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와 싸우는 "중국 첫 조선족촌"의 이야기
사나운 홍수와의 싸움에서 연변의 여러 민족 형제들은 손에 손잡고 서로 도와주면서 훈훈한 정을 쌓아갔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서는 많은 조선족기층간부들이 홍수대처재해구조 최전방에서 진지를 고수하고있고 피해를 적게 입은 부분적 한족촌민들은 피해를 심하게 입은 조선족가정들에 생활용품을 지원하는 등 여러 민족이 한집안처럼 화목하게 지내는 감동적인 장면들이 잇달아 나타나고있다.
7월 27일부터 28일까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는 사상 보기 드문 특대폭우가 쏟아져 많은 마을들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그중 조선족인구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만보진 홍기촌도 홍수에 잠겨 큰 피해를 입었다.
"중국의 첫 조선족촌"이라 불리우고있는 홍기촌은 86세대가 조선족가정이며 360여명 인구중 90% 이상이 조선족이다. 이 촌은 조선족민속공연으로 명성이 자자하며 장백산기슭의 주요한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2009년의 관광소득은 300만원 이상에 달했다.
홍기촌촌민위원회 주임 함주원은 기자에게 홍수로 80헥타르의 농경지가 거의 전부 물에 잠기고 대부분은 곡식 한알도 거둘수 없게 되였으며 400여마리의 꽃사슴과 80여마리의 소가 익사했다고 말했다.
홍기촌피해현장에서 기자는 지세가 낮은 곳에 있던 일부 가옥들이 완전히 물에 밀려간 흔적을 볼수 있었다. 현재 리재민들은 모두 현지정부에 의해 적절히 안치되였다.
연변의 특색치부의 길은 로무송출이다. 홍기촌도 례외가 아니다. 온 마을의 젊은이 절반이상은 외국으로 로무에 나갔고 집에는 녀성들과 로인 그리고 아이들만 남아있다.
홍수가 발생하기전 홍기촌이 소재하고있는 만보진정부에서 제때에 홍수경보를 발령하고 촌민들을 재빨리 대피시켰기에 비록 백년일우의 홍수가 휩쓸고갔지만 현지에서는 희생자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재해발생후 홍기촌과 이웃하고있는 만보촌의 40여호 한족촌민들은 너도나도 홍기촌을 도와주는데 팔을 걷고나섰다. 만보촌촌민위원회 주임 왕건빈은 "홍기촌에는 청장년들이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우리들이 나서서 도와줘야죠"라고 말했다.
홍수에 잠긴데다가 외부로 통하는 교량마저 홍수에 밀려나가는통에 7월 27일부터 30일까지 만보진은 줄곧 "외딴 섬"으로 되여있었다. 7월 31일 해방군이 진으로 통하는 "생명선"을 뚫어서야 대량의 재해구조물자들이 륙속 들어갈수 있게 되였다.
홍수에 갇혀있는 동안 왕건빈은 만보촌의 촌민들을 조직하여 만두를 찌고 쌀밥을 지어 홍기촌사람들에게 보내주었다. 만보촌양로원에서는 또 홍기촌의 10여명 조선족로인을 양로원으로 모셔왔다. 이외 이웃에 있는 다른 한족촌들에서도 자발적으로 홍기촌사람들을 도와 재산을 구해내고 뜨락또르로 실어다 자기들 집에 보관해두기도 했다.
홍기촌에서 기자는 이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각지로부터 온 자원봉사자들이 륙속 홍기촌에 들어서고 있었는데 이들중에는 공무원,학생이 있는가 하면 자영업자들도 있었다. 촌민 허순옥네집에서는 연길시에서 온 대학생 두명이 열심히 훼손된 지붕을 정리하고있었다. 이들은 이름을 밝히기를 무척 꺼려했다. 기자의 취재를 받은 이들은 "우리는 조선족이 아니예요, 이전에 이곳으로 관광온적이 있어요. 이곳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방학에 별로 할일도 없고 해서 조금이나마 도와주려고 왔을뿐이예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신화사/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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