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미 수기]홀서빙하던 나날들(2)
전철역에서 내려, 박카스 한 병 사먹고 가게 문 들어서면, 항상 9시 42분에서 45분 사이, 나는 안녕하세요 크게 외치며 가게 문을 떼고 들어선다. 목소리가 너무 낮다고 해서 소리 지르는 것이다.
향미씨. 어깨 펴고 배에 힘을 딱 주고, 요렇게~ 씩씩하고 당당하게 외쳐봐요. 이렇게 연속 며칠 날 교육시켰다. 사모님의 여동생이 운영하는 본점에서 두주일 훈련을 받고 새로 오픈한 이 가게에 오게 된 것이다. 본점에는 교포도 넷이나 있었는데, 남, 여 서빙을 물론하고 모두 목소리가 활기 넘치고 씩씩하다.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사모님 목소리도 너무 시원시원하고 걸걸해서 차분하고 조용한 내 성격이 먹히지 않는 곳이다.
손님들에게 생태 뼈를 발라주면서, 혹은 수제비 뜯어주면서, 맛있어요? 날씨 꾀 덥죠? 하는 식으로 친근하게 접근하고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고 리드해야 한다는 것이 사모님의 교육이다. 그러니 맛있게 드세요 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내가 그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언니는 어쩌면 그렇게 말하기 싫어해요? 집에서 신랑과도 말을 그렇게 안해요?"
"내 와이프도 지하고 성격이 비슷해서, 식당일에는 맞지 않고 회사일밖에 못한단 말이오."
그런 말을 들을수록 입에 자물쇠를 채운 듯 점점 더 말하기 싫어졌고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바보 같았다. 난 확실히 서비스업에는 적성이 맞지 않아. 은근슬쩍 고민하는데 남편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활짝 핀다.
"니가 필요한 사람인지는 사장이 결정해. 장사 잘된다며? 직원 보는 안목도 있으시겠다."
그런가? 그렇게 며칠 교육훈련을 받고, 나는 지금 출근하고 있는 인덕원 가게로 배치되어 혼자 홀을 맡아보게 된 것이다.
서빙에 대한 사모님의 요구에 맞춰, 얌전하던 내가 이제는 목소리도 커지고, 당당해지고 웬만한 덜렁이는 다 된 듯 하다.
그래서 아침마다 안녕하세요 크게 외치며 가게 문을 떼고 들어선다. 홀서빙의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큰 보온밥통과 커피자판기 전원을 켜고, 창문을 활짝 열고, 방석들을 훌훌 걷어 테이블위에 놓는다. 손님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청소는 빨리 해야 된다. 땀이 후줄근해오도록 올리 뛴다. 홀은 빗자루로 쓸고 밀걸레로 깨끗이 닦고, 가게 앞 담배꽁초도 줏는다.
화장실 청소 할때 손님이 오시면 정말 난감하다. 사장님 눈앞에서 장화 신고 위생장갑 탁탁 털어 끼면서 청소 들어간다고 요란스레 준비동작 알렸는데도, 손님이 오셨다고 "향미씨, 향미씨" 급하게 부르신다. 부리나케 마무리 짓고 나와 보니, 손님 두 분이 오셨다. 물병 드리고 주문만 받아놓으면 되는데, 잘하시다가도 오늘은 왜 또 애들처럼 저러시는 거람? 속으로 씩씩거리며 주문 받고 반찬 내드리고, 엉겁결에 밑을 내려다보니, 어마나! 바지가 허벅지까지 울긋불긋 하지 않겠는가? 화장실 청소 급하게 마무리 하느라 락스 물이 가득 튄 것이다. 날이 꾸물꾸물해 화장실 악취가 나는 듯해서 락스를 평소보다 좀 많이 사용했는데, 어설프게 하다나니, 이 바지 꼴이 된 것이다.
언니들은 칠부바지, 오부바지를 만들면 된다고 한다. 주방에서는 아무리 급해도 락스 물이 튀도록 일하냐고 웃음이 가득했다.
"일할 줄 몰라서 그래요. 개뿔도 몰라요"하고 멋쩍게 웃으니, 딱해보였는지, 한평생 홀서빙 할 수는 없고, 요리 배워서, 찬모나 주방장 하면 돈도 많고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해준다. 또 다른 언니는 내가 홀서빙 하면서 한국인의 정서를 많이 경험하겠다고 뇌까린바 있는지라, 27일 노대통 국민장에 가면 느끼는 점이 많을거라고 알려준다. 내같은 일반인도 맘대로 참석할 수 있으려냐만 고마운 언니들이다.
본점에 성격 까칠한 홀 언니도 고맙긴 마찬가지다. 교포들 때문에 일자리 뺏긴다는 불만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하루 종일 화난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언니였다. 인사 할 적마다 눈길도 주지 않아서 내가 당황했었다.
공기밥을 퍼는데 "이게 뭐야" 하시면서 밥통에 확 쏟아버린다.
"제가 잘 몰라서...콩나물국밥집에서 뚝배기만 날라봐서. 다른 건 아무것도 몰라요"하면서 무안해했더니, 시범을 보여준다.
주걱으로 밥을 퍼서 이렇게 뒤집어 담지 말고, 요렇게~살짝 넣은 후 주걱을 빼고, 눌러 담지 말고, 윗부분은 이쁘게 살살 고르고, 고를때도 힘주어 누르지는 말고, 뚜껑에는 밥알이 묻지 않도록 하고~
"내가 푼거 봐라."
"맛있어 보이네요."
"그래. 손님이 뚜껑을 열었을 때 맛있어 보여야 하고, 맛있어야 해"
며칠 동안은 내가 푼 밥 일일이 다 검사하신다.
하루는 밥 푸는데 신경을 쓰지 않으시는 듯 해서 검사 의뢰했더니
"이젠 너 혼자 알아서 혀" 웃으시는 모습이 이쁘다. 그놈의 성격만 바꾼다면 주변사람들 덜 피곤하련만.
"넌 다른데서 6개월이나 해봤다면서 이런 것도 모르냐?"
"전 국밥집에서 3개월밖에 안했어요. 하루 종일 뚝배기만 들고 다녔어요. 면접 볼때는 거짓말했죠. 6개월 해봤다고"
내가 왕초보라 했더니 눈길이 나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퇴근시간 다 돼서 상 치울 때는, 냄비와 그릇들만 먼저 빼서 주방에 줘야 해, 그래야 주방도 그릇 설거지 하고 홀과 비슷하게 일을 끝나게 되지.
이것 봐. 냅프킨 채워 넣을때 가로 세로 방향에 주의해야 해.
수저 채울 때도 젓가락과 숟가락 방향이 같아야 해. 이 방향으로 넣으면 더 많이 넣을 수 있지.
뚝배기 나르던 출신에게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간단한 것이지만 배워주던 언니가 고맙다.
그 언니가 몇 달 뒤 사모님과 다투다가 잘렸다고 한다.
애 둘 뒷바라지 하고, 이혼한 남편까지 돈 챙겨줘야 한다는 언니가 일자리까지 잃었으니 안쓰럽기만 하다.
암울한 눈빛으로 창밖을 멍하니 보군 하던 언니, 본점에서 두주일은 그 언니와 함께 손님들과의 전쟁을 치렀다.
손님들이 밀려드는 본점에서는 식구들 아침식사 다 끝나기 전에는 손님을 받지 않지만, 여기는 가게 문 열자마자 들어오시는 손님도 무조건 받는다. 방석을 테이블위에 올려놨다가도 손님이 오시면 그냥 내려놓아야 한다.
첫손님 오기 전에 청소 끝내야 된다는 강박증에 방청소, 홀청소, 화장실 청소까지 정신없이 하고나면 땀이 비오듯 하다.
체력소모가 있어서 그런지 아침밥 한 공기쯤은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봉급협상이 이루어져 다시 출근한 주방장언니는 생태손질을 하면서 모아둔 생태 알로 맛있는 명란젓을 만들어 식탁에 올린다. 식성 좋은 여자는 미욱스럽게 보인다지만, 명란젓만 있으면 공기 밥 두 그릇도 해치운다. 매번 식사 때마다 사장님은 밥을 반 공기나 드시는둥 마는둥 하며, 맛있게 먹는 나에게만 신경 쓰시는 듯하다.
"향미씨. 많이 먹어요. 이것도 먹어봐요. 맛있죠? 이런거 중국에 있어요?"
착하신 사장님 관심에 황송스럽고 고마울 뿐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만 실수를 해버렸다. 그날도 난 미련스레 많이 먹고 있었다.
"향미씨. 이거 많이 먹어요. 중국가면 이런거 못 먹어요."
순간 나는 돼지처럼 많이 먹는 내가 갑자기 누추해지고 창피스러워 볼멘소리로 쏘아붙였다.
"사장님, 중국에 이런거 다 있어요. 중국에서 더 잘 먹어요."
호박잎을 중국에서는 돼지나 먹인다며 비난조로 말하던 교포를 못마땅해 하던 내가 아니였던가. 흠칫 놀라시는 듯 하며 어색하게 웃던 사장님에게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나는 잘 알고있다. 사장님은 관심과 호의였을뿐 이라는 것을~
그렇게 아침식사 끝내면 커피 빼먹을 여유가 없이 바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수저, 내프킨 정리, 손님상에 나가는 다섯 가지 반찬정리, 와사비간장을 테이블에 깔고 숨 좀 돌릴만하면 점심손님들이 들이닥친다. 12시에서 1시반 까지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팽글팽글 돌아야 한다. 사모님의 큰언니가 와서 잠깐 도와주긴 하지만, 기업은행 지점장 부인으로, 귀부인 스타일이라서 별로 큰 도움은 못된다. 손님이 핸드폰으로 통화하면서 여보세요 하는데 "녜" 우렁차게 대답하며 허겁지겁 손님 곁에 뛰어가니, 손님이 먼 일이 있나 싶어 황급히 전화기를 꺼버린다. 간혹 사장님 친구 분도 와서 도와줄 때가 있다. 커다란 체구에 엉거주춤 앉아서 테이블을 치우는 모습은 정말 개그맨도 울고 갈 지경이다. 그 꼴을 한심하다는 듯 지켜보며 사장님은 웃으신다.
"향미씨. 저 새끼 내보다 나이 더 많이 먹어 보이죠? 회사에서 잘나가던 놈인데 지금 저 꼴 됬어요."
생태탕이 손님상에 나가고 벌렁벌렁 끓으면 서빙이 집게를 들고 가서 생태 머리를 탁 비틀어 끊어버리고 목뼈 부위를 집고 살살 흔들다가 쫙 뽑으면 신기하게도 뼈가 통채로 쏙 빠져나온다. 본점에는 현란한 솜씨로 뼈를 잘 바르는 남자서빙이 있어 손님들도 신기해한다. 내가 그 요령을 물었더니 쉽단다. 집게로 목뼈부위를 잡고 후둘후둘 떨다가 쭈욱 잡아 빼면 된단다. 내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떨면 된다? 감을 잡지 못했더니 "得瑟, 窮得瑟"하면 된다고 한다.
생태는 뼈가 잘 빠지는데 동태는 좀 더 오래 끓인 다음 得瑟해야 깔끔하게 뼈가 빠진다.
생태와 동태 말고도 북어, 코다리, 황태, 노가리 등은 이름만 다를 뿐 모두 명태를 칭하는 것이란다. 상태와 크기만 다를 뿐이란다. 식당에서 생태탕, 동태탕, 코다리구이는 메뉴로 나가고, 북어는 육수 끓이는데 넣고, 노가리는 식구들 반찬으로 해먹으니, 내가 생태찌개집에서 명태식구들은 황태만 빼고 다 만나본 것으로 된다.
내가 배우는게 어디 그뿐이랴. 주방장언니는 매일이다시피 반찬 5가지 메뉴를 바꾼다, 무슨 오이피클, 머위대 볶음, 진미채, 매실 짱아치, 콩자반...
요리 못하는 내 눈에는 반찬 이름만으로도 신기하고 행복할 따름이다. 어허, 내가 한국 와서 너무 많이 배워 가는거 아닌가! 이카문 안되는데~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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