면 된다. 실제소득이 6만 4천원 되는 셈이다.
물론 그 당시 가격이고, 현재는 또 틀리다. 일급제 일당이 올랐다.
별 것은 없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분위기,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하면서 몸이 고달파지는 것 같다. 그러나 내 돈 벌면서 새로운 요리를 접해볼 수 있어 좋다.
내일도 아침부터 길 찾아다니고, 또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고 적응할 것을 생각하면, 설레임반 두려움반이다.
오늘은 추어탕, 내일은 어디로 가게 될가?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