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새와 할미새
신길우 수필 189
온 세상이 푸르른 늦봄에 마을 뒷산으로 놀러갔다가 멧새를 만났다. 멧새는 둥지에 앉아서 알을 품고 있다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푸르륵 날아가 버렸다.
둥지 안에는 갓 태어난 어린 새끼새 두 마리와 새알 세 개가 들어있었다. 알 하나는 금이 가 있었다. 그 알은 틈새를 더 벌려 나가더니 새끼가 껍질을 제치고 나왔다. 새끼새는 넘어지고 주저앉기를 몇 번 하더니 점차 몸을 가누어 갔다.
구경만 하던 나는 그제서야 날아간 어미새를 생각하고 좀 떨어진 곳으로 가서 기다렸다.
멧새는 한참 만에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눈도 뜨지 못한 새끼새들은 어떻게 제 어미를 알아보았는지 입을 쫘악 쫙 벌린다. 어미새는 금방 새끼가 나온 알 껍질을 물고 날아간다. 멧새는 곧 돌아와서 잡아온 작은 애벌레를 새끼 한 마리에게 먹인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어미새는 뒤로 돌아서서 막 누는 새끼의 변을 물고 날아간다.
다시 돌아온 멧새에게 내가 물어보았다.
“알 껍질은 무엇 하러 갖다 버리니? 그냥 둥지 밖으로 내버리지. 더구나 변까지.”
그러자, 멧새가 대답하였다.
“지금은 번식기라 모두가 냄새에는 아주 민감한 땝니다. 알 자위나 변 냄새를 맡고 누가 잡아먹으러 오면 어쩌려고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
“하지만, 금방 누가 오는 것은 아니잖니? 알들이 다 부화하면 떠나면 되지.”
그러자 멧새가 어이없어 하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모르는 소리. 우리 새끼들은 깃털이 나고 날개로 날려면 며칠이 걸리는데 어떻게 내버려둬요? 매사가 유비무환이고, 지금은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야 합니다.”
나는 그 말에 더 이상 말을 못했다. 대부분의 짐승들도 새끼가 태어나면 바로 몸을 핥아주고 태까지 먹던 것이 생각났다. 출생의 독특한 냄새를 없애려는 것은 새나 짐승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 어찌 지식으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2. 할미새
신록이 한창인 화창한 날에 마을 앞 개울가로 놀러 나갔다. 풀들은 한결같이 푸르고 물은 맑게 흘렀다. 개울가에는 자갈들이 한결 하얗고 깨끗해 보였다. 혹시 예쁜 돌이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갈밭을 살피며 가는데 작은 새집이 눈에 띄었다. 보금자리에는 조그맣고 예쁜 알이 세 개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갈라지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어미새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둥지 주변의 모습을 눈에 익히면서 뒷걸음으로 멀찍이 물러났다.
한 동안 새집을 응시하고 있자, 할미새 한 마리가 날아와 꼬리를 연신 까딱거리며 슬슬 보금자리 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는 새알을 품고는 꼼짝을 않는다.
얼마 되지 않아서 어미새가 몸을 일으켜 몇 번 자리를 옮겨 앉는다. 그러자 가슴 밑에서 새끼새가 고개를 내민다. 조금 있더니 또 다른 새끼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미 할미새는 품을 조절하며 새끼와 알을 싸잡아 같이 품고 있다.
한참 지나자 어미 할미새는 긴 다리를 일으켜 세우고는 둥지를 떠나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새끼 한 마리가 곧 그 뒤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이어서 또 한 마리가 따라갔다. 어미 할미새는 새끼들이 모두 따라오도록 서성거리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갔다. 부화한 껍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지막 새끼가 둥지에서 나와 뒤뚱거리며 따라가자, 할미새는 유유히 둥지를 떠났다.
내가 할미새에게 물었다.
“알 껍질은 왜 치우지 않고 가니?”
그러자, 할미새가 대답하였다.
“치울 필요가 없지. 우리는 둥지를 떠나고, 둥지는 버리는 것이니까.”
순간, 나는 그 말뜻을 알아챘다. 할미새의 둥지는 새끼를 키우는 곳이 아니다. 다만 부화하는 보금자리일 뿐이다. 따라서, 치우고 냄새를 없애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새끼들은 이미 몸을 보호할 털과 걸어다닐 만큼 튼튼한 다리를 갖추고 깨어난다. 그러므로, 어미를 따라다니면서 살아가는 법을 바로 익히며 자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알 껍질 같은 것은 관심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