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정주(定住)
곽재석(이주 · 동포정책연구소, 소장)
지난 몇 년간 정부 중앙부처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공직사회의 내면을 나름대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처음 업무를 시작하면서 상사와 동료 공무원들에게 받은 첫인상은 그들이 엄청나게 성실하고 정열적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업무에 불철주야 헌신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에 ‘아, 이들이 조국의 발전을 견인해 온 중추적 동력이었구나’라는 신선하고 강한 감동을 받았다. 민간에 있으면서 공직사회를 부패와 비효율의 복마전 정도로만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절감하였다.
그리고 이들 수 많은 엘리트들의 충성과 헌신을 이끌어내는 대한민국 관료조직의 힘과 저력에 경외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민간으로 돌아 온 지금도 일반인들이 괜히 공무원을 폄하하는 비판을 하면 주저없이 공직의 애로를 설명하고 이들 공무원들을 비호하곤 한다.
그래서 이렇게 효율적이고 막강한 관료 조직을 바탕으로 해당 부처에서 평생을 헌신해 온 공무원들은 항상 자신의 업무에 대해서 고도의 전문성과 수월성을 확신하는 경향이 강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 가끔 학자들의 머리를 빌리는 경우에도 내부적으로 정해 놓은 정책방향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거나 또는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준거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국가 정책의 중심은 바로 해당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실무 행정가 자신들이라는 자부심이 늘 그들의 중심에 있었다.
사실 그런 자부심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나 자신도 나름대로 담당분야의 전문지식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가끔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책세미나에 참여하거나 그들의 연구결과 등을 보면서 공무원들이 가진 전문역량과 수준에 간혹 못미친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러나 정책의 중심에 정부가 있다고 해서 현실도 늘 정부를 중심으로 해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지난 시절 법무부의 동포정책이 그랬다. 1992년 한중수교를 전후하여 이 땅에 중국동포들의 유입이 시작되었고, 그 동안 친척방문에서, 산업연수생, 취업관리제, 특례고용허가제, 그리고 최근의 방문취업제 이르기까지 정책의 중요한 전환기마다 정부의 동포에 대한 적정한「법적 자격」부여가 이들의 이주 흐름과 성격을 크게 규정지어 온 것처럼 보인다. 정부가 앞장서고 민간이 따라오는 모습이랄까?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실제는 늘 시장의 수요가 선행되고 정부의 정책은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후속적으로 시행된 시장 메카니즘의 부산물에 불과했다. 산업연수생제도 도입을 시작으로 최근의 방문취업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이 기피하는 소위 3D업종에 없어서는 안될 그러나 한편으로는 언제라도 용도폐기가 가능한 임시적인 노동인력의 원활한 공급이 필요했고 여기에 바로 동포들이 동원된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이러한 시장의 흐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왔다.
지난 20년간 중국동포들의 한국 이주가 많은 부분 이와 같은 시장매개적인 메카니즘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그렇다고 정부의 중국동포정책에서 동포포용적인 측면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정치적 이유에서건 아니면 민족 및 인도주의적 측면에서건 우리 정부는 중국동포들을 방기하지 않고 같은 민족으로 보듬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런 점에서 지난 20년간 한국정부의 중국동포 정책 전반을 평가해 보면 정부의 동포포용중심적 정책과 민간의 시장매개형 메카니즘의 양 축을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면서 발전해 왔다고 본다.
그런데 이 땅에서 중국동포들이 임시적인 외국인력인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할 민족적 유산이고 또한 자산인지에 대한 정부의 정책방향이 명확하지 않았던 이유로 문제가 발생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동포들에게는 단기체류 후 거주국으로 출국해야하는 외국인력에 대한 순환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될 수 없었다. 불법체류 동포에 대하여 자진귀국정책이 수시로 되풀이 되었고, 법의 엄격한 잣대가 적용될 수 없는 상황들이 발생했다.
동포나 또 민간단체들이 이러한 정부의 약점을 이용하기도 했다. 솔직히 얘기하면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눈을 가린 채로 심판의 저울을 든 법의 여신의 이념이 우리 민족인 중국동포들에게는 엄격하게 적용될 수 없었다. 이런 어정쩡한 과정 속에서 이 땅에 중국동포들이 하나 둘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 틈엔가 이미 우리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보이지 않게 정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30만여명의 방문취업 체류자격 동포들은 5년 체류 후 중국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인정하듯이 이들 중의 상당수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결국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중국동포의 거대한 정주화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문제의 핵심은 중국동포의 이 같은 「보이지 않는 정주화」 현상이 이민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정말로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온 나라가 다문화 담론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데도 정작 한국사회 외국 이주민의 주류를 형성하는 이들 중국동포들은 이민자 사회통합, 다문화정책, 외국인정책의 주변으로 철저히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눈 앞의 현상을 보지 않고, 인정하지 못하고, 눈 앞의 현상을 낳고 있는 원인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와 정부는 동포에 대해서는 여전히 철저한 시장원리만을 적용하고 이를 관철하려고 하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 수 많은 다문화센타와 외국인근로자지원센타는 보여도 동포들이 그렇게 밀집해 살고 있는 커뮤니티에 동포체류지원을 위한 시설 하나 변변한 것이 없다. 정말 슬프고 통탄할 노릇이다. 금번 미드리 제2호는 동포들을 이 땅의 이민정책, 외국인정책, 다문화정책의 주인으로 만들고자 하는 간절한 바램에서 전체적인 편집의 흐름을 잡아 보았다. 이주·동포정책연구소의 이러한 작은 소망이 이 땅에서 중국동포들이 제대로 평가받은 날까지 계속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이주동포정책연구소 미드리 2기/
[저작권자(c)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단, 공익 목적 출처 명시시 복제 허용.]