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미 수기]홀서빙하던 나날들(1)

2010-09-01     [편집]본지 기자

[서울=동북아신문]퇴근시간이 되어오는데 손님들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꾸준히 들어오신다. 나는 어서 오세요 고함치면서 우산을 정리해 드리고 주문을 받는다. 메인메뉴가 두 가지 밖에 없는데도 서로 멀뚱거리며 주문을 늦게 하시는 손님이 있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행주 삶아 널고, 쓰레기 버리고, 테이블에 있는 소스 병을 걷어서 냉장고에 넣고, 이것저것 정리만 하려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인데, 손님의 입이 벙긋하기만 기다려야 하니, 상통이 벌써부터 험상궂게 찌그러진다. 이런 칙칙한 날에는 집에서 된장국이나 보글보글 끓여 먹을거지, 참 나 원, 스트레스가 꽉 쌓인다.

남들은 주인에게서 야박하다는 말을 듣건말건 칼 퇴근을 잘하건만, 나는 항상 반시간 넘게 늦게 퇴근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되어 있다. 언니들은 내가 착해서 칼 퇴근을 못한다고 그러지만, 천만에! 나는 절대 착한 여자가 아니다. 하루 열 두시간 일하고 반시간 더 수당도 없는 연장근무를 한다고 해서 힘들어 죽는 것도 아닌데, 이왕 할바엔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하겠다고 결심하지만,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할 것 같으면 얼굴이 시퍼렇게 굳어오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인상 팍팍 쓰다가 결국은 후회하면서 퇴근길에 오른다.

간혹 사장님이 "향미씨, 기다려요"하시면서 카운터 돈통을 열 때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내가 뭐 그 돈 5천원 받으려고 반시간 더 일한 것도 아닌데, 사장님의 미안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 정말 못해먹을 짓이구나, 인상 잔뜩 쓰고 돈을 받을 때면 정말 자신이 비참해지는 순간이다.

빨리 퇴근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나는 벌써 정신병자처럼 왔다 갔다 설치고 날아다니고 있다. 손님들에게 반찬 드리고, 찌개가 나오는 동안, 행주 삶고, 컵 씻고, 소주 달라고 부르면 냉장고 문이 닫히기도 전에 몸은 벌써 손님들에게 날아가 있다. 바짓가랑이에서 비파소리 나도록 펄럭이며 달아 다니니 손님들이 체할거다! 분명히 체할거다! 미안하다. 손님들이여.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큰 홀을 저 혼자 뛰는데, 저도 제시간에 퇴근해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단 말입니다!

올리뛰고 내리뛰고 시간이 퍽 지난 듯 하다. 삶아놓은 행주를 빨아서 널어도 되겠다 싶어 행주 삶은 대야를 확 쥐었다. 앗! 뜨거! 왼손 식지와 중지 피부가 무섭게 확 쪼그라들더니 금세 허옇게 변하면서 심하게 아파났다. 사장님이 행주 삶는 대야 옆에서 찌개를 끓이시고 있어서 그 불에 대야 한쪽이 뜨거워 난 것이다. 사장님은 찬물에 씻어봐요, 소주에 담궈봐요 하시더니, 어느새 또 담배 피우시러 밖에 나간다. 참 여유작작한 분이시야, 아무리 일이 바빠도 사장님 눈에는 일이 보이지 않는 듯하다. 아니, 언니들은 사장님이 게을러서 일이 눈에 보여도 하지 않으신단다. 주방에 한사람 더 쓰면 되겠지만 인건비 절약하시느라 사장님이 직접 하시는데, 이왕 하시려면 잘하셔야죠.

나는 화상 입은 손에 신경 쓸 새도 없이 얼굴이 비오는 날씨처럼 찌푸둥해서 상을 와락와락 거두고, 쓰레기 버린다. 일반쓰레기는 모아서 가게 밖 전선대 옆에 놓기만 하면 된다. 지금은 너무 편하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주방언니와 함께 무거운 음식물쓰레기를 큰 대야에 담아 하나둘셋을 외치며 낑낑대면서 30m쯤 떨어져 있는 쓰레기 장소에 가야만 했다. 너무 무거워 몇 발자국 못가고 쉬면서 뭐가 빠지도록 일한다고 아우성 치고 하면, 오토바이에 음식물쓰레기를 실어가는 옆 가게 아저씨가 대신 버려주시기도 한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데도 남편이라는 남자는 중국에 전화할 적마다 "향미는 정말 헐하게 일하오. 일이 쉽소. 걱정마오."하니 내가 미친다.

내가 처음에 다니던 콩나물국밥집에 비하면 이곳은 그야말로 천당이라고, 부모님들이 걱정하실가봐 일이 편하다고 한 것뿐인데, 아예 내가 신선놀음 하는가 한다.

我容易嗎?我!하고 혼자 씨부렁대면서, 아픈 손을 쥐고 가게 문을 나서면서 시계를 보니, 10시 20분, 아휴. 그래도 오늘은 일찍 퇴근한 셈이야. 혼자 흐물흐물 웃으며 전철역으로 종종걸음을 하는데, 언니 하면서 부르는 사람이 있다. 우리 가게에서 일하다가 그만뒀던 주방장님이다. 교포다. 도문에서 온 남자다. 날보고 그냥 언니라고 부른다. 이번에는 한정식집 주방보조로 취직하셨단다. 뭐가 궁금한지 이것저것 가게 상황 묻길래, 화상 입은 손가락을 잔뜩 내보이면서 못해먹겠다고 아우성쳤다. 그는 자기가 잘 그만뒀다고 흐뭇해하시더니, 좋은 자리 있으면 나를 소개하겠다고 하였다. "언니는 150만원 땅땅 받을 수 있소" 한다. 흐흐흐! 내 주제에! 난 식당일에 대해 개뿔도 모르는 여자이고, 잘할 자신도 없다. 또 내가 식당일을 잘해야 하는 필요가 뭐 있는가! 하면서 나는 비오는 거리에 서서 술 취한 여자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댄다. 주방장은 한정식집에서도 자꾸 음식 맛 재대로 못 낸다고 스트레스 주면 마침 시국이 어지러워 전쟁이 당금 날지도 모르니, 보따리 싸메고 중국 들어가야겠다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그 말에 나는 남자들처럼 허허허 크게 웃다가 늦었다고 허둥대면서 전철역을 향해 걷는다.

집에 와서 샤워하고, 빨래하고 자리에 누우니, 12시가 넘는다. 노트북을 배위에 놓고, 이것저것 정보를 뒤적이다가, 빨리 공부해야지. 뭔 공부를 하냐고? 벌써 노곤해진 몸에 스르르 감기는 눈, 비몽사몽간에 깨어나 보니, 새벽 두시다. 노트북이 내동댕이쳐져 있다. 남편이 갑자기 후닥닥 깨더니, 노트북 부셔먹는다고 소 방울만한 눈을 부라린다. "이 샛병쟁이야, 노트북 사줬더니 썩은 돈으로 사줬는가 하재, 빨리 자라!"

욕은 먹었지만 마지막 일과가 남아있다. 매일저녁 자신과의 대화를 무시할 수 없다. 일기장을 열고 환자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처방전을 쓰듯이 볼펜을 휘갈긴다. "힘들다. 앞이 캄캄하다. 웃고 있지만 잠시뿐이다. 찌더운 여름이 오고 있다. 덥다. 마음은 짜증과 고까운 마음에 다시 찌들고 있다. 어떻게 해보아? 가는데로 갈뿐이다. 마음을 갈고 갈지 않으면 안될터인데~ 모르겠다. 자고보자. 내일아침 태양은 역시 떠오르겠지"

이튿날, 태양은 역시나 어김없이 떠올랐고 옥탑방 머리맡으로 눈부신 햇살을 쏟고 있었다.

아! 즐거운 일요일, 남편은 아침부터 이불을 내다걸고 몽둥이로 온 건물이 떠날 듯 두드리기 시작한다. 이름모를 행복이 순식간에 온 몸과 마음에 햇살처럼 부서져내린다. 한국 언니가 말하기를 립스틱 새빨갛게 바르면 딸에게 좋단다. 그래서 립스틱 짙게 바르고, "당신도 치장하니까 볼만하다야?"하는 남편의 말을 뒤로 하고 힘차게 전철로 걸어갔다. 또다시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웬걸, 가게 문이 굳게 잠겨져 있는게 아닌가! 일요일이란 사실을 깜박 했다. 일요일은 사장님과 사모님이 늦잠 자는 날이라, 가게 문 제시간에 열지 않는다는 것을 왜서 이제야 생각 했을가? 이전에는 가게 문앞에 신문을 깔고 앉아 주인들 차량이 오기를 기다린 적도 있고, 또 어느날인가는 가게에 거의 도착했는데 오늘은 가게문을 닫으니 휴식하라는 통보를 받고 풀풀대면서 돌아간 적도 있다.

오늘은 립스틱 짙게 바르고 가게 앞에서 기다리기 싫었다. 내가 뭐 비루먹은 개인가? 주인이 오도록 문 앞에서 기다리게? 나는 금세 기분이 팍 죽어서 가게에서 가까운 놀이터 의자에 가서 앉았다. 오만가지 생각이 뒤통수를 때리기 시작한다. 짜증난 눈을 휘휘 젓다나니까, AC, 어느 놈인가 술 처먹고 가득 토한 것이 바로 지척에 있었다. 나는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부으며 황급히 일어나 무작정 다시 전철역을 향해 걸었다. 내가 왜서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참으로 구질구질하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 모든 것이 남편의 탓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참 속 풀이를 하였다. 오늘은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올 때까지 출근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사장님 늦잠 방해 할가봐 전화 드리지 않았다고 할기다.

그렇게 한시간이나 전철역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사장님 전화를 받고 가게로 갔다. 주방장으로 오신 언니는 돈이 맞지 않는다고 나오지 않고, 전화상으로 사모님과 봉급얘기를 하는 듯하고, 사장님과 사모님도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지 그저 어슬렁 거리시기만 한다. 어수선한 가게에는 나 혼자 열심히 일하지만, 나 역시 마음의 허탈감에 가득 잡혀 울먹울먹한 기분으로 일하고 있다. 저녁이 되자 사모님은 찜질방 간다면서 휑하니 가버린다. 사장님도 심드렁한 표정이 되어 일찌감치 간판 불을 모조리 끄고 현관입구의 등도 꺼버린다. 나는 사장님과 둘만 있는 것이 어색하기도 긴장하기도 해서 이곳저곳 헛손질만 하다가, 퇴근하라는 말 떨어지기 바쁘게 가게문을 나섰다.

전철역으로 향하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은 치킨과 맥주를 사서 같이 먹어야지, 구질구질해진 마음을 잘 풀어야 내일부터 다시 정상 출근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웬걸, 전화기 저쪽에서 술에 잔뜩 젖은 혀꼬부라진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게 아닌가! 형부랑 찜질방에 있으니 오라고 한다. 나는 전화를 팍 끊어버렸다. 전철에서 내려 비실거리며 집으로 걷고 있느라니, 눈물이 줄줄 흐른다. 모든 것이 쓸데없다. 믿고 사는 남편도 내가 가장 필요할때는 없으니 말이다.

노트북을 여니, 온통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관한 소식이다. 동영상을 보면서 또 꺼이꺼이 울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남편이 말짱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집에 오겠다고, 나는 찜질방에서 하루밤 자라, 절대 집에 오지 말라, 나 혼자 있으니 너무 좋다, 나 지금 공부하고 있으니 방해하러 오지 말라고 소리소리 질렀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는데, 남편이 비시시 들어오더니, 등을 켜고 뭔가를 바삭바삭 씹으면서 술을 마신다. 등을 끄라고 소리쳤더니, 등을 끄고 어둠속에서 먹는다. 소새끼 여물 씹나, 먹는 소리에 잠이 깬다고 또 소리 빽 질렀더니, 앉을 자리도 없는 주방에 나간다. 그제야 속이 풀려 푹 잠이 들었는데, 그렇게 울었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 눈이 붓지 않았다. 그래도 먼저 출근하는 남편에게 넌지시 웃어는 줬다. 한국 땅에 와서 믿고 살 사람은 저 남자밖에 없지 않는가! 휴~

지겨운 하루가 또 시작되는가보다. 나는 맥없이 전철역을 향해 가면서, 어느 집 담장너머로 칙칙하게 피여 있는 장미꽃을 보면서 흥! 소리나게 콧방귀를 낀다. 책에서 본 데 의하면 삶에는 뭐 찔레꽃 인생과 장미꽃 인생이 있다더니, 내 인생은 뭐냐? 저 칙칙한 장미꽃이 되기보다 담벽 한구석에 눈부시게 피는 호박꽃이 낫지 않을가? 조롱박꽃도 좋지요, 학교 다닐 때 발음 나쁜 것들이 날 할미라고도 불렀으니 할미꽃인생도 괜찮지 않을가 싶다. 할미야, 향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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