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진주 아빠, 아내 곁에 눕는다!
9일 저녁 8시 유해 도착... 김해성 목사 “다문화학교 개교했다면...”
[서울=동북아신문]휴먼다큐 <인간극장>에 출연했던 도담(12), 용연(11), 성연(10) 흑진주 삼남매 아빠의 유해가 먼저 떠나보낸 아내 곁에 눕게 됐다.
8일 부산 태종대에서 투신자살한 흑진주 아빠 황정의(40)씨의 유해가 9일 현지에서 화장된 뒤 이날 저녁 8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사)지구촌사랑나눔 ‘안식의집’에 도착한다. 이곳 에는 아프리카 가나공화국 출신의 아내 로즈몬드 사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원양어선 선원이었던 황씨는 1997년 로즈몬드 사키와 결혼, 그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와 살면서 흑진주 삼남매를 낳았다. 그러나 2008년 4월 24일 아내가 뇌출혈로 갑자기 사망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황씨 아내가 삼남매를 두고 떠났던 길도 순탄치 않았다.
외국인이 사망할 경우 본국 가족의 동의를 거쳐 장례를 치러야 하지만 황씨의 아내는 오래전부터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가나공화국의 동의서 미 발급으로 아내의 주검이 병원 냉동고에 보름 넘게 안치되는 등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대사관 앞 주검 항의시위 등을 거쳐 김해성 목사의 도움으로 장례를 무사히 치렀다.
김해성 목사는 국제다문화학교 개교를 앞두고 발생한 황씨의 자살 소식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개교하면 누구보다 앞서 흑진주 삼남매를 학교 기숙사에 데려와 교육시키면서 아빠의 부담을 덜어줄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흑진주 삼남매처럼 부모와의 사별, 이혼 등 어려운 환경에 처한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국제다문화학교’ 설립을 추진한 가운데 내년 3월 개교를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에 위치한 ‘국제다문화학교’는 애초 9월에 개교할 예정이었으나 내부수리 등의 문제에 의해 내년 초로 개교가 연기됐다.
김해성 목사는 “9월에 다문화학교를 개교해 삼남매를 데려왔다면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프다”면서 “부모 잃고 고아가 된 삼남매를 돌보는 일부터 우선 하겠다”고 말했다.
나의 보물 흑진주 삼남매에게
아내(가나공화국 출신-로즈몬드 사키)가 삼남매를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떠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지난해 4월 22일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진 아내는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엄마의 검은 피부색과 곱슬머리를 빼 닮은 삼남매 도담(11세), 용연(10세), 성연(9세)이를 남기고 말입니다. 막내 성연이는 아직도 엄마를 찾곤 하는데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아이들 돌보랴 먹고 사는데 쫓기랴 정신이 없는 저는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줄 여유조차 없습니다.
큰애 도담이와 둘째 용연이는 큰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성격이 활달하고 친구들과도 잘 사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내가 걱정입니다. 막내를 놀리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애들을 돌볼 형편이 못 되다보니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습니다. 또한 엄마처럼 음식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다보니 아이들의 건강과 체력도 부실해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용돈이라도 넉넉히 주어서 자신들이 사먹고 싶은 것 사 먹도록 해주면 좋을 텐데 워낙 가난하니 그렇게도 해주지도 못합니다.
삼남매를 키우는 일이 참 힘듭니다. 힘들 때마다 ‘이게 내 운명이니 받아들여야 된다’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다짐을 하지만 몸과 마음이 약해질 때는 흔들리는 게 사실입니다. 여하튼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마음을 모질게 먹습니다. 엄마 없는 애들이라고 놀리는 사람들, 피부색이 까맣다고 놀리는 친구들, 집안이 가난하다고 기죽는 아이들…. 도대체 무엇 하나 힘들지 않은 게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 약하게 먹거나 흔들리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아이들을 엄하게 키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엄마 없다고 애들이 놀려도 강하게 견뎌내야 한다. 피부색이 까맣다고 놀려도 견뎌내야 한다. 가난하다고 놀려도 기죽지 말아야 한다. 너희들 지켜줄 사람은 너희들 스스로 밖에 없다! 이렇게 강조하며 자립심을 키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애들이 불쌍하다고, 약해지는 것을 받아들이면 결국엔 서로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더라도 억지로 참으면서 견디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 없는 아이들이 씩씩하면 얼마나 씩씩하겠습니까. 아마도 아빠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애써서 그렇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막내는 아직 어리니까 학교 친구들의 놀림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큰애와 둘째애도 친구와 주변 사람들의 놀림에 상처를 받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아빠가 엄하게 하니까 아니면 아빠가 속상해 할까봐 저희들 스스로 참아내는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남겨주고 간 것은 사랑과 피부색인데, 계속 받지도 못하는 사랑을 주고 갔으니 마음이 아프고 또한, 엄마가 준 피부색 때문에 놀림과 왕따를 당해야 하니 또 상처를 입고,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엄마 없는 아이들이라고 흉볼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삼남매는 제 인생의 모든 것이고 아주 소중한 보물입니다. 제 희망은 이 보물들이 올바르게 커서 남보란 듯이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야 하늘나라로 간 아내도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한국이라는 나라가 제 자식들을 차별하고 따돌려서, 그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입고 병들어서 치유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아내가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가슴 아파하겠습니까.
저는 지금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습니다.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퇴근하는 대로 집으로 달려가 밥을 차려주고, 씻기고, 집안 청소하다 지쳐서 쓰러져 잠듭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삼남매를 깨워 밥 차려주고, 학교를 보내고, 또 일하러갑니다. 생활도 환경도 열악하다보니 정신적 여유가 없고, 그러다보니 엄마를 잃은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줄 여유가 없습니다.
어쨌든 이게 운명이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하지만 혼자서 아이들을 키운다는 게 힘들고 두렵고 걱정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어쨌든 제 자식은 제가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에 처한 우리 삼남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잘 키우려는 부모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무슨 몹쓸 병을 옮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차별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른들이 차별하니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놀리고 왕따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발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을 차별하지 말아주세요.
사랑하는 나의 보물 도담, 용연, 성연에게 아빠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게 없구나. 아빠를 위해 씩씩하게 자라주는 도담와 용연아 고맙다. 어쨌든 우리 힘내기로 하자. 막내 성연이가 친구들에게 놀림 받고 돌아오거든 너희들이 엄마를 대신해서 위로해주고 달래주거라. 훌륭한 사람들은 어려운 일들을 잘 견뎌냈단다. 그러니 도담아, 용연아, 성연아! 우리도 이 어려운 환경을 잘 극복하도록 하자. 아빠도 열심히 일해서 돈도 모으고 좋은 집도 살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우리 꿈과 희망을 잃지 말자. 그리고, 부족한 아빠를 많이 이해해주길 바란다. 아빠는 너희를 정말 사랑한단다. 힘내자, 용기를 갖자,
2009년 5월 11일
흑진주 삼남매의 아빠 ‘황정의’
* 이 편지는 2009년 5월 11일 CBS-라디오 <손숙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가 방송진행 1주년 기념으로 진행한 ‘지구마을, 대한민국의 꿈’이란 제목의 공개방송에서 낭독된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황정의씨가 구슬을 하고 (사)지구촌사랑나눔이 정리를 거쳐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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