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수기공모 장려상] 접목
김애금
접목
우리 연변에는 사과나무를 배나무에 접목하여 재배한 사과배나무가 있다. 연길에서 용정으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창밖을 내다보면 일망무제한 만무과원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야!>>하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 나무에 열리는 과일의 맛이다. 사과의 새콤달콤한 맛과 배의 시원한 맛을 융합시킨 그 맛, 그것은 실로 환상적인 맛이였다. 사과배라고 불리우는 그 과일의 맛이 왜 그렇게 훌률할가?
다름아니라 사과나무를 배나무에 성공적으로 접목시킨 결과가 아닌가!
그런데 나무는 접목하는 과정에 엄청 큰 고통을 겪기에 그 자리에 두툼한 상처자욱이 남는다고 한다.
그런데 혹시 한국생활체험수기 첫머리에 웬 뚱딴지같은 연변사과배이야기를 늘여놓는가고 묻고싶은 이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런 뚱딴지를 들고나오는 이유는 바로 우리 교포들이 한국생활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이 <<접목>>의 도리와 일치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도 <<접목>>의 뼈아픈 고통을 겪어야만이 자기가 목적했던 물질적부를 마련할수 있고 또다른 새로운 인간_더욱 훌륭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것이라는 것, 이는 지난 2년간의 한국생활에서 내가 얻어낸 진리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그 <<접목>>의 아픔을 참고 견뎌냈는가?
내가 지금 근무하고있는 집은 아구찜과 동태찜전문점이다. 지난 2년동안 이집에서 홀써빙으로 일하면서 적지않은 애로사항을 겪었다. 취직하여 얼마안되여 있은 일이다.
남들한테서 한국사람들이 교포라고하면 무작정 깔본다는 말을 들은 나는 어떻게 하든 교포의 티를 안 내려고 애썼다. 헌데 그것은 헛수고였다.
<<두꺼비>>를 달라고해도 멍하니, <<쥐약>>을 달라고해도 멍하니, 또 어떤 손님들은 <<칠성이와 이슬이>>를 달라고하는데 그래도 멍하니 손님을 쳐다만 보고있으니 누가 교포인줄 모르랴. 그 멍청한 모습이 재밌다고 깔깔 웃어대는 손님들이 얄밉기도 했지만 나는 참았다. 어느 한번은 어떤 여자손님이 고사리반찬을 더 달라고 나한테 빈 접시를 내밀기에 주방에다 얘기했더니 늦은 저녁이라 고사리반찬이 다 떨어져없으니 대신 해초라도 갖다드리라고하기에 그것을 갖다주면서 <<고사리가 없대요. 대신 이걸 드세요.>>라고 했더니 그 여자손님이 옆에 앉은 자기 일행한테 한다는 말이 <<저 아줌마가 중국아줌마라 고사리를 모르나봐?>>라고 하는것이였다. 그 순간 나는 혈압이 쫙 오르는감을 느꼈지만 금방 마음을 다잡고참았다.(그래, 참자,애초에 본토를 떠나 이곳에 올때 그 어떤 모욕감이든 참아내려는 각오를 하고 떠난것이니 참자.) 나는 그 손님에게 <<고사리를 모르는 조선민족도 있답니까?>>하고 대들고싶었지만 가까스로 참고 상냥한 말씨로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또 어느 한번은 한 남자손님이 담배를 피우고있기에 <<손님,금연이니 담배를 꺼주실래요?>>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더니 느닷없이 <<아줌마, 아줌마는 어디서 왔어요?>>하고 꽥 소리를 지르는것이였다. 나는 <<금연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어디서 왔느냐가 왜 나옵니까?>>하고 말하고싶었지만 속으로만 생각하고 <<저기요, 우선 담뱃불부터 꺼주실래요?>>하고 상냥하게 말하자 그 손님은 더 군말이 없이 피우던 담뱃불을 꺼버리는것이였다.
더욱 참기 힘들었던 일도 있었다.술에 엄청 취한 상태에서 우리 가게에 와서 또 술을 마시다보니 완전 제정신이 아닌 한 손님이 부인과 동반하여 다른 일행과 함께 술을 다 마시고 계산을 하고 거스름돈 5천원을 나에게 주면서 하는 말이다. <<아줌마, 아줌마 중국에서 왔지? 그 5천원이면 아줌마몸값 되는거지?>> 그말을 들은 나는 참을수 없는 모욕감에 얼굴까지 벌개졌지만 내색은 내지 않았다. 결국 부인한테 돈을 돌려주면서 빨리 모시고가라고 차분히 권하기는 했지만 울화가 치밀어서 그날밤 한잠도 자지 못하였다.
그러나 참고 말을 섞지 않은 것은 후회하지 않았다. 인간답지 못한 행동에는 휘말려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자아위안을 하면서도 모욕감에 설음을 참지 못하고 혼자서 한바탕 통곡을 하였다.
나는 한국티를 내려던 생각을 버리고 아예 당당하게 중국에서 왔다는 것을 밝히는쪽을 택하였다.그리고 쓸데없는 자격지심 때문에 정신적에너지를 소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능란한 일솜씨를 익히는데 정진하였다. 워낙 약삭빠르고 눈썰미가 있고 총명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오던나인지라 두달도 안되여 완전히 써빙일에 능숙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우리 교포들에게 가장 힘든 한고비인 말과 일이 어설퍼서 무시당하는 고비를 넘기게 된 것이다.
<<아줌마는 집이 어디얘요?>>라고 물으면 <<네, 중국이얘요.>>라고 소탈하게 대답하고 기분좋은 얼굴로 몸을 날려가면서 신나게 일하는 모습을 보였더니 교포라고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손님이 거의 없었으며 존경의 눈길을 보내주는 손님, 맞대놓고 칭찬하는 손님,뒤에서 칭찬하는 손님들만 점점 늘어갔다. 어는 한번은 한 여자손님이 자기 남편에게 나를 가리키면서 <<이집은 찜도 맛있지만 저 아줌마가 더 대단해, 글쎄 열여섯개나 되는 테블에 손님이 꽉 차도 혼자서 다 해내지뭐야, 막 날아다녀!>>라고 하자 그의 남편이 <<그럼 이 아줌마가 새야?>>라고 하여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민망한 것은 사모님과 내가 홀에 같이 있으면 대부분 손님들이 나를 주인인줄로 알고 나한테는 <<사장님!.>>이라고 부르면서 사모님한테는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이다. 어느 한 손님은 사모님을 보고<<처음 뵙네요>>라고 하더니 나를 가리키면서 <<저 주인아줌마가 혼자서 힘드니까 직원 한명을 더 뽑았나보네요>>라고 했다면서 사모님은 나를 보고 <<너 이제부터 사장해야겠다.>>하고 농담조로 말했다.
물론 내가 사람들로부터 써빙의 <<달인>>이란 말을 들으면서 주인과 손님들의 애대를 받음으로써 자신감이 생기고 마음의 위안이 되는것만은 사실이지만 마냥 행복한것만은 아니다.
써빙으로서 주방장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많은 일을 어느 정도로 빠르게 어떻게 잘해야 할지를...
하루에 2백만원도 넘게 파는 가게에서 전화받고 계산하고 반찬놓고 써빙하고 거기에 밥까지 볶아주면서 혼자서 다 해내야 하니 그 로동강도가 얼마나 센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하루일을 마치고 퇴근하여 자리에 눕게 되면 온몸 어디든 안 아픈데가 없고 체중이 5키로나 줄다보니 얼굴도 반쪽이고 주름살도 엄청 늘어났고... 그래도 나는 새하루가 시작되면 즐거워죽겠다는듯한 표정으로 일을 시작한다.
<<접목>>의 고통을 이겨내면 달콤한 새 열매가 열리듯이 우리도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견뎌여야만 훌륭한 결실을 거둘수 있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얼마든지 부유해질 수 있는 환경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한국이 얼마나 좋은가?1 게다가 인심도 <<나의 살던 고향>>인심을 방불케하는 포근하고 따뜻한 인심이니 더욱 좋다. 어디 그뿐인가? 여기에 사노라면 기술도 배우고 인생도 배우고 마음도 우주처럼 넓어진다.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 나에게 부를 주는 한국이기에, 아니 ,나를 새 인간으로 거듭나게 해준 한국이기에...
_끝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